이별 앞에서 느끼는 죄책감_사랑의 인문학_정지우

2022.12.04 | 조회 1.5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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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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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당연히 슬픔에 빠지고 분노한다. 그런데 이때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아니 적어도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정신적 외상이 삶의 모든 측면에 자기의심을 퍼뜨린다는 사실이었다." (옵션B, 셰릴 샌드버그, 애덤 그랜트)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면, 우리는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그가 떠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의 행동과 말을 일일이 떠올려보면서, 내가 그 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떠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되풀이한다. 상대를 찾아가서 나의 잘못들을 읊으면서 다시 돌아와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셰릴 샌드버그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자책감을 떨쳐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자기가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한 번만 더 받았더라면, 식습관을 고쳤더라면, 같은 식으로 계속하여 자기가 '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설령 진짜 자기 잘못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랑하는 이와 멀어지거나 이별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이유가 타인과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타인과 거리가 멀어질 때 죄책감을 느낀다. 부모님께 연락한지 한달이 넘어가면,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부모님께 연락하거나 부모님을 찾아가서 '거리'가 좁혀지만, 죄책감은 해소된다. 죄책감은 우리가 집단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감정이기 때문이다. 타인과 멀어질 때 죄책감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면, 아마 인류는 집단 생활을 유지하지 못해 멸종해버렸을 것이다.

완전한 이별은 그 사람과의 거리를 영원히 극복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한한 죄책감을 만들어낸다. 이 죄책감은 모든 일에 대한 자기 의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별 이후, 자기의 일이나 인간관계 등에서 전반적으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자기 의심을 하게 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단순히 내가 매력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이별을 하게 되었다는 자기 의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떨치기 힘든 우리 안의 '죄책감' 때문이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마치 그 사람 한 명의 '사랑과 인정'으로 모든 게 해결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사랑도 필요없을 것 같은 확고한 자존감을 느낀다. 내가 그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므로, 나는 멋진 사람이 되었고, 자존감으로 단단해진, 자신감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게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던 존재가 떠나면, 모든 걸 잃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 느낌을 평생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와 영원히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결국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흔히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것이다.' 같은 말이 있듯이, 우리가 느끼는 그 죄책감은 다른 사람과 좁혀진 거리로 잊히기도 한다. 사실,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일을 반복한다. 유치원 때부터 매년 새로운 학급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다음 해에는 멀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슬픔과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곧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에 몰입하며 과거의 관계를 잊는다.

아마 그 또한 우리 인류가 살아남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멀어져 혼자 고립되면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야 우리가 계속 타인을 찾고 무리 생활을 유지하며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기도 했다.

자연에서 살던 시절, 주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무척 흔했을 것이다. 영유아 사망률도 높았고, 독버섯을 잘못 먹거나 짐승의 습격으로 매일같은 이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거리감을 또 다른 곁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로 메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너무 깊이 매몰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일 필요가 있다. 이 감정은 사실 모든 사람들이 겪도록 만들어진 것이고, 내 안에는 이 감정을 극복할 힘도 있다는 걸 믿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무도 찾고 싶지 않은 그 시간, 내게 그 누구도 찾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믿어지는 시간,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믿어지는 그 자기의심의 시간에야말로, 자신을 다른 그 누군가의 곁으로 보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결국 그 누군가의 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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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1일에 발행해야 하는 '사랑의 인문학'의 발행이 늦어져 4일에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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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인문학 필자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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