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엔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 있는 ‘일곱계절의 정원’을 다녀왔다. 전국 정원 여행을 다니기 위해 서칭을 하던 중 알게 된 ‘일곱계절의 정원’은 그간 보아온 정원의 모습 중 단연 눈에 띄는, 한눈에도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정원이었다. ‘자연주의 정원’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이곳의 인스타를 관심있게 팔로우 해오던 나는 꿈의 한 조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남편과 큰 딸에게 함께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커다란 숲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퇴촌면 구룡동의 어느 땅. 단차가 있는 2000여 평의 땅과 작은 계곡까지 끼고 있는 지형을 고스란히 살려 정원과 미술관, 카페와 가드닝 센터를 만든 ‘일곱계절의 정원’은 자연과 건축의 조화로움은 물론, 자연주의 정원이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를 눈앞의 실제로 펼쳐 보여주는 멋진 곳이었다.
사실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이는 ‘칼 푀르스터’라는 독일의 유명한 가드너(육종가이자 작가이기도 했다)이다. 일곱 계절의 정원이란 초봄, 봄, 초여름, 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로 계절을 보다 세분화한 개념으로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가꿔가려는 현대의 정원사들에게 거의 기본값처럼 새겨진 계절 감각이다.
아름다운 정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운 좋게도 ‘일곱계절의 정원’ 대표이신 김재용 정원사님과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짙은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와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던 대표님은 내가 몇 가지 궁금증을 꺼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정원에 대한 철학을 술술 풀어내셨다.
작년 4월에 식재를 시작해서 거의 일 년여만에 이런 풍성한 자연주의 정원이 조성되었다는 ‘첫 시작’의 이야기는 처음 이 땅을 사서 몇 년 간은 땅의 힘을 기르는 데에만 온 정성을 쏟았다는 ‘과정’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메밀과 코스모스, 유채 등을 심어 꽃이 피면 모두 갈아엎고 유기물 퇴비로 만든 후 땅을 비옥하게 하는 데에만 오랜 정성을 쏟았다는 말을 듣자니, 가드너는 식물을 사랑하는 만큼 땅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건강해진 땅에 준비해둔 묘목들을 옮겨와 심었고, 이후 따로 비료나 농약, 물을 주지 않은 자연 상태로 이렇게 풍성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하셨다.
건강한 식물은 해충을 물리치는 물질을 스스로 뿜어내기 때문에 비료나 농약, 잦은 물주기를 더하기 보다 스스로 버티는 힘을 가지도록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씀하시던 대표님. 책에서 읽어보긴 했으나 그런 방식으로 정원을 일구는 정원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도, 그런 방식으로 건강하게 조성된 정원을 두 눈으로 본 적이 없기에 대표님이 풀어내는 식물의 생존전략 이야기는 그 자체로 너무 흥미로웠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구나, 가드너는 그 생명력을 존중하며 적절히 협력하는 사람이구나 다시 깨닫는다.
‘일곱계절의 정원’에는 화려한 색감이나 도드라지는 크기의 꽃이 없다. 정원을 디자인할 때도 혼자 튀는 꽃을 심기 보다 식물의 형태를 보고 주변과 어우러지도록 다양한 질감을 고려해 심는다고 하셨다. 또한 각각의 식물이 최대한 자신의 수형대로 자라날 수 있도록 넓은 간격으로 심는다고 하시며 식재 간격이야말로 ‘식물을 위한 최대의 복지’라고 하시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렇게 식물이 제 크기대로 마음껏 자라고 쉽게 쓰러지지 않는 강한 존재로 자리 잡은 정원이야말로 다양한 종이 어우러진 건강한 생태 시스템이 된다는 것이다.
알록달록 튤립으로 거대한 매스게임을 하듯 꾸며진 정원, 하나의 꽃으로만 몇 천 평의 면적을 메꿔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정원이 지겨웠던 나는, 다양한 색과 형태, 질감이 어우러지며 넘실대는 이런 정원에서 영감과 쉼을 얻는다. 정원을 가꾸다 보면 일곱계절이 아닌 15일 마다 새로운 변화가 눈에 보이고, 그 변화에 마음이 춤추게 된다던 대표님의 말씀이 내내 가슴을 두드렸다. 가볍게 나선 정원 여행이었지만 책을 통해 알아가던 자연주의 정원의 본질을 살아있는 특강으로 전해 들은 것 같아 내 마음도 어느새 춤추는 상태가 되었다.
큰딸과 함께 ‘일곱계절의 정원’ 여기저기를 유심히 둘러보던 남편은 내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조금 알아차린 눈빛이다. 그간 내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막연히 상상하던 수준을 벗어나 눈앞에 펼쳐진 멋진 정원과 건축물, 너그러운 대자연을 보니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인생 후반전을 그려 갈지 몽글몽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정원에 머물다 걸어 나오며 남편이 소감처럼 짧은 한마디를 건넨다.
“우리도 2000평은 되야겠는 걸”
역시 정원여행은 함께 다녀야 맛이다.
*글쓴이 – 이설아
작가,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리더, 정원이 있는 시골 민박을 준비하는 초보 가드너. 저서로는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돌봄과 작업/공저>,<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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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ht
반갑습니다 아침 sns귀하글을 보고 귀하의 정원을 보고 찾아보고 싶습니다. 저희는 광주에서 비채카페를 가드닝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항상배우고저 합니다 (인스타 #비채카페 ) 010 3605 0303 박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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