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텔지아,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 과거는 돌아갈 수 없고, 과거의 좋았던 시절은 되돌릴 수 없기에 우리 마음엔 자연스럽게 노스텔지아라는 감정이 깃든다. 안타깝게도 과거에 대한 생각을 마음대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노스텔지아를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는 가정 하에,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후회하거나, 후회하지 않거나.
독일의 철학자 프레드리히 니체는 삶이 또 한 번 반복된다 할 때, 여태껏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똑같이 겪는다고 해도 괜찮은가? 에 대한 대답에 ‘잘 산 삶’, 즉 초인의 기준을 둔다. 똑같이 겪어도 좋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삶을 잘 산 것이며, 후회하는 일이 있다고 답한다면 니체의 기준에서는 삶을 잘 가꾸지 못한 것이다. 그는 <영원회귀>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삶의 모든 것은 영원히 무한히 반복된다고 전제한 후에, 삶에 있어 가장 무거운 책임이란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가정”함에 있으며,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은 것들만 선택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한히 반복되어도 오히려 좋은(!!) 선택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쾌락적일수록? 돈을 많이 벌수록?
나는 이것이 내 마음속의 불가항력적인 결정에 근거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들국화의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따라 부르다가 갑자기 알게 되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이 노래의 화자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에 다름없다. ‘그대’는 ‘나’에게,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말하며 나를 걱정한다. ‘나’는 혼자 ‘먼 길’을 떠나왔다. ‘나’의 현실에서 현재 상태는 보통사람들이 말하는 ‘잘 사는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어쩌면 다른 이는 세상을 모르는 애송이, 현실감각 없이 멋대로 사는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하지만 후횐 없지!”
‘나’가 “후회는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행위가 꿈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꿈은 곧 직업이 아니다. 여기서 꿈이란 꿈꾸는 세상이며, 실현될 수 없는 것이며, 그로 인해 투쟁했던 ‘나’의 모든 과거를 의미한다. 그래서, 꿈은 곧 '진심'이다. ‘나’는 여기서 과거를 긍정하는 중이다. 후회할 수 있는 것은 과거뿐이며, 따라서 후회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는 것 또한 과거의 일들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후횐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려면, 삶에 있어서 매 순간 진심이면 된다. 그 결과로 잃게 되는 것이 있더라도, 삶이 파국을 맞는다 하더라도, 다시 그 선택의 길에 놓이면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그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진심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속에서 어떤 것에 대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일어났다면, 그것을 선택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삶이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은, 나의 진심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후회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진심의 무게는 한없이 무겁지만,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답다. 삶을 진심으로 산 사람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마침내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삶에 진심인 사람만이 초인이 될 수 있다.
*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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