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안데르센 하면 떠오르는 동화가 몇 개 있다. 플란더스의 개, 성냥팔이 소녀, 미운오리새끼 등 안데르센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다른 동화와 다르게, 안데르센의 동화는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으며, 권선징악의 뻔한 스토리가 아니다. ‘주인공은 그래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의 클리셰를 부순다. 이 잔혹한 현실은 안데르센의 아름다운 문체에 가려져 비로소 동화가 된다. 주인공은 미움을 받고, 슬퍼하지만, 그걸 그려내는 장면 장면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롭기에 동화라고 불릴 수 있다. 문체마저 건조했다면 이것은 더 이상 동화가 아니다.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늘 잔혹한 현실에 대비되는 아름다운 배경을 설정하여 우리에게 아이러니를 가져다주고, 아름다움에 잔혹함 한 스푼 들어가 있는 것으로 하여금 마음속에 더욱 깊이 남게끔 한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안데르센의 작품 중 미운오리새끼에 관한 것이다.
나는 과연 미운오리새끼가 백조가 되어 훨훨 날아오른 게 사실일까에 대한 의심을 어렸을 때부터 품고 살았다. 미운오리새끼의 서사를 간략히 도식화하면 바로 이렇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추운 겨울에 몸 녹일 곳이 없어서 추위를 못 견디고 쓰러졌는데, 갑자기 봄이 오고, 갑자기 백조가 되었다는 서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여기서 정말로 미운오리새끼가 백조가 되었다면 안데르센의 다른 동화들과 다르게 이 동화만큼은 ‘권선징악’,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 ‘모두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등의 흔해 빠진 아동용 신파의 길을 걷게 된다. 플란더스의 개와 성냥팔이 소녀의 서사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플란더스의 개는 미운오리새끼와 아주 유사한 서사를 지니고 있다. 주변인들의 괴롭힘과, 추운 겨울에 길거리에 쓰러지고, 그러자 소원을 이룬다. 플란더스의 개에서, 네로는 그림을 직점 본 게 아니라 마치 죽어가며 환상을 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경우엔 어떠한가?
성냥팔이 소녀 또한, 플란더스의 개, 미운오리새끼와 서사가 굉장히 유사하다. 이 셋의 서사의 공통점을 정리해보면 이렇게 된다.
첫째, 주인공은 주변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함
둘째, 주인공은 추운 겨울에 쓰러짐
셋째, 쓰러지고 나면, 소원을 이룸 (미운오리 새끼는 백조가 되었고, 네로는 그림을 보았고, 소녀는 할머니를 보았음)
유의미한 차이점은 딱 하나 뿐이다. 플란더스의 개와 성냥팔이소녀는 주인공이 죽었다는 사실을 명시해 놓았다. 그러나 미운오리새끼의 경우, 마치 ‘죽은 것처럼’ 이야기만 할 뿐, 죽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위의 세 개의 공통점 때문에, 나는 아무래도 미운오리새끼가 백조가 된 게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환상 속에서 백조가 되는 꿈을 꾼 게 아닐까 싶다. 왜 굳이 ‘하늘’로 ‘훨훨’ 날아올랐다고 명시를 해 놓았을까? 왜 굳이 백조가 되기 전 서사에, ‘백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끔 설정했을까? 나는 미운오리가 실제 작가의 의도여부에 상관없이, 사실은 추운 겨울에 쓰러져서 죽었다고 해석했다. 네로와 성냥팔이 소녀처럼 말이다.
성냥팔이소녀와 네로의 경우, 미움 받는 이유가 다소 뚜렷하다. 그들은 가난한 어린아이이다. 약자가 되기 제일 쉬운 부류로 주인공을 설정했다. 그러나 미운오리새끼의 경우, 미움을 받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이유라 함은 ‘남들과 다르게 생겨서’인데, 그도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남들보다 크고, 남들보다 못생겨서 다른 오리들이 괴롭혔다고 나오는데, 원래 인간이든 동물이든 남들보다 ‘크’다면 강자가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야기에서는 고양이, 늙은 오리, 물오리 등등 새끼오리들과 다르게 생긴 동물이 많이 등장하지만, 새끼오리들은 다른 동물엔 관심도 없고, 오직 미운오리만 못살게 군다. 이유 없이 핍박받고, 이유 없이 닥치는 부조리, 이를 해결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문제. 미운오리가 백조가 된 게 죽어가면서 본 환상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 버금가는 실존의 고통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미운오리새끼처럼, 다르게 생겼고, 소수성을 지닌다.
지금도 미운오리새끼가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장면과, 힘차게 날갯짓을 한 뒤 하늘로 끝내 날아오르는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고 눈물이 난다. 현실은 안데르센의 잔혹동화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인생은 원래 부조리한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이유 없이 닥치는 불행, 그리고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이야기, 내 생의 최초의 부조리극은 바로 「미운오리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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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이야기 '
글쓴이 - 영원
음악 공부를 하고있는 대학생입니다. 이유있는 예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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