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하루

마지막 여행_ 우연한 하루_ 지은이

2024.03.25 | 조회 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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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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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탄 것 같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서로를 바라보며 앉아 오래된 추억 상자를 여는 중이다. 아빠는 옆 침대에 누워 우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다. 우리가 아빠와의 이야기를 꺼내며 재잘재잘 떠드는 동안 아빠의 떨어졌던 맥박 수치가 신기하게 올라갔다.

아빠는 지금, 우리 가족과 마지막 이별여행을 하는 중이다. 이곳은 병원이고 아빠는 말을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 울고 웃으며 여행을 즐기고 있다.

때로는 물 건너 캐나다에 사는 아빠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걸기도 했다. 영상 속 아빠 친구는 "임마 니가 지금 누워있으면 어떡하냐? 우리 어릴 때 그때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라고 말을 하고 평소 아빠가 좋아하던 노래를 한참동안 불러 주었다. 아빠는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다 듣고 있는듯 가끔씩 입을 움직였다. 그렇게 아빠의 마지막 시계는 천천히 흘러갔다.

몸은 앙상하게 말랐지만 아빠의 손은 여전히 따뜻하다. 숨쉬는 속도는 느려졌지만 아빠는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체온을 나눠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빠는 우리와 마지막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아빠는 지금 이순간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느껴진다. 같이 여행을 가는데 목적지가 달라지고 있을 뿐 우리는 지금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말이다.

우리는 팀을 나누어 저녁 식사를 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아빠의 최애 음식인 짜장면을 먹었다. 아빠는 환자 생활 5년 동안 항암에 최악이라는 그 까만 국수를 식구들 몰래 먹곤 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못 먹게 하는 이들과, 먹고 싶은 이는 그렇게 실랑이를 해댔는데 오늘은 아빠의 애착음식을 함께 나누며 아빠의 그 순간을 회상했다.

저녁을 다 먹고 한참동안 아빠의 짜장면 사랑을 얘기하는 도중 아빠가 눈을 움찔거리며 반응을 보인다. 신기하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청각은 살아 있다는데, 아빠는 분명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계신 것 같다. 얼마나 먹고 싶은 음식인지 말로 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진다.

우리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며칠 전 누군가가 그랬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문 하나 사이 뿐 이라고 말이다. 단지 우리는 삶의 강을 건너간 이들이 보이지 않을 뿐 그들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했다. 아빠는 먼 훗날 보이지 않는 문 틈으로 우리를 바라봐 주겠지?

우리는 지금, 병실에서 아빠의 마지막 시간을 화기애애하게 가끔은 울다가 웃으며 보내는 중이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의 종착지로 함께 기차를 타고 달려가는 중이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종착지가 천천히 다가왔으면 좋겠다. 오늘 밤은 진짜로 따스한 봄이 병실 한 가운데 자리잡은 것 같다.


삼월의 따스한 햇살이 고개를 내미는 어느 날, 아빠는 긴 여행을 마무리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한없이 슬플 줄만 알았는데, 슬픔도, 기쁨도, 가끔은 웃음소리도 흘러나오는 시간이었다. 아빠의 여행길에 우리 목소리 메아리가 가득 채워지면 좋겠다. 아빠는 빙그레 웃으며 그 먼 길을 즐겁게 걸어가면 좋겠다.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웃으며 기다릴 수 있게 말이다. 우리는 아빠가 점점 희미해 지겠지만 아빠는 우리를 뚜렷하게 기억해 주면 좋겠다. 목소리만 듣고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빠는 그렇게 우리와 잠시 떨어져 살아갈 뿐이다.


* 글쓴이 - 지은이

우연히 만난 이들과 함께 만든 순간을 기록합니다.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며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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