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는 내가 '반한' 정원이 있다_전국 정원 여행_이설아

2024.03.28 | 조회 1.5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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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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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방문은 거의 7년만인 것 같다. 강의를 위해 12일 잠시 머문 기억이 전부였던 울산은 당분간 재방문 계획이 없는 관심 밖의 도시였다. 하지만 올해 초 전국정원 여행 을 시작하고 본격적인 정원 공부를 하게 되면서 울산은 내게 태화강 국가정원이 있는 정원의 도시로 다시 새겨졌다. 거리가 좀 있다 보니 언제, 어떤 계기로 방문할까 막연했었는데, 마침 잡힌 김해 일정 덕에 인접한 도시 울산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태화강 국가정원 주변을 아름답게 감싸고 있는 태화강과 산책로
태화강 국가정원 주변을 아름답게 감싸고 있는 태화강과 산책로

우리나라에는 두 곳의 국가정원이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이 1호이고, 울산의 태화강 국가정원이 2호이다. 산업화 시대 개발 논리로 인해 극심한 오염과 생태적 훼손이 심각했던 죽음의 강 태화강을 2000년대 초 시민과 기관, 기업이 합심하여 맑고 깨끗한 생태 하천으로 복원하고 살려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살아난 태화강 주변의 드넓은 공원을 국가정원으로 지정했다는 기사와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의 작품이 아시아 처음으로 울산 태화강에서 선보인다는 소식 덕에 언젠가 꼭 한번 방문해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김해 일정을 잘 마치고 울산에서 맞이한 청량한 가을 아침. 햇살이 너무 따갑기 전에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아침 9시도 되기 전 국가정원을 찾았다. 입구와 출구가 명확하고 입장료가 있던 순천만 국가정원과 달리 태화강 국가정원은 이전부터 시민의 삶 속에 자리 잡은 일상적 공간이라 태화강을 중심으로 도시의 곳곳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열린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도심의 곧은 직선을 부드럽게 이완시키는 국가정원 내  자연스런 풍경
도심의 곧은 직선을 부드럽게 이완시키는 국가정원 내  자연스런 풍경

정원 초입부터 시선을 끌던 커다란 대숲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난 규모의 공원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우와. 이곳은 순천만과는 또 다른 느낌이구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꽃박람회와 유원지 느낌이 물씬 났던 순천만 국가정원과 달리 태화강 국가정원은 보다 자연스럽고 평온한 공원의 느낌이 들었다. 인위적으로 눈길을 끌 만한 요소를 채우기보다 공원의 지형과 생태에 맞춰 묵직하게 디자인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국가정원 입구에 심겨진 팜파스와 핑크뮬리의 물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국가정원 입구에 심겨진 팜파스와 핑크뮬리의 물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십리나 이어지는 대숲은 공원의 안쪽 공간과 공원 밖 태화강변을 잘 이어준다.
십리나 이어지는 대숲은 공원의 안쪽 공간과 공원 밖 태화강변을 잘 이어준다.

바람결에 쉭쉭-합창을 실어 보내는 십리대나무숲, 핑크뮬리와 팜파스, 아침햇살과 이슬이 그려내던 몽환적인 들판, 수천 평을 뒤덮은 억새가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 한마음으로 움직이던 습지를 지나는 동안은 입을 다무는 법을 잠시 잊어버렸던 것 같다. 피트 아우돌프가 디자인했다는 자연주의 정원도 궁금해 찾아가 보았는데, 식재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어린 묘목들로 많이 횡했다. “특정 식물로 그 계절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식물의 조화를 통해 사계절 내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연출하겠다던 피트 아우돌프의 디자인을 눈으로 확인하려면 적어도 2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높고 단단한 빌딩과 그 아래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는 그라스가 대조적이어서 더 조화롭다
높고 단단한 빌딩과 그 아래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는 그라스가 대조적이어서 더 조화롭다
파란 하늘 아래 끝도없이 펼쳐진 억새 사이를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파란 하늘 아래 끝도없이 펼쳐진 억새 사이를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피트 아우돌프가 식재 디자인한 공간. 식물이 아직 너무 작고 어려 아쉬웠다.
피트 아우돌프가 식재 디자인한 공간. 식물이 아직 너무 작고 어려 아쉬웠다.

공원 가장자리로 나오니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태화강이 가까이 보였다. 강 주변에 세워진 고층 빌딩과 시원하게 뻗은 다리, 웅장하게 흘러가는 강물 뒤로는 다양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이 길게 펼쳐지는데 꽤나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울산이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였다니. 태화강이 살아나면서 울산은 이전의 산업도시가 아닌 거대하게 살아있는 정원의 도시가 되었구나 싶었다.

국가정원의 외곽은 태화강이 감싸고 있다. 아침 햇살에 더 없이 반짝이던 태화강
국가정원의 외곽은 태화강이 감싸고 있다. 아침 햇살에 더 없이 반짝이던 태화강
싱그러운 나무 아래 핑크뮬리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인다.
싱그러운 나무 아래 핑크뮬리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인다.

함께 갔던 친구가 국가정원에 들어서자마자 예리한 눈빛을 반짝이고, 만면에 미소가 번지는걸 보며 나도 실실 웃음이 나왔다. 실물을 만 분의 일도 못 담은 나의 사진 몇 장을 빌어 태화강 국가정원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은데 정원의 웅장함과 자연스러움이 사진에 잘 담기지 않아 아쉽다. 이곳은 포토제닉한 정원이라기 보다 자연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이 보이는 '생태 정원'이라는 표현이 적당하지 싶다.

정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여기 저기 정원의 이름을 단 공간이 넘쳐난다. 계절마다 눈길을 끄는 꽃이 가득 찬 화단과 한 종류의 꽃으로 넓은 들판을 채운 거대한 포토존으로 많은 이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정원은 '꽃을 실컷 볼수 있는 화려한 화단' 정도에 머무는 개념인가 싶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그런 좁은 개념의 '정원'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더 넓은 개념의 '정원'을 새기기에 적절한 곳으로 여겨진다. 화려한 꽃과 인생샷을 남길만한 포토존이 없어도 일상의 삶 속에 자연이 건네는 너른 품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커다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몸과 마음을 재생시키기에 적절한 태화강 국가정원을 한번쯤은 방문해보시길 권하고 싶다.

주변 환경을 적극 끌어들여 강과 도시, 정원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태화강 국가정원
주변 환경을 적극 끌어들여 강과 도시, 정원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태화강 국가정원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삶에 스며든 정원이야말로 공공정원의 나아갈 길 아닐까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삶에 스며든 정원이야말로 공공정원의 나아갈 길 아닐까

 

 

 

*글쓴이 이설아

작가,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리더, 정원이 있는 시골 민박을 준비하는 초보 가드너. 저서로는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돌봄과 작업/공저>,<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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