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예림(이하 아이들 이름은 가명)이는 입학했을 때부터 학교에 잘 적응을 못해서 선생님들의 애를 많이 태웠다. 한 번 고집을 부리면 포기를 몰랐다. 좋아하는 것은 잘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거나 조금만 지루해도 참아내질 못했다. 2학년 초반에는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뛰어나와 학교를 배회했다. 그러면서 제일 자주 온 곳은 보건실이었다. 예림이는 막무가내로 침대에 누워있거나 업무를 못 할 정도로 옆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곤 했다. 보건실에 있는 물건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나는 예림이를 교실로 보내기 위해 설득도 해보고, 야단도 쳐보고, 꼬셔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예림이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손을 잡고 교실 앞까지 가도 선생님이 무섭다며 교실 앞에서 버티고 섰다.
예림이가 복도에 있으면 학교 소독을 하기 위해 매일 오시는 방역요원 분들이 예림이를 발견하고 지켜주시고, 교무행정원 선생님이 데리고 오기도 했다. 도서관으로 가서 숨어 있을 때도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예림이를 잃어버리거나 다치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셨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을 두고 담임선생님이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부모님과 몇 번이고 상담하고, 학교와 관련된 상담기관에도 의뢰를 해서 상담을 받도록 했다. 1학기에는 예림이를 찾는 전화가 자주 보건실에 걸려 왔었다.
그런 예림이가 2학기가 되자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말귀도 알아듣고 안되는 것은 포기할 줄도 알았다. 어느 날은 보건실에 와서 말한다.
"선생님 저 사랑하세요?"
"그럼 사랑하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선생님은 예림이가 다치면 걱정이 되고 얼른 나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예림이를 정성껏 치료해 주지. 사랑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야"
"아~그렇구나"
예림이의 입술이 귀에 가서 걸린다. 그러고는 총총총 교실로 걸어간다.
어느 날은 보건실에 와서 말한다 "선생님 저 좀 안아 주세요. 얼른요" 나는 조금 망설이다 안아주는 게 뭐가 어렵냐며 예림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안녕히 계세요" 하면서 보건실을 나선다.
며칠 전 예림이는 학예회 무대에서 응원 댄스를 추는 것을 보았다. 2학년 아이들이 반짝이는 옷을 입고 춤을 추는데 내 눈에는 예림이만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아는 예림이가 저 예림이가 맞나 싶어서 눈을 깜박이고 다시 보았다. 분명 예림이다. 구순구개열이 있어 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예림이가 마스크도 벗고 당찬 표정으로 박자에 맞추어 사뿐사뿐 춤을 추었다. 너무 기특하다. 칭찬을 듬뿍 해주고 싶다. 교실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잘 따라 하지 못하고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했던 예림이가 어떻게 율동을 익혀서 아이들과 열을 맞추어 공연 준비를 했을까 궁금했다.
담임 선생님께 예림이가 어쩜 그렇게 응원 댄스를 잘하느냐며 지도하신다고 수고했다는 말씀을 드렸다. 안 그래도 예림이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예림이가 처음에는 잘 참여를 안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더니 뒤에는 연습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마음을 졸였다가 한숨 놓았다 하신다. 그동안 예림이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다고 말하니 선생님께서 " 보건선생님도 고생이 많았죠. 사서 선생님이랑 돌봄 선생님도요" 하신다.
아이들이 자란다. 이 학교에서 5년째 근무하면서 나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았다. 한 달, 한 학기, 1년이 다르다. '저렇게 해서 한글이나 제대로 배워 책이나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준상이는 특수선생님의 도움으로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매번 보건실에 와서 아픈 모습을 하고 힘이 없던 유원이는 이제 컸다고 스스로 자기 아픈 것을 말하고 당당하게 필요한 것을 요구할 줄도 안다. 엄마가 없어 끼니를 못 챙기고 학교 급식을 급하게 많이 먹어 늘 배가 아팠던 민호는 이제 밥도 유산균도 잘 챙겨 먹는다.
그러니 지금 내가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조금 부족하다 하여 함부로 판단할 필요도, 지레 포기할 필요도 없다. 아이를 위해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이는 나 혼자가 아니다. 부모님도 계시고, 담임 선생님도 계시고, 돌봄 선생님, 방과 후선생님, 영양 선생님도 계신다. 나는 나에게 온 아이에게 그 시간 동안 필요한 일을 정성껏 하면 된다. 한 아이를 위해 서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아이의 성장을 돕는 학교가 참 좋다. 아이의 변화와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보건교사라는 내 직업이 참 좋다.
* 글쓴이 소개
초, 중, 고에 다니는 세 딸을 키우는 엄마이자 초등학교 보건교사다.
아침, 달리기, 아이들에 관한 글을 쓰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보건교사 독서모임 <겐샤이>를 운영하며 보건교사들의 행복과 성장을 돕고 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