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둘째 날, 나는 아일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겨울은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일 비가 내리기 때문에 어쩌면 차라리 ‘축축한 우기’의 계절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잔뜩 흐린 하늘을 꼭 빼 닮은 바다는 마치 처음부터 푸른빛 따위는 가져본 적이 없다는 듯 무거운 회색빛 옷을 둘러 입고 나처럼 지난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비가 내리는 군. 아.. 지겨워.” 하루 종일 잔뜩 흐려 있던 하늘에서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혼잣말로 나지막이 내 뱉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그래서 하늘 아래 지붕을 세워 놓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말하는 거야.” 남편이 나를 한번 쳐다본 뒤 벽난로에 몇 개의 장작을 넣으며 말했다. “(헉!)” 한국말로 혼자 투덜거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남편이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게 답을 하는 것이었다.
“여보. 불 앞에 앉아 있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 등이 너무 시려. 또 어제부터는 새끼발가락이 빨갛게 변하고 있어” 나는 벽난로 앞에 몸을 바짝 대고 앉으면서 제임스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벽난로로 집안에 훈기가 돌고 또 바닥에는 꽤나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었지만, 한국 사람인 나에게 뜨끈한 온돌 바닥이 주는 만족감을 좀처럼 대체해 줄 수 없었다. “내일 오전에는 날씨가 잠깐 좋아지고 또 해를 볼 수 있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내가 출근하고 나면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고 꼭 나가서 산책을 하도록 해.” 나는 남편이 본 일기예보가 제발 정확하기를 바라며 한국에서 가져 온 전기장판의 온도를 최대치로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의 도시락을 싸고 있는데 동편으로 낸 창문을 통해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보니 온 하늘이 채도가 다른 주황빛들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순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잠옷에 맨발인 채로 발코니에 나가 그 찰나를 숨죽여 지켜보았다. 하늘빛을 반영하는 바다는 지난밤의 검은 물빛을 재빠르게 버리고 일렁이는 물결 위로 역시나 온갖 다른 종류의 주황빛을 입기 시작했다. “다행이야. 오늘은 날씨가 좋겠어.”
출근 준비를 마친 제임스가 식탁에 앉았다. 그는 시리얼에 우유를 넣고, 토스트를 구워 버터와 오렌지 잼을 발라 늘 그렇듯 한 개는 내 앞에 놓고, 한 개는 자기 입 속으로 가져갔다. “제임스. 미안한데, 오늘 아침엔 토스트를 먹고 싶지 않아.” 결혼을 한 뒤로 계속 아침식사를 시리얼과 토스트를 먹었더니, 부드러운 버터향이 입안을 즐겁게 만들어도, 유당 불 내성 때문인지, 글루텐 때문인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복통이 살살 오고 있어 당분간은 토스트를 먹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만약 여기가 한국이라면, 이 식탁에 지금 어떤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으면 좋겠어?” 제임스가 물었다. 그의 물음에 내 머릿속에는 온갖 종류의 한국 음식들이 떠올랐다. “이런 계절에는 갓 지은 밥에 엄마가 가자미를 넣고 끓인 미역국과 또 멸치젓갈로 맛을 낸 톳나물 무침을 같이 먹고 싶어.” 내가 말했다. “정말 미안하군. 그런 아침식사는 내가 준비해줄 수도 없으니까.” 제임스는 내가 말한 음식이 어떤 것인지 생전 들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을 테지만, 내가 한식 밥상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나를 안쓰러워했다.
남편의 권유대로 산책을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 때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웃집 빅터를 만났다. “날씨가 좋네요. 아침에 해변을 따라 달렸는데 파도에 밀려온 해초들이 해변을 뒤덮고 있어서 지금 악취가 장난이 아니에요.” 순간 그의 말에 다른 길로 가야 하나 망설였지만, 나는 해변을 지나 등대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 보기로 이미 결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다. 10분 정도 걸었을 까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자 강한 냄새가 내 코끝을 찌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빅터가 악취라고 했던 그 냄새가 나에게는 전혀 악취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감칠맛 가득한 해초류 음식의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그 냄새를 맡고 있자니 톳이며 미역들이 멸치 젓갈이나 참기름 같은 양념을 입고 우리 엄마의 손에서 조물조물 무쳐지는 상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뜨끈한 온돌방에 앉아 엄마가 차려주시는 가자미가 들어간 미역국과 멸치 젓갈로 맛을 낸 톳 무침을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또 매일같이 영상 통화로 이야기를 나눴던 핸드폰 너머의 엄마가 실제로 내 옆에 앉으셔서 ‘고생이 많다, 우리 딸.’ 하시면서 내 등을 쓸어주시기도 하셨다. 정말이지 그 순간은 상상 속의 엄마 손길이 진짜 내 등을 쓸어 주시는 것 같아서 뜨거운 불 앞에서도 녹지 않았던 내 등이 왠지 뜨듯해 지는 것 같았다.
살다보면 수많은 기억들이 오감을 가진 채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가 예상치도 못하는 순간에 그러나 나에게 꼭 필요한 순간에 그 날처럼 나를 찾아와 위로를 전해 주었던 것 같다. 그 위로가 주는 힘으로 나는 고향의 어떤 것들을 늘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타향의 새로운 것들을 겪어 내며 지금까지 10년을 그럭저럭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일랜드의 축축한 겨울 날씨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또 다른 10년이 지난 후에도 지금까지처럼 이 날씨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왠지 훗날에도 지금처럼 꿀 차를 마시며 몸을 데우고, 전기장판의 온도를 최대로 틀어놓고 잠이 드는 등 여러 가지 메이드 인 한국의 도움을 받으며 지난한 겨울을 견디며 살고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 글쓴이 소개
아일랜드 코크에서 살고 있습니다. 글쓰는 일로 축축한 겨울을 살아내고, 해처럼 달처럼 늘 내 머리 위에 있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보듬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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