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이즈홀스, 여름이면 찾아오는 ‘납량특집’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은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납량’의 사전적 뜻은 ‘여름철에 더위를 피하여 서늘한 기운을 느낌’이고, ‘납량특집’은 ‘신문, 잡지, 방송 따위에서 여름철에 무더위를 잊을 만큼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편성한 특집’이라 한다.(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수많은 납량특집 프로그램들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단언컨데 ‘전설의 고향’이었다. 매주 화요일, KBS, 저녁 10시, 모든 것이 딱 무시무시할 때 전설은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 집은 마당이 있는 한옥이었고(부자 아니었음), 화장실이 푸세식 이었고 무려 밖에 있었다.
무서운 것을 분명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와 존재에 대한 끌림 때문이었을까, 전설의 고향을 외면하는 것은 힘들었다. 당시 할머니와 같이 자던 시절이기에 볼 때는 그렇게 무섭지 않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도무지 갈 수가 없었다. 온갖 귀신이란 귀신은 다 마당 끝 화장실에 모여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온 집안의 불을 켜고, 마당에 자는 개를 깨우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화장실을 갔다. 그런 날은 오는 길에 엄마한테 뒤지게맞곤 했는데, 귀신보다 엄마가 더 무섭구나 하고 발 뻗고 잘 수 있었다.
그런 추억을 가진 전설의 고향이었는데, 사라진다는 이야기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전설의 고향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요즘은 납량특집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왜 사라진 거지? 어디로 간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코난이 되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 문제를 추적해본 결과 두 가지의 이유를 발견했다. 하나는 발전한 성인지 감수성 때문이고, 하나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발전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서 말해보자. 각 나라마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귀신들이 있다. 중국의 강시, 루마니아의 드라큘라, 유럽의 늑대인간 등. 우리나라의 국가대표 귀신은 처녀 귀신이다. 엘라스틴 한듯한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에, 올백으로 깔 맞춤한 상하의, 시대를 앞서 간 아이섀도와 틴트 화장법을 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다.
처녀 귀신의 정서적 특징은 항상 억울한 ‘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을 풀어달라고 밤 12시에 사또나 선비에게 가서 하소연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아니, 순간이동 가능하고, 비행능력 스킬 있고, 핸드폰 조명도 없는 시대이니 짠하고 나타나기만 해도 심장마비로 올킬 시킬 수 있는 능력자께서 왜 굳이 사또나 선비에게 가서 한을 풀어달라고 하는가? 직접 풀면 되잖아? 이런 문제 해결 방식이란, 당시 시대적 정신이 충실히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힘이 없고 무능력하며, 복수나, 참교육 같은 것은 무릇 남자에게 맡기고, 남자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생각이 있었기에, 귀신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이런 귀신의 한을 빙자한 남자에게 징징거림은 ‘아 ㅁㅊ 귀신 겁나 답답하네. 죽어서도 남자한테의존질이야’ ‘귀신 고구마다’ ‘그럴꺼면 귀신 하지 마라’ 등의 악플을 받고야 말 것이다. 현대 여성들의 복수란 그야말로‘나의 것’이기에, 남자의 손을 굳이 빌릴 필요가 없다. 그러하기에, 전설의 고향 서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억울한처녀 귀신의 서사는 자연스럽게 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또 하나의 이유는, 티비나, 영화에서 나오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악마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사탄도 이건 나도 좀 … 이라고 할 정도로 머쓱하게 만드는 일을 연일 갱신하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또한 귀신은 철저하게 목적이 중심의 삶을 살며 원한 있는 사람만 조지는데, 악마화된 인간은 불특정 다수를 목적없이 가해하니, 견적만 봐도 인간이 더 무서운 셈이다. 그 인간이 나와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밥 먹고, 함께 걸어 다니고, 마주치고, 만나는 같은 종족(species)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납량특집이니, 전설의 고향 따위는 전혀 와 닿지 못해서 쓸쓸히 사라져버린 것 아닐까.
전설의 고향을 보고 무서워서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자면서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있다.
ㅡ 할머니는 귀신 무섭지 않어?
ㅡ 살다 보니까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야.
그때는 그 말의 온도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귀신보다 무섭다는 것인지. 할머니 나이만큼은 살려면 아직멀었지만, 그 말의 온도가 몇도 인지가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사람이 더 무섭다. 갑자기 등골이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뒤를 돌아보니 귀신이 서 있다. 괜찮다. 입은 손보다 빠르니까. 귀신이 더 무섭다. 꺼져주라.
전설의 고향이 아니라, 고향이 전설 되어버린 것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 않나. 오랜만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불러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인간이라는 고향, 안전했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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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진
사라진 것들의 이유를 생각하니까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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