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 때는 카페에 거의 가질 않았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였던 시기에는 오히려 종종 카페를 찾곤 했었다. 한달에 한 번쯤 그런 외출을 즐겼었다. 나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놓고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어묵 몇 개를 시켜놓고, 국물이나 축내면서 소주를 마시는 사람처럼 나는 그렇게 죽치고 앉아서 매출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손님의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공부하는 사람이 왜 카페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때 나는 그런 공간이 꼭 필요했었다. 독서실이나, 열람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뭐랄까 나라는 존재가 무척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내는 소리도 조심해야 되는 공간에 오래도록 있으면 투명 인간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 하루하루 일기를 쓰기도 했었고, 기도를 하기도 했었다. 어떤 날은 그런 노력의 유효했지만, 또 다른 날에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었다.
그런 날은 번듯한 직장인처럼 차려입고 근처를 카페에 찾아가곤 했었다. 돈이 늘 궁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처럼 커피 한 잔값을 아무렇지 않게 계산하면 기분이 썩 괜찮아졌다. 백수에게 커피 한잔에 사천 원이면 부담스럽지만, 나의 존재에 대한비용이라고 여기면 마음이 편해졌다. 원시 시대에는 사냥하면서 존재를 확인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소비를 통해서 스스로 존재를 확인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평범한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 속에 있으니 답답한 마음도 조금은가시고 어떤 낯선 곳에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카페에 들어서면 늘 바리스타의 시선 속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해서 감히 하나의 카페에 단골이 되는 것은 어려웠고, 나는 유랑하는 사람처럼 이 카페 저 카페를 전전하곤 했었다. 때문에 창업을 결정하고 공간을디자인할 때, 완전히 은폐된 장소를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안방’이다. 이른바 그 시절 나에게 헌정하는 자리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시기에는 그렇게 마음껏 머물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도 같아서, 사람의 위로가 그리운 사람이 있을 것도 같아서, 그런 공간을 마련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안방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고, 거의 사방이 벽으로 둘러쳐져 있다. 추운 계절을 대비해서 바닥에는전기온돌도 설치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곳을 즐겨 찾는 손님은 갓난아기를 둔 주부들이다. 아마도 아기를 바닥에 놀게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편하기 때문에, 행여 아기가 울거나 칭얼거려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엊그제도 어린이집을 자체 휴강한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와 단골손님이 제법 긴 시간 그 자리에 머물렀었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산후조리원 동기들이 모이는 장소를 애용되기도 했었고, 종종 과거의 나처럼 임용시험을 준비하는사람들이 스터디를 하기도 하고, 동영상 강의를 함께 보기 위해서 오기도 했었다. 때때로 풋풋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꽤 오래도록 머물다 가기도 했었다. 그렇게 마음 놓고 편히 머물다가는 손님이 늘어날수록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이 공간이 어떤 안식처와 같은 장소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카페가 누군가에게 그런 공간이 되는 일은 깊은 보람을 준다. 실제로 얼마 전에 나에게 큰 위로를 준 카페 후기는 친정같은 커피숍이라는 포스팅이었다. 나는 이런 불경기에 너무나도 감사해서, 어떻게 갚아야 할지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장사하면서 매출보다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그런 지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루하루 매출에 신경을 쓰는 것이 자영업자의 숙명 같기도 하지만, 그런 욕심을 버리고 편한 휴식 같은 공간을 꾸려나가는 것이 숙제가 아닐까 싶다.
무덥고 한잔한 오후, 카페 앞을 무심하게 흐르는 하천을 바라보면 보인다. 작은 하천이지만 자세히 보면 물이 부서지면서흐르는 ‘여울’이 있고, 물이 모여서 어느 정도의 수심을 이루는 ‘소’도 있다. 그것이 반복된다.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반짝이는 카페는 ‘여울’이라고 여겨지고, 우리 카페처럼 오래되어 때때로 한적한 곳은 ‘소’라고 여겨진다. 그곳은화려하지 않지만 평화로운 수면위에 달래고 싶은 근심을 몰래 내려놓고 오기에 적합하게 느껴진다. 수초가 무성해서 보이지 않음으로 사랑을 나누기에도 좋을 것 같다.
예전에 나는 커피 한 잔 값이 아까워서 서러웠는데, 지금은 그래도 고마운 마음을 갚기 위해서 커피 한잔 즈음은 기꺼이내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꽤 성공한 삶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무쪼록 카페에 들린 손님들이 커피 한 잔의 값이아깝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누리다가 갔으면 한다.
이곳에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고민을 내려놓고 갔으면 한다. 그렇게 되다면 밖에서 보았을 때, 우리 카페에는 사람들이 가득해 보이니 무엇인가 있을 것 같고, 커피 맛이 좋아서 그렇다는 풍문이 돌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또 손님이 다시 찾고, 나를 커피를 내리고, 그렇게 살아지지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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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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