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넘게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고쳐야 할 것이 많이 생긴다. 어떤 것이 멈추거나 부서져 버린다. 그런 일은 아무런 징후도 없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몇 차례에 전조를 보이면서 결국은 터져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몇 주 전에 일어났던 일은 전자에 속했다.
평소처럼 다를 바 없이 테라스 문을 모두 열고 테이블 컨디션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 시작했다. 그날의 배경음악을 재생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켰다. 그동안 새벽공기는 들어오고, 쌓여있던 밤공기는 나갔다. 셀프바에 놓을 물을 받고 레몬은 절반으로 잘라서 넣었다. 그리고 테라스의 그늘막을 펴려고 하는데 일이 벌어졌다.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금속 파열음이 들렸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살짝 느슨해진 그늘막을 보고 어닝을 살펴보니 이내 찾을 수 있었다. 그늘막을 지탱하는 지지대 쪽에 끊어진 와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아홉 시가 되자마자 급하게 시공업체에 문자를 보냈다. 교체 비용은 부가세 포함 이십오만원이라는 답장받았다.
또 며칠 전에는 생두를 볶는데, 쿨러에서 독특한 마찰음이 들렸다. 아무래도 곧 멈출 예정이나 나를 좀 바꿔 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쿨러는 로스팅된 원두를 식혀주는 곳이고, 그것이 멈추면 원두는 예측불가능할 정도로 더 볶이게 된다. 그것은 커피의 맛과 관련된 중요한 부분이고 따라서 완전히 멈추기 전에 미리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로스팅 회사에 전화해서 기계의 전반적인 점검 및 쿨러 교체를 의뢰했더니, 부가세 별도 팔십만원을 불렀다. 부품이 추가되면 금액이 더 발생할 수 있다는 안내도 받았다. 부담되었지만, 선택권이 없으므로 수리를 신청했고 방문 예정일은 한 달 뒤로 잡혔다.
이번 달은 수리의 달인가 싶었고, 또 뭐를 고쳐야 할까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개스킷을 교체할 시기가 된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머신 회사에 전화해서 의뢰했겠지만, 이제는 그 정도의 간단한 작업은 부품만 있으면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 구비해놓은 예비 부품이 있어서 혼자 사부작거리며 교체 작업을 했다. 바가 조금 복잡해졌고, 혼자서 수리하고 커피도 만들어서 정신이 조금 없었지만, 결국은 교체 작업을 무사히 완료했다. 기념으로 바로 에스프레소 한잔을 내렸다. 평소보다 말끔해 보이는 크레마가 떴다. 기분 탓인가 맛도 아침보다 깔끔하게 느껴졌다. 빈 잔을 내려놓고 또 뭐를 고쳐야하나 고민했다.
앉아서 고민할수록 가까운 시일 내에 예상되는 지출은 제법 많아 보였다. 스팀 보일러 압력을 표시하는 물리적 게이지도바꿔야 하고, 스케일을 제거해주는 정수 필터도 한두 달 내에 교체해야 했다. 출장비에 부품비를 더 하면 얼마 정도 나올지 전화하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손가락만 까닥거렸다. 그러다, 문뜩 머신 위에 쌓여있는 머그잔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난 김에 머그잔도 교체해야지 싶었다. 워머 위에 올라가 있는 잔을 하나씩 체크했다. 입술이 닫는 부분을 전등에 비춰가면서 표면에 상처가 보이면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리고 거친 느낌이 드는 것은 한쪽으로 빼놓았다. 한곳으로 모으니대부분 만든 지 오래된 것들이었다. 그것을 미련 없이 버리려 했는데, 막상 쓰레기통으로 넣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것은비용보다는 컵 속에 적혀있는 문구 때문이었다.
우리 카페는 매해 한정판으로 머그잔을 만드는 전통이 있다. 외부 디자인 다 같지만, 내부에는 그 해 일했던 직원들이 써놓은 짧은 글이 적혀있었다. 어떤 해에는 <행복 + 1>이 어떤 해에는 <함께 우리>가 또 다른 해에는 <기다렸어요>가 적혀있었다. 만든지 오랜된 것일 수록 컵은 낡기 마련이고 이제는 몇개 남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컵을 한 곳에 모아두고, 혼자서 손님을 맞이하고, 커피를 내리고 서빙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그러다 문뜩 그 시절 함께 했던 직원들이 궁금해졌다. <행복 + 1>을 적었던 L은 여전히 그날에 적어도 한명에게는 그것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늘 운명같은 사랑을 기다렸던 H는 그 사람을 만나서 그림처럼 그렸던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지 궁금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세개만 버리고 느슨한 기준으로 아직은 쓸 수 있을 것 같은 컵은 워머에 올려놓았다. 조금씩 다른 문구의 컵이 좋았던 구절을 표시하기 위한 갈피처럼 여겨졌다.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카페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누구보다 생각 없이, 그리고 낭만적인 일이라 생각하며 카페를 창업했었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주변에서는 다시 공부하겠지, 혹은 다른 곳에 취직하겠지 하고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나도 사실 비전이나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우리 가족이 한달을 먹고살 돈을 벌고, 직원들이 한 달을 먹고살 돈을 겨우 주고, 이름을 알게 된 손님들이 하는 인사에 기대어서 살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분기마다 사건이 터지고, 뭔가 틀어지고, 뭔가 깨질 때마다 이것만 해결하자, 이것만 바로잡자 하는 마음으로 견뎠다. 계절의 리듬처럼 이어지는 낭만 유지비. 그런데 그것이 결국은 우리 카페를 조금씩 두텁게 만들었다. 힘든 시절은 쪼그라드는 듯했지만 어떤 짙은 경험이 생겼고, 꽃이 피거나 작은 이벤트가 생기는 어떤 시절은 어느새 조금씩 재정의 여유가 생겼다.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조금씩 두터워졌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될 것이라 믿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부서진 것은 바꾸고, 고장 날 것은 미리 고치고, 그 와중에 사람은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고마운 기억은 오래도록 붙잡아야 한다. 그것만 있으면 어떤 문제든 결국은 해결되고, 다시 한번 뭔가 터질 때까지 우리는 평화롭게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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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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