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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열 다섯 번째 뉴스레터는 페미니스트의 아이콘, 글로리아 스타이넘 입니다. 여성의 임신중단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한 번쯤은 등장하는 이름이죠. 무명의 기고가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가 된 글로리아의 이야기, 지금 시작해볼게요.
글로리아는 무명의 자유기고가로 1963년 플레이보이 클럽 바니걸 잠입 취재 기사를 잡지 '쇼'에 실음으로써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29살에 바니걸을 지원해 클럽에 잠입했고, 20일간의 혹독한 근무를 거쳐 ‘저명한 신사들의 밤의 생태에 관한 고백적 체험기'라는 기사를 실었죠.
남성들의 매춘, 웨이트리스의 성차별 문제와 보수가 적은 삶을 폭로하며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글로리아는 이 임무가 끝난 후 저널리스트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1968년, 글로리아는 ‘뉴욕’ 잡지의 편집자이자 작가로 일하며 여성 해방 운동을 포함한 정치 운동과 진보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글로리아에게 페미니즘과 여성 운동에 대한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여성단체 레드스타킹에 의해 진행된 임신중단(낙태) 합법화를 위한 연설회에서 공개 연설을 한 이후부터였어요. 글로리아는 이 연설에서 22살 때 해외에서 임신중단을 한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글로리아는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최초의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를 창간하였고, 여성의 의회 진출 운동 및 인종과 계층을 넘어선 연대운동을 활발히 펼침으로써 1970년대 폭발한 여성운동의 상징이 됩니다.
어느 날, 플로린스 케네디와 글로리아는 보스턴의 한 택시에서 임신중단권 법안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택시 기사가 큰 파장을 일으킬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만약 남자들이 임신할 수 있다면, 낙태는 축복받았을 겁니다”
If men could get pregnant, abortion would be a sacrament
이 문장에 큰 깨달음을 얻은 글로리아는 이후의 연설과 집회, 전 세계의 티셔츠, 배지, 현수막으로 이 슬로건을 퍼뜨렸고, 지금은 글로리아를 상징하는 문구가 되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멘토로도 알려진 글로리아는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감명이 되었고 현재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는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중 한 명이며 임신중단 권리, 여성의 임금과 근로 조건 개선, 그리고 최근에는 아동학대와 인신매매까지 반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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