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구독자님
저는 연휴라서 부모님 집에 와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부모님 집은 두 군데인데 어렸을 적 제가 청소년기를 보낸 고양시 아파트와, 아버지 은퇴 후에 귀농해서 집을 지은 경북 울진 시골이지요, 이번 연휴를 보낸 곳은 고양시입니다, 이곳에 와서는 모처럼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십 수 년이 흘렀으니 중간에 얼마든지 남이 되고 서로 왕래하지 않는 사이가 될 수도 있었고, 또 한 때에 친구였던 이들이 실제로 그렇게 멀어졌습니다만, 그 만큼 이렇게 삼십 대 후반이 되어서도 막역하게 만나서 여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존재는 소중합니다,
좀 웃긴 얘기일 수도 있는데, 제가 20대 시절 나름으로 책도 많이 읽으며 공부하고 무언가 깨닫는 것이 많던 시절에, 가장 절박하게 느꼈던 것이 '철학적으로 깨어난 친구가 많아야 한다'였고, 그래서 문제의식을 행동으로 옮겨서 친한 친구들을 모아서 철학 스터디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혼자 열심히 성장해봐야 남는 것은 외로운 인생이고, 내가 공부하는 만큼 친구들도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게 만들어서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제가 좀 귀엽게 보이는 발상이기도 하고, 또 얼마나 깨달았다고 그랬을까 싶긴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겼나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이 대견하고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발단과 전개가 어찌 되었든 이런저런 계기로 진중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삶의 성장과 자기 발전에 대해 공감을 쌓았던 친구들이, 지금도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들로 남아있으니 말이죠,
연휴 사이에는 고등학교 3학년 때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하나와, 또 고등학교 2학년 때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그 아내까지, 이렇게 차를 마시거나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역시나 꾸준히 왕래하며 서로의 변화를 관찰하고 또 고민을 나눠 온 친구들입니다, 저희들이 청소년기를 보낸 곳은 소위 1기 신도시라 불리는 지역입니다, 아파트가 많고, 블럭별로 기능이 어느 정도 표준화 되어있는, 3호선 역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된 그런 곳이죠,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원주민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이주민이었습니다, 당시의 대부분 신도시 지역이 그랬죠, 그 누구의 고향도 아니고, 모두에게 낯설면서 모두에게 새로운, 하지만 또 다들 새로운 삶을 찾아 이곳에 이주한, 그런 생활상의 모습이 그 당시 어렸던 제 눈에도 많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린 시절 처음 이사왔던 것이 97년이니, 이미 무려 햇수로 27년이 지났고, 신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제 그 수많은 아파트들은 소위 구축 아파트로 분류되는 옛날 아파트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권은 베이비부머와 그 자식들이 은퇴하고 성장하여 떠나간 후에 다른 양상으로 변모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생각 외로 많은 친구들이 결혼 후에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독립해서 떠났다가 아파트로 다시 고양시로 돌아온 경우도 많고, 직장은 서울이어도 거주를 고양시로 선택한 경우도 많죠, 여러 인프라를 포함해서 '살기가 좋은' 것으로는 역시 1기 신도시 아파트촌의 삶이 서울 도심 인근보다 나은 면이 많이 있습니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까지 포함되면 더욱 장점이 많아지죠, 그들은 고양시를 떠났어도 또 다른 신도시 지역의 젊은 부모들이 되기도 했고요,
이런 동네인데 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제가 이곳을 '고향'이라고 인식하고 표현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향이라는 말은 여러 다른 나라의 언어적 특성과 해석을 살펴봐도,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의미, 즉 태어났다는 것과 자랐다는 것 양쪽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태어난 곳도 아니거니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전학 온 곳이니 더욱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은 시간이 길었죠,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 돌이켜보니 그런 얘기를 하기에는 부모님과 가족이 이곳에 정주한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훨씬 길어졌고, 제 개인의 삶에서도 '이쯤되면 여기가 고향이 아니면 무엇인가' 정도로, 성장기가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는 동네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연휴가 되어서 '고향 친구'들과 만나면서, 그래, 옛날 얘기가 있고 부모님이 계시는 동네이고, 그렇기 때문에 명절에 모이는 동네, 그리고 어린 시절 친구들이 있는 동네가 고향이 아니면 또 무엇인가, 다른 고향이 있긴 한가, 여기가 고향이네, 같은 얘기들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인 제 또래들은 아마 비슷한 감성을 지닌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친구 부부와 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잠시 걸어서 같이 이동하는데, 그 길이 정확히 20년 전에 친구와 걸어서 집에 가던 하교길이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많은 것이 변했지만, 또 놀랍도록 그대로이더라고요, 만나면 옛날 얘기에만 빠지기보다 요즘 살아가는 얘기나 미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존재는 참 소중한데, 앉아 있을 때에는 한참 서로의 커리어나 사업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그 길을 다시 걸어가면서는 역시나 20년 전 추억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는 고향 얘기를 하시면, 맨날 여기서 저기까지 다 논밭이었는데 개발되었고 어쩌고 하는 얘기를 하시는데, 한 편 저희 세대에게는 이미 모두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 머물렀던 고향이기에, 한참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인 면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다른 지역에 독립해서 나갔다가도 결혼해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친구들을 보면, 역시 신도시에서 자란 세대에게 이러한 주거 형태와 도시 양상은, 시대의 여러 정치경제적 요인을 반영했던 동시에, 또 이후의 세대 감성을 결정하는 요인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고향의 정서는 좋습니다, '고향의 맛'은 역 근처 노점이나 상가에서 팔던 군것질의 맛이죠,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서, 다들 오랜만에 오면 떡볶이나, 와플이나, 계란빵이나 그런 걸 먹는다더라고요, 오히려 정확한 그 맛들이 좀 없어져서 아쉽죠, 때로는 고향에 대한 관념도 기준도 정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그저 제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부담스러움은 적고, 소중한 것은 더 많은, 고향에서의 시간들이 함께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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