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왁자지껄한 상황 속에 며칠을 꿈같이 보내고 왔더니 평소엔 그래도 수면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던 외로움이 짙게도 운무같이 제 주변을 머물고 있습니다.
11월의 한국행은 약속된 일정이었어요. 나와의 약속이요. 아주 오랜 친구가 가을의 신부가 되어 결혼했습니다. 그 친구와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풀어 놓는다면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할 만큼 그 친구는 저의 20대의 많은 추억 속에 늘 자리 잡고 있던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에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져, 말을 걸어도 쉬이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 말이죠. 처음에는 그것이 나의 잘못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전 프랑스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에 의한 고통에 머물러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이 친구마저 이렇게 되니 결국에 모든 건 내 탓이었구나, 라는 결론을 받았었습니다. 꼭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저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함께했던 다른 친구들에게서도 그 친구는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2년이 흐르고 친구는 전과 다른 행동과 말투로 나타났습니다.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난 친구들이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려 했지만, 그 물음마저 꺼낼 수 없을 만큼의 지독한 침묵만이 존재했습니다. 영상통화로 잠시나마 인사를 건넸던 그 찰나에 저도 확실히 그 어려움을 느꼈었습니다. 처음에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았을 땐 청년 고독사까지 생각하며 온갖 걱정을 했었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일 때문에 그렇다는 답변을 한참 뒤에 받았을 때, 그래도 답변은 왔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안심했어요. 그 뒤로 혼자 메아리 같은 연락을 보냈었지만 바로 답이 오는 적이 없었고, 나중엔 그런 친구에게 매우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나 혼자 애쓴다고 인연이 잡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이 친구에게도 해당하는 일이 되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늙어서도 연락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 받을 친구 중의 한 명이 이 친구였거든요. 그렇게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고, 외국에서 학기 중이기에 참석할 수 없음을 밝혔지만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걸렸던 것은… 이 친구와의 마지막이 이렇게 정리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흐지부지 끝이 난다는 것이요. 적어도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동안 나는 이 친구에게 늘 고마웠고 저의 든든한 지지자였기 때문에 이런 끝으로 이 친구를 기억에 넣어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식장에 들어서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아무 연락없이 찾아온 나를 보고 친구가 반가워하지 않아도 상처 받지 말자고요. 그때까지도 무섭고 잠시 두려웠습니다. 상처를 받을지도 모를 일 앞에 서는 것은 늘 그래요.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고, 나를 보며 기뻐해주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벨도 없이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아직도 나에겐 이 친구를 향한 우정이 전과 같이 있었던 것이죠. 나만 놓으면 되는 관계라면 놓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조금 쌀쌀맞아도, 그것이 자주가 아니라도 괜찮다면 이제 그 뒤에 있는 것들은 내 몫입니다. 나만 괜찮으면 그대로 괜찮은 것입니다. 그렇게 친구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고 다른 친구들과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지인들을 만나며 바쁜 나흘을 보내고 바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프랑스에서 친구가 없는 상태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 군중과도 같은 친구들 사이에 있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었는지 잊고 있었어요. 없어도 괜찮은 것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생기면 없었을 때 어떻게 보냈는지가 기억나지 않게 됩니다.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하는 일들 앞에 섰는데, 평소엔 느껴지지 않았어야 할 외로움이 제 옆자리에 계속 있습니다. 지금의 생활이 '버티는 중'이라는 분류 속에 들어온 지 꽤 되었는데 그 분류를 유지하기에 곤란하게끔 만드는 외로움입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겨울입니다. 마음도 환경도 차가워지는 계절에 겪는 외로움이라니, 좋지 않습니다. 그저 시간이 흘러 변화하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아주 어릴 땐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을요. 다시금 가서 나에게 직접 내가 말을 하고 온대도 그때의 나는 여전히 믿지 못하는 어린아이일 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순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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