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바빴던 시간들이 조금 정리가 되었습니다.

파리에서의 남은 생활을 개월 수로 꼽아보면 이제 어느 덧 다섯 손가락 정도면 얼추 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확히는 한 손가락이 더 필요하지만요.

11월 이후로 통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변명이라고 하면 변명이지만 늘 이 곳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럴듯한 말이 생각나지 않기도 했고 또 할 일들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여행 일정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산다는 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게, 저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환승센터에 거주하고 있어서 온갖 지역들을 광역 버스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파리에서도 다양한 나라와 지역들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 빌미로 루마니아를 몇 번 다녀왔고, 폴란드도 한 번, 인접 국가들은 참 여러 번 왔다갔다 했어요. 이번에는 독일을 다녀왔습니다. 겨울의 독일은 처음이었기에 기대감이 조금 있었는데 웬걸 이렇게나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날씨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말이에요.

이번 독일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하이델베르그 Heidelberg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마다 각자의 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워낙 해를 보기 어려워서, 해가 뜨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춥고 자시고 할 것 없이 테라스로 나와 테이블 한 자리를 차지하죠. 저는 우울하지는 않지만 의욕이 없어지는 편입니다. 뭘 하기가 싫어지는 날씨죠. 오전 8시가 지나도 해가 아직 제대로 보이지 않아 깜깜한 날씨엔 더더욱 침대 밖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날이 추워서라기 보다는 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번에 만난 독일의 겨울은, 한 때 한 번은 아쉬워 했던 제 감정을 제대로 지우게끔 해줬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프랑스가 아닌 독일로 유학을 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해 본 적 있어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임금이 더 높아서요. 하지만 이젠 그건 제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긴 합니다. 지금의 저는 졸업 후에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요.

여행을 다녀오고 학교의 밀린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객관식으로 출제될거라는 시험 문제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주관식으로 나와서, 아직 제 점수를 가늠조차 못 하고 있지만 어쨌건 시험은 끝이 났습니다. 설계 과목은 예상보다 수월히 끝이 났어요. 이렇게 잠도 잘 자고, 놀기도 잘 놀면서 끝낸 설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회사는 일주일에 두 번, 목금만 출근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많이 늘어났어요. 그래서 겸사겸사 또 여행들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올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마 당분간은 유럽으로 나올일이 없을 것이기에 그 전에 미리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가보려고 해요. 가고 싶었던 곳이 아니더라도 금전적으로 괜찮은 부분들이 있다면 그곳들을 망설임 없이 가보려고 합니다. 일상이 단조로워지면 할 말이 적어져요. 그러니 앞으로는 작은 여행을 하게 되면 그 이야기들을 해드리려 합니다.

참, 파리의 생활을 마무리하며 파리 주변 근교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따로 묶으려 해요. 작가로서의 저를, 슬슬 준비하려 합니다.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아직 설날이 오지 않았으니, 해도 될 말이겠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