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메신저에 퇴근 플래그를 켜고 나니 저녁 8시 1분을 막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몰아친 업무로 잔뜩 지친 상태이다 보니 자연스레 TV로 눈길이 가더군요.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젓고는 어젯밤 읽다 잠든 책을 다시 꺼내들었죠.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읽다 내려둔 노란 표지의 책을요. 저는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닙니다. 절대적인 독서량으로 따지면 아마 명함도 못 내밀 겁니다. 저처럼 글을 소화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은 책 한 권을 독파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다독가 지인들을 보면 신기하고 놀라우면서도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다독가들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어내면서도 내용을 대충 훑거나 소홀히 평하는 경우가 드물더라고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저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 김에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세어보았습니다. 많은 수의 책은 아니었지만, 그 책들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작품들을 골라 소개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기쁜 소식이 하나 있기도 했었는데요. 첫 번째 뉴스레터 발행 후, 한 구독자분으로부터 값진 응원을 받았습니다. 메일리에서는 '커피 한 잔 값의 응원'이라 이야기하지만,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 이상의 값진 응원이었습니다. 그 구독자분이 응원글에 남겨주셨던 모든 문장들이 생생히 떠오르지만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마지막 한 마디였어요.
"언젠가 책에 대한 내용은 어떨까요?"
이 한 마디를 보고 멀리 갈 필요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책은 머지않아 다루려고 했던 주제이기도 했거든요. 세 번째 어프로치는 독서가들을 위한 뉴스레터로 준비했습니다. 이번 어프로치에도 광고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편지
평소 책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접하시나요? 제 경우에는 오늘 소개해 드릴 팟캐스트나 영화와 같은 매체를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으면서도, 출판사에서 매주 또는 격주마다 보내주는 뉴스레터를 참고하기도 합니다. 출판사들이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는 북 큐레이션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들이 실려있어서, 독서가들끼리 직접 소통하고 교류하기 좋은 또 하나의 창구가 되기도 합니다. 뉴스레터마다 차별성도 각기 다르니 아카이빙 된 편지를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참고가 될 것 같아요.
📩 지난 편지함 링크 모아보기
- 민음사 : 매주 수~목요일에 한 번 발송되는 뉴스레터 <한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들이 선정한 도서들과 함께 특정 주제에 기반한 화두들을 던져줍니다. 편집자들이 남긴 코멘터리를 읽는 재미도 있고, 책과 관련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에 대한 정보도 간간이 얻을 수 있습니다. (링크)
- 반비 : <책타래>라는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들의 장바구니를 소개해 주기도 하고, 인상 깊은 책의 구절을 인용하기도, 이따금 작가들의 추천사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링크)
- 문학동네 : 문학동네는 시를 다루는 뉴스레터 <우리는 시를 사랑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한 두 편의 시를 소개하고, 실린 시를 큐레이션한 '시믈리에'가 소개된다는 점이 차별화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링크)
- 창비 : 고민 해결 독서단을 줄이면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고독단>입니다. 그 이름처럼 삶의 고민과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된 북레터입니다. 매주 주기적으로 발행되고 있으며 지난 편지들도 노션을 통해 잘 아카이빙 되어있으니 살펴보시기 편할 거예요. (링크)
도서 원작이 있는 영화
원작이 있는 영화의 팬층은 더 두텁기 마련입니다. 물론,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구현하지 못했다며 비난을 받는 영화들도 적지 않지만 그 역시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 책(원작)에 대한 애정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생각보다 도서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가 많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동명 소설의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될 때가 종종 있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뒤늦게 원작을 찾아보는 것도 제게는 일종의 재미입니다.
'이 배우가 연기했던 인물이 원작에서는 이런 색깔을 가지고 있구나, 책에서 나왔던 상징이 영화에서도 똑같이 나오네.'
이렇게 책 한 권을 다 끝내고, 본 영화를 다시 재생하며 원작의 내용과 대조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 비슷한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를 떠올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도서 원작이 있는 영화 중에서 어떤 영화를 추천해 드리면 좋을까 곰곰이 고민하다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그리고 <듄>처럼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들은 제외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토리가 원체 방대하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다 보니 이미 보실 분들은 다 보셨겠다 싶더라고요. 오늘 제가 소개드릴 영화는 1시간 42분이라는 비교적 합리적인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입니다.
영화 <월플라워>는 영화 <원더>를 디렉팅한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작품입니다. 예고편에도 이미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엠마 왓슨과 에즈라 밀러, 로건 레먼이 출연한 작품으로 '청춘', '성장통'과 같은 단어와도 잘 어울립니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남자 주인공 찰리가 샘과 패트릭 남매를 만나고부터 겪는 변화를 매 장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소극적인 태도의 그와 달리 자유분방한 생활이 익숙해 보이는 샘과 패트릭 남매는 찰리의 인생에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줍니다.
과정에서 찰리는 전에 없었던 감정을 샘에게 느끼며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과거의 트라우마와 마주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결핍의 터널 끝, 무한함을 느끼는 샘을 조명하는 장면에서 깔리는 David Bowie의 'Heroes'는 영화의 장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러닝타임이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여운이 긴 영화이니 목요일, 금요일 밤에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책 읽으며 듣기 좋은 앨범과 노래
저는 주로 책 읽을 때 노래를 잘 듣지 않는 편인데, 때로는 적막이 오히려 방해가 될 때도 있어 가사 없는 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틀어놓을 때도 있습니다. 구독자님은 어떤 스타일이신가요? 혹여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신다면, 제가 오늘 소개 드린 앨범들을 배경 삼아 한 번 들어보세요. 지나치게 요란하지도, 정적이지도 않아 적당한 무게감으로 소화할 수 있는 앨범들입니다. 소개 드린 곡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도 추천해 드릴게요.
크러쉬 [From Midnight To Sunrise]
앨범 커버가 유명 아이스크림을 닮아 <엑설런트 앨범>으로 잘 알려진 크러쉬의 정규 2집입니다. 12개의 수록곡 중에서도 앨범의 인트로 곡으로 삽입된 'From Midnight To Sunrise'는 곡의 제목처럼 차갑고 푸르스름한 새벽부터 동이 트는 순간까지의 순간을 표현한 듯한 곡입니다. 피아노와 드럼 그리고 호른이 만나 재지한 느낌을 극대화한 곡입니다. 책 한 장을 넘길 때쯤이면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가 들릴 거예요.
Iron & Wine [The Sea & the Rhythm]
포크계의 신데렐라, 아이언 앤 와인의 앨범 <The Sea & the Rhythm>에 두 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곡입니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타 선율과 속삭이는 듯한 보컬이 날이 흐린 날의 바닷가와 모래사장을 연상시킵니다.
"집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설계할 때 불이 잘 나지 않을 집,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 집, 그런 것에 가능한 한 신경쓰지. 그것이 건축가에게는 중요하거든. 그렇지만 말이야, 만일에 도쿄 전체가 전부 불타버리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 집만 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건 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
여름 별장을 밤의 어둠 속에서 올려다보는 것은 좋은 풍경이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 모습은 안 보인다. 그래도 백열등 빛은 인기척을 띠고 있는데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표시로 보였다.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중에서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건축과 공간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탁월한 묘사를 보여준 마쓰이에 마사시의 장편 소설입니다. 이 책은 제가 여름휴가 때마다 꺼내읽는 책이기도 한데요. 가루이자와 산자락 깊은 곳에 있을 무라이 건축사무소의 여름 별장을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소설이 끝나있습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은 책이다 보니 이제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아는 지인처럼 느껴집니다. 습기에 젖은 흙을 밟는 감촉과 새소리, 벽난로의 장작이 타는 소리.. 상충되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담백하면서도 섬세한 감정 묘사가 백미입니다. 사계절 중 가장 쾌청하고 생동력이 넘치는 여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에도 주목해 보세요.
Cigarettes After Sex [Sweet]
곡의 분위기, 멜로디만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가수는 몇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곡들은 퇴폐적이고 침잠된 듯한 무드를 자아내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가사를 들여다봐도 연인과의 사랑의 언어를 은밀하게 노래하는 곡들이 다수입니다. 이 곡 역시도 연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한 사람의 시선에서 다뤄집니다. 가수의 코멘터리에 따르면 '한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하네요.
Bruno Major [To Let A Good Thing Die]
브루노 메이저의 앨범은 듣기 편안하고, 지나치게 기교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자주 찾게 됩니다. 나른하고 편안하면서도 아늑한 그의 정규 2집은 독서에 훌륭한 배경 음악이 되어줍니다. 타닥타닥 불씨가 튀는 벽난로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싶다면 이 앨범과 함께 해보세요.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에세이 <환희의 인간> 중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에세이지만 흡사 시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생활감이 묻어 나오는 에세이만 잔뜩 읽다가 오랜만에 예사롭지 않은 색채를 뽐내는 문장들을 만났습니다. 심연을 지겨울 정도로 경험하고 그곳에서 유유히 걸어 나온 이가 책을 쓰면 이런 모습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아주 어두우면서도 나른하고 동시에 낭만적인 에세이입니다.
✍🏻 Editor's Note
원래는 다음 주에 발송되어야 하는 편지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주 일찍 발송하게 되었습니다. 예약 발송을 걸 수 있기는 하나, 발송되는 주에 들어오는 피드백에 바로 답신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 조금 앞당겨 보내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번 편지는 독서에 관심이 없으셔도 흥미를 가지실 수 있을 만한 내용들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구독자님도 부디 즐겁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미래의 집을 상상할 때면 꼭 서재가 있는 집을 그리고는 했습니다. 으리으리한 서재여도 좋고,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여도 좋겠다 싶었죠. 그렇게 수 년에 걸쳐 책을 모으고, 그 책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만큼 책장은 제게 굉장히 사적이고도 의미 있는 영역이자 공간인데요. 이제 더는 서재 있는 집을 바라진 않지만 아직까지도 로망이 하나 남아있다면, 소중한 사람과 서로의 책장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읽는 책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다소 섣부르겠지만, 한 사람의 세계를 얄팍하게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구독자님의 책장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있나요? 앞으로 어떤 책들로 채워나가고 싶으신가요? 재밌게 읽은 책을 누구와 함께 나누고 싶으신가요? 댓글로 의견을 남겨주셔도 좋겠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아 편지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이도록 할게요.
그럼 다음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예은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예은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어프로치 Approach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