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아일랜드
2022년 4월 아일랜드에는 조금 특별한 인구조사가 진행되었다. 시민들은 늘상 작성하는 문항들을 체크하다가 조사표의 맨 마지막 빈 네모 칸에서 잠시 멈췄다.
타임캡슐
이 타임캡슐에 제공하는 정보는 선택 사항이며 1993년 통계법(Statistics Act 1993) 제24조에 따라 수집됩니다. 이 내용은 다른 인구조사 자료와 동일한 수준의 기밀 보호 조치를 적용받으며 100년 동안 비공개로 보관됩니다. 100년이 지난 후, 이 타임캡슐은 공개 기록으로 전환되어 일반에게 공개됩니다. 직접 손 글씨로 작성하는 메시지 전용 공간입니다. 사진이나 기타 부착물은 제거되며 반환되지 않습니다.아일랜드 센서스 2022 조사표, p.23

반은 장난 같은 이 타임캡슐은 아일랜드의 통계청(CSO)이 2019년 정부 승인을 받아 공식적으로 도입한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당시 인구조사 책임자는 UNECE(United Nations Economic Commission for Europe) 워크숍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사표에 개인적인 기록을 남길 공간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있었어요. 2022년은 마지막으로 하는 종이 조사였고, 손 글씨로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죠.”
Eileen Murphy
타임캡슐 부분은 처리 과정에서 모자이크(비식별화) 처리가 적용되었으며 CSO는 해당 공간에 내용이 기입되었는지 여부만 표시하고 그 외의 정보는 일절 수집하지 않았다. 구체적 내용 또한 공개하지 않으며 작성된 타임캡슐의 건수만 통계로 발표할 예정이다. 통계법에 따라 2122년 일반 공개 시점까지 엄격히 보관하며 비공개 상태로 유지된다고 한다.
센서스와 기록
UN은 센서스를 '특정 한 시점에 한 국가 또는 일정한 지역의 모든 사람, 가구, 거처와 관련된 인구, 경제, 사회학적 자료를 수집, 평가, 분석, 제공하는 전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SAA Dictionary에서 센서스는 '인구의 모든 구성원을 세는 것으로, 구성원의 나이, 성별, 민족, 직업, 생활 조건 등과 같은 특정 속성에 관한 정보도 포함한다'라고 설명한다.
세계 최초의 센서스는 1790년 미국에서 실시되었다. 이후 영국이 1801년, 캐나다가 1871년, 일본이 1920년, 중국이 1953년부터 센서스를 시작했다. 조사 주기는 나라에 따라 5년 또는 10년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인구조사는 1925년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간이국세조사'였다. 주도한 기관과 시대를 보면 알 수 있듯 당시의 주요 목적은 노동력 착취와 경제적 수탈이었다. 사실 1920년 10월에 제1회 국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1919년 3·1운동의 여파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인구조사는 해방 후에도 한국전쟁 등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시기를 제외하고는 5년마다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렇다면 올해는 뭐다? 인구총조사 100주년!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에서도 그 문구로 홍보 중이다. (통계청은 2025년 10월 1일자로 국가데이터처로 승격함, 이하 이 글에서는 편의상 통계청으로 표기할 예정.)
그렇다. 지금은 인구주택총조사 기간이다. 1975년까지는 10월 1일에 실시했지만 농번기, 날씨 선선한 이사철, 추석 연휴 등의 여러 이슈로 1980년부터 11월 1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기록과 사회 뉴스레터 순번이 인구주택총조사 기간에 돌아오길 (혼자) 간절히 바랐는데 이루어졌다. 이 글을 쓸 수 있으니!😁
센서스에 있어서 IBM 펀치 기계, OMR, 인터넷 사용 등 조사 기술은 바뀌어 왔지만 핵심은 동일하다. 사람과 가구의 수를 세고,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고, 사회를 그리며, 그것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것.
따라서 센서스는 국가통계시스템의 근본을 이루는 핵심 통계로 사회적 변화의 분석 도구로써 미래 예측과 대비를 할 수 있고, 정책 결정 및 국가 운영의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또한 사회적 책임과 집단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끼치며 역사적·학술적 연구 가치를 지닌 기록이기도 하다.(SAA)
영국에서 가장 최근에 실시한(2021년) 센서스 문항에는 만 16세 이상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이 출생 시 등록된 성별과 다른가?"를 묻는 추가 문항을 신설했다. 또한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을 묻는 문항을 도입하여 이성애/동성애/양성애 여부를 자율적으로 응답하게 했다. 이는 영국의 성소수자 인권과 규모 파악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표본조사)의 조사 항목에는 '가구 내 사용 언어', '한국어 실력', '결혼 계획 및 의향', '가족 돌봄 시간', '자전거 보유' 등이 신설되었다. 또한 '자동차 보유 및 주차장소' 항목의 대수가 추가되었으며 '난방시설'에는 신재생 에너지가 추가되었다. 외국어 조사표 또한 2015년 8종, 2020년 10종에서 2025년은 20종으로 확대되었다. 여러분은 이러한 변화에서 시대의 얼굴을 보았나요?
다시 2022년 아일랜드로
상술한 바와 같이 센서스는 국가통계이자 공공기록이기도 하며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다. 물론 조사 항목 작성에 있어서 공공기관이 늘 그러하듯 피드백을 반영하기도 한다.
아일랜드는 2022년 센서스를 위한 준비를 2017년부터 시작했다. 여러 정부 부처와 시민 단체, 학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공청회가 열렸고, 인구조사자문위원회가 이를 주관했다. 위원회는 400건이 넘는 의견서를 검토했고 그중 일부가 '개인화된 서술 공간'인 타임캡슐 아이디어로 이어진 것이다.
2022년 9월 열린 “Conference of European Statisticians – Workshop on Census 2020 Round Post-Enumeration and Evaluation” 회의의 발표를 보면 아일랜드 CSO는 타임캡슐의 목적과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국민이 자신의 인생이나 가치관을 개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그 목적이며, 이러한 기록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사회사적 아카이브(Social History Archive)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CSO는 1911년 인구조사 기록에서(아마도 2011년에 공개되었을 거다) 아일랜드의 혁명가 션 맥 디아르마다(Seán Mac Diarmada)의 응답을 발견했다. 그는 당시 조사표의 '혼인 여부' 항목에 아일랜드어로 이렇게 적어두었다.
"미혼이지만,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조사 홈페이지는 “1901년과 1911년 인구조사 기록을 볼 때 우리가 느끼는 연결감처럼, 2122년의 사람들이 우리와 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2019년 타임캡슐 항목이 최종 승인된 이후 보도 자료가 배포되면서 아직 3년이나 조사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국민들의 매우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는 역대 최대 수준의 센서스 응답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자신이 작성한 타임캡슐을 #TimeCapsuleStories라는 태그로 SNS 등을 통해 공유하며 이는 참여형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들의 메시지

“메이요가 드디어 전아일랜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나요?”
아일랜드 서부 ‘메이요 주'의 유명한 축구팀이 1951년 이후 All-Ireland Senior Football Championship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으로 유명해 밈으로 사용하는 문장이라고 한다. 롯데 자이언츠 팬은 남 일 같지 않다.😢

2122년에 펭귄이 멸종되고 사진도 존재하지 않을까 봐서 그림으로 남겼다. 실제로 멸종 위기 동물이나 식물 등을 언급하는 내용, 기후 위기를 걱정하며 후대에 미안함을 전하는 메시지 등이 많이 있었다.

아키비스트래요! 뮤지션이기도 한데 적을 칸이 없어서 남긴 메시지.

"하이네켄이 6.8유로라니, 100년 뒤엔 좀 나아졌길 바란다."

저 로또 번호가 당첨되었는지는 후손들의 전답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Áine Flynn은 자신의 반려견 Darcy의 발자국을 찍고 그림을 그렸다. 친절하게 시추와 말티즈 믹스라는 안내도 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인구조사에 포함되지 못한 아이를 기억하기 위해 메시지를 적었다.
“에스틀린은 우리의 첫 아이이자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녀는 인구조사에 한 번도 포함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그녀의 이름을 남길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창의적이며, 유머러스했고, 나이에 비해 놀라울 만큼 영리하고 당당한 아이였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부모였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앞으로도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레몬즙으로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남긴 이도 있다. "100년 뒤의 사람들이 생각만큼 똑똑한지 두고 보자."
저명한(?) 이들의 메시지를 모아 놓은 기사가 있어서 공유한다.
https://www.irishtimes.com/life-and-style/people/dear-future-ireland-a-message-from-2022-1.4835963
공적 기록이 개인 기록으로의 전환되는 순간
아일랜드의 타임캡슐은 공적 기록이 어떻게 개인의 서사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실험이었다. 센서스는 본래 ‘모든 사람을 동일한 기준으로 정리’하는 행위인데 타임캡슐은 그 틀 안에서 개별 서사를 복원함으로써 기록과 권력의 관계를 전복시킨다.
국가의 질문지 안에 시민의 문장이 개입하는 순간, 통계는 곧 기록으로 변한다. 정형화된 응답란의 여백에는 규격화되지 않은 문장들이 들어섰고 그 안에는 2022년 아일랜드 사람들이 남긴 감정과 유머, 애도와 희망이 함께 자리했다.
이 문장들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한 시점의 사회를 비추는 작은 기록물이다. 물가나 식생활 같은 일상의 단면은 물론 팬데믹으로 인한 상실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연대, 기후 위기에 대한 불안 같은 시대의 정서가 묻어 있었다. SNS에 공개된 일부 사례만으로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 조각들만으로도 2022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한 사회의 분위기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여백, 그것이 바로 기록의 자리다. 이를 공유하는 순간 이것은 이야기가 된다. 2122년 이 기록들을 펼쳐볼 역사학자, 문화연구자, 언론인, 아키비스트 등은 아주 바쁠 예정이다. 나는 150살까지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 저 타임캡슐을 꼭 내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2025년 대한민국
내가 100년 후의 사람들이 볼 글을 남긴다면 과연 뭐라고 쓸 것인가. 우스갯소리로, 과거로의 회귀를 대비해 외워둬야 할 주식, 코인, 로또 번호 같은 것도 있지 않나. 나는 미래로 가는 건 아니지만 무엇을 남겨야 후대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도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도 2025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은 이렇게 적을 것 같다.
"쓸데없이 바쁘지만 겨우 살아 있었다."
"롯데는 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올해는 제법 잘해서 기대했더니 내상이 더 크다."
"진짜도 가짜라고 의심하고 가짜도 가짜라고 의심하는 세상이다."공드리
아마 백 년 뒤 누군가 이 문장을 읽는다면 그때도 누군가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 있고 누군가는 드디어 우승한 팀의 야구 경기를 보며 그래도 한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100년 전 사람이 아등바등 살아갔고 롯데는 원래부터 못 했단 걸 알면 그들에게 위로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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줍줍
아침에 수신된 이번 뉴스레터를 읽으며 기록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정량적인 조사에도 사람의 이야기를 수집하니 확 다채로워지네요. 넘 좋아서 댓글을 안 달 수 없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공드리
우와! 댓글을 보니 정말 감동적이고 힘이 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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