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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혼인신고서

접수했지만, 기록되지 않는 문서에 대하여

2024.07.01 | 조회 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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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기록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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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친한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비공개 SNS에 올렸다. 한동안 가깝게 지내다가 먼 지역으로 이사 간 뒤 뜸하던 친구였는데, 오랜만에 기쁜 소식이라 매우 반가웠다. 사진을 보니 친구의 배우자는 동성이었다.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는 몇 있지만 대부분 조용히 연애나 동거만 하는 편이 많았고, 이렇게 동성 부부로서 혼인 사실을 알린 친구는 처음이라 더욱 축하해 주고 싶었다. 축의금을 보내며 안부 겸 향후 계획을 묻자, 현재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고 조촐하게 결혼사진만 찍고 혼인신고서를 접수했다고 말했다. ‘혼인신고서?!'

2.

오래 전 김조광수 감독의 일이 떠올랐다. 2013년 그가 배우자와 제출했던 혼인신고서가 불수리 처분되자 불복 소송을 냈던 건이다. 2016년 5월 당시 법원은 결혼이 ‘남녀 간의 결합’임을 전제하고 있으며, 당사자의 '성별을 불문하고 두 사람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결합’ 만으로 혼인을 확장 해석할 수는 없다고 기각했다. 

친구의 이야기에 내가 모르는 사이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가 가능해졌던 것인가 싶어 검색을 해봤더니 2022년 3월 25일, 가족관계등록 전산시스템이 정비되면서 접수가 가능해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일반적인 혼인신고 절차는 행정 전산시스템에 ‘접수’한 뒤, 담당 공무원이 양측의 가족관계증명서와 관계 서류를 ‘기록’하고, 해당 서류를 법원으로 보내기 위해 등기번호를 부여하는 ‘교합’ 과정으로 진행된다. 기존에는 1단계 접수조차 어려웠다면, 현재는 제출하면 담당 공무원이 해당 서류를 받아 신고서를 시스템에 등록('동성의 경우에도 등록하시겠습니까?'라는 팝업이 뜨고, '예' 버튼을 클릭)해 접수까지는 진행한다고 한다. 물론 이후 기록 절차에서 '현행법 해석 및 관례로 미루어 동성 간의 혼인은 수리할 수 없음'으로 불수리 처리되지만...

그럼에도 매달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가 접수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성 혼인신고 등록 접수'가 행정의 전산시스템에서 공식적으로 가능해지면서 동성 부부로서 혼인신고를 시도했다는 기록이 남게 되고, 이것이 국내 인구조사 통계 자료 혹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부부간 여러 행정적, 법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작은 움직임라고 한다. 내 친구가 '남녀'에서 '두 사람'으로 법적 가족 구성원의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앞서 말한 2016년 김조광수 감독 부부 판결문에 서울서부지검 재판장이 덧붙였던 말이 있다. “혼인·출산·자녀 양육의 과정으로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만들어지고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발전하는 토대가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성 간의 결합이 남녀 간의 결합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다”라는 제법 그럴듯한 문장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현재 혼인과 출산, 자녀 양육의 과정을 이행하고있는 동성 부부가 탄생했다. 재판장이 기각을 위해 언급했던 사회 유지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이 부부가 혼인신고서 불수리, 혹 동성부부의 자녀 양육에 대한 권리 등으로 불복 소송을 하게 되면, 재판장은 해당 구절에서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

"구청에서 (혼인신고서 수리 건으로) 소동이 이는 동안 죄송했어요.
저 하나 때문에 세 명의 공무원이 붙어있었고 뒤에 있는 사람들도 주시하며
긴장해 있었어요. 그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런데 미안할 일이 아니잖아요.
나는 혼인신고를 한 것뿐인데. 그래서 더 비참했어요.”

국내 첫 임신 동성 부부 가운데 김규진 인터뷰 중

4.

몇 년 전 결혼 후 혼인신고서를 쓰던 일이 떠올랐다. 두 사람의 혼인이 행정문서에서 ‘사건’으로 분류, 기록되는 것이 웃겼고, 또 너무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되는 것에는 허무했던. 가까운 친구의 결혼 소식에 일상에서 쉽게 뗄 수 있는 행정문서의 또 다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또한 누군가는 어렵게 증명 해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 혼인신고서 작성 과정이 궁금하면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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