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Before Bitcoin: Pt.4 — 00s “New Millenium” by pet3rpan (May 2018)
사람들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둘러싼 이 모든 흐름이 비트코인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비트코인은 어디서 왔을까?〉는 암호화폐의 기술과 철학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연재입니다. 이 연재에서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까지 깊숙이 파고듭니다.
이번 글에서 충분히 얻어 가려면 앞선 편들을 먼저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연재의 묘미는 새로운 지식을 얻는 데 있다기보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독특한 자리에 서 있는지 실감하는 데 있습니다. 연재 전체는 분량이 제법 길지만(현재까지 1시간 6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부: 1970년대, 2부: 1980년대, 3부: 1990년대
처음에는 5부작으로 기획했지만, 4부에서 연재를 마치기로 했습니다. 5부에서는 비트코인과 초기 포크를 다룰 예정이었지만, 제가 전하려던 내용을 다룬 자료가 이미 충분히 나와 있어(글 끝에 링크해 두겠습니다) 이 마지막 글로 전체 연재를 매듭지으려 합니다 :)
90년대에 이어서
이 운동은 미국 정부의 부당한 행태와 디지털 권리 처리 방식에 맞서 싸웠습니다. 발단은 일련의 해커 단속(raid)이었고, 이는 사이퍼펑크(cypherpunk)와 정부가 10년 동안 벌인 충돌에 불을 붙였습니다. 시민의 권리를 지키려는 쪽이 승리하면서, 세상은 이미 1992년과 달라져 있었습니다. 암호학(cryptography)은 군수품 관련 수출 규제에서 빠졌고, 코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의 보호 대상이라는 사법적 판단을 받았습니다. 1990년대 말,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MSN은 1995년에, 구글(Google)은 1998년에 설립됐습니다. 그 뒤 2001년에는 애플(Apple)이 첫 아이팟(iPod)을 내놓아 모바일 기술을 영원히 바꾸었고, 2003년에는 마이스페이스(Myspace)가, 2004년에는 페이스북(Facebook)이, 2005년에는 유튜브(YouTube)가 등장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새로운 시대가 막 열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이퍼펑크는 어떻게 되었나요?
1990년대 후반 정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한동안 모든 것이 잠잠해 보였습니다. 당연하게도 반항아들이 더는 지하에 모여 은밀히 활동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암호학 관련 소스 코드가 합법적으로 공개되고 미국 밖으로 수출되면서, 강력한 암호학 기술이 세계 곳곳으로 퍼졌습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자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의 활동은 점차 뜸해졌습니다. 9·11 테러 이후 정부는 수사를 위해 호스팅 서비스에 강압적으로 개입할 권한을 석연치 않은 방식으로 넓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들은 문을 닫았습니다. 농담 삼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리스트 중 하나는 이름을 cypherpunks@al-queda.net으로 바꿨습니다.
2016년 어느 화상 회의에서 티머시 C. 메이(Timothy C. May)는 당시를 돌아보며 “나는 al-queda.net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집단의 일원이 되는 건 썩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도 같은 판단을 내렸고, 리스트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거의 10년 동안 수천 통이 넘는 메시지가 오간 이 리스트는 사이퍼펑크의 작전실이자 1990년대 테크노 자유지상주의(techno-libertarianism) 정신[1]의 본거지였습니다. 악명 높은 메일링 리스트는 막을 내렸지만, 사이퍼펑크들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 10년 동안 인터넷 정보 서비스는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2]을 방불케 할 만큼 쏟아져 나오며 사회를 영원히 바꾸었습니다. 파일 공유와 동영상 스트리밍, 게임, 전자상거래 등 인터넷의 쓰임이 넓어지는 동안에도 프라이버시(privacy)를 지키고 검열 없는 기술적 자유를 추구한다는 사이퍼펑크의 사명은 여전히 중요했습니다.
그 정신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사이퍼펑크 정신은 비트토렌트(BitTorrent), 토르 프로젝트(Tor Project)[3], 파이럿 베이(The Pirate Bay), 위키리크스(WikiLeaks), 실크로드(Silk Road), 다크넷 시장(darknet markets), 그리고 이 흐름에 힘을 보탠 사람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초기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의 회원이었습니다. 줄리언 어산지(Julian Assange)는 1995년 당시 매우 활발한 회원이었고, 토르 프로젝트와 비트토렌트의 핵심 구성원, 다른 오픈 소스(open source) 옹호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비트코인과 웹 3.0(Web 3.0)[4]을 통해서도 이어집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어디쯤 서 있는지 자주 잊곤 합니다. 기술 혁신의 국소적 정점(local maximum)[5] 너머까지 시야를 넓히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비트코인은 어디서 왔을까?〉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한순간의 ‘유레카’에서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거의 반세기에 걸쳐 축적된 아이디어와 청사진을 바탕으로 구축된 기술입니다. 이 운동은 마틴 헬먼(Martin Hellman)과 휫필드 디피(Whitfield Diffie), 랠프 머클(Ralph Merkle)이 공개키 암호학(public-key cryptography)을 세상에 발표한 데서 시작해 40~50년 동안 무르익었고, 비트코인은 바로 그 운동의 일부입니다.
이들이 시작한 사이퍼펑크 운동은 훗날 비트코인의 바탕이 된 이념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 운동 덕분에 진정한 불변성(immutability)과 검열 저항성(censorship resistance)을 지닌 데이터를 구현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기술이 0에서 1로 도약하는[6] 결정적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비트코인을 이루는 잡다한 요소들은 사이퍼펑크가 남긴 발자취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토시(Satoshi)는 할 피니(Hal Finney), 닉 재보(Nick Szabo), 웨이 다이(Wei Dai)와 함께 비트코인을 만들었습니다. 비트코인은 1990년대 암호전쟁(Crypto Wars)을 치른 베테랑들이 손수 빚어낸 작품입니다. 그 뿌리에는 앞으로도 살아 숨 쉴 사이퍼펑크 운동의 창조 정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다룬 연재이지만, 우리 모두가 이 역사의 일부로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으니 아직 결말은 나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멈춘 듯 고요하지만, 역사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변화입니다. 변화는 지난 40~50년 내내 사이퍼펑크 운동과 함께했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비트코인과 이제 이더리움(Ethereum)까지도 우리의 이야기와 사이퍼펑크 운동을 이루는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일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개키 암호학과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 비트토렌트, 토르, 위키리크스가 그랬듯, 이 또한 사이퍼펑크 운동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일 뿐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려면 현재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내다봐야 합니다.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은 중앙집중형(centralized) 인터넷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믿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우리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암호학과 자유 위에 세워질 미래입니다. 이미 1970년대에 마틴 헬먼과 휫필드 디피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암호학 혁명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감사드리며, 이 연재를 쓰는 내내 즐거웠고 여러분도 즐겁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역사는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하며, 조금만 수고해 주변을 둘러보면 그 풍요로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지식과 감사하는 마음, 지혜를 비롯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한번 직접 들여다보시면, 공개키 암호학의 탄생과 사이퍼펑크라는 존재 자체만큼이나 풍성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어디서 왔을까?〉 시리즈는 프라이버시와 자유,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 모든 영웅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 연재에서 몇몇 인물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는 했지만, 여기서 이름을 언급하지 못한 사람들—역사의 틈새로 사라진 이들, 공공 인프라 코드를 작성하고 유지한 초기 인터넷 엔지니어들,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키려 한 암호학자들, 금지된 물품이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도록 자신의 자유까지 걸었던 판매자들, 스택 익스체인지(Stack Exchange) 질문에 답한 기여자들, 오픈 소스 프로젝트 관리자들, 불의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자신의 안위를 희생한 내부고발자들—에게도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비트코인은 어디서 왔을까?〉 시리즈를 마칩니다!
- 번역 및 각주: GPT 5.6 Sol
- 감수: 나!
각주
- [1]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지상주의에, 기술을 통해 국가 권력을 분산하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는 관점을 결합한 사상입니다.
- [2] 생물 종이 급격히 다양해진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빗대, 인터넷 서비스가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상을 뜻합니다.
- [3] 인터넷 통신을 여러 중계 지점으로 우회시켜 이용자의 위치와 접속 경로를 감추는 익명 통신망 프로젝트입니다.
- [4] 여기서 웹 3.0은 중앙 플랫폼의 통제에서 벗어나 블록체인과 분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소유권과 운영 권한을 이용자에게 돌리려는 차세대 웹 구상을 뜻합니다.
- [5] 당장은 최고점처럼 보이지만 더 넓은 범위에서 보면 전체의 최고점은 아닌 상태입니다. 여기서는 현재의 기술 성취에만 시야가 갇히는 일을 가리킵니다.
- [6] 기존 것을 조금 개선한 수준이 아니라, 없던 것을 처음 만들어내는 질적 도약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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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짜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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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노마드의 출근길 뉴스레터
감사합니다 ㅎㅎ 8년 전 글인데 지금 읽어도 재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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