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한계는 어디인가?'부의 제한선'이 던지는 도덕적 질문
"한 개인이 무제한의 부를 축적해도 되는가?"
'부의 제한선'이 던진 이 도덕적 질문은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의 총재산 추정액은 2,190억 달러. 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45년 동안, 일하는 매 시간마다 87만 1,794달러(약 29억)씩을 벌어야 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평생 모아도 이르지 못할 금액을 그는 한 시간 만에 벌어들이고 있는 거죠.
이런 극단적 부의 집중이 만든 도덕적 공백은 영화 <슬픔의 삼각형>🎬이 풍자한 호화 요트 위 슈퍼리치들의 모습으로, 또 온리팬즈(OnlyFans)의 성산업화가 부추기는 "돈이면 뭐든 해도 된다"는 직업윤리 붕괴 현상으로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책 소개뿐만 아니라 함께 보면 좋을 영화와 최근 이슈까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당신은 '부의 제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들어가며: “돈이면 다 되는 시대, 당신의 가치는?”
"그게 돈이 됩니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이 한 마디는 현대 사회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이 옳은가'를 묻지 않고, 오직 '돈이 되는가'만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세계불평등연구소의 2022 보고서가 보여주듯, 상위 1%가 전체 부의 19%를 차지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직업윤리와 노동의 가치는 멀리 떠나보낸 채, 오직 수익성이라는 잣대로만 모든 것을 재단하는 사회를 만들어버렸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요?
오늘의 책 📕 <부의 제한선>: 우리가 마주한 한계점
『부의 제한선』 의 저자 잉그리드 로베인스는 한 개인이 보유할 수 있는 부의 한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무제한적 부의 축적이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붕괴시킨다고 경고하며,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부에 상한선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추천 영화: <슬픔의 삼각형>: 호화 요트에 갇힌 슈퍼리치들의 민낯
영화로 한번 살펴볼까요? 202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 『슬픔의 삼각형』은 현대 자본주의의 실상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는 호화 크루즈에 탑승한 슈퍼리치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 영화는 단순히 부자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지요. 과연 돈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에서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요? 영화에서 결국 폭풍우 이후 무인도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위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장면은, 기존 자본주의 체제의 허구성을 강렬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 체계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요즘 이슈: <온리팬즈와 무너지는 직업 윤리>
온리팬스(OnlyFans)는 2016년 영국에서 설립된, 쉽게 말하자면 '어둠의 유튜브'입니다. 최근 가수 '박재범'이 계정을 개설해 화제가 된 이 플랫폼은 2024년 기준 매출 63억 달러, 5년 만에 20배 성장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플랫폼의 스트리머들의 수익을 살펴볼까요? 최고 수익 크리에이터 블랙 차이나의 월 수입은 2000만 달러(약 270억 원), 스트리머 아모란스는 4년간 5,700만 달러(약 751억 원)를 벌어들였습니다. 전문직 종사자의 평생 수입을 뛰어넘는 수준이죠.
더 충격적인 것은 직업윤리의 붕괴입니다. 최근 미국 위스콘신대 라크로스 캠퍼스 전 총장이 아내와 함께 온리팬스 계정을 운영하다 교수직 박탈 위기에 처했습니다. 대학의 총장이자 교수라는 지위도, 전문직으로서의 윤리의식도 돈 앞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출처: 교수 아내와 음란물 제작한 美 대학 전 총장, 교수직도 해임 위기) 이런 극단적 수익 구조와 도덕적 붕괴 현상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독일의 법률가, 정치인,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로, 사회학 성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진정한 부는 근면, 절제, 성실한 노동을 통해 얻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온리팬즈 현상은 이러한 전통적 직업윤리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가치관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전문성 개발, 직업적 소명의식, 사회적 기여와 같은 소중한 가치들이 빠른 수익 창출이라는 단일 가치 앞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열심히 일해서 무엇하나"라는 허무주의가 확산되면서, 안정적인 중산층의 기반이었던 전문직과 숙련직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는 건전한 직업관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던 중산층의 점진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돈'이라는 렌즈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는 무엇을 잃게 될까요? 그리고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나가며: 우리의 선택
현재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부의 제한선』이 제기한 근본적 질문, 『슬픔의 삼각형』이 보여준 풍자적 경고, 그리고 온리팬즈 현상이 드러낸 윤리적 공백은 모두 같은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요? '돈'이라는 렌즈로만 세상을 바라볼 때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를 받아들일 것인가요,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가치를 지켜낼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요?
우리의 선택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답은 이미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답을 현실로 만들어낼 용기와 실천입니다.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부의제한선> 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건 어떠실까요?
📚 독서모임 안내
- 일시: 1월 24일(금) 오후 7:30
- 장소: 투썸플레이스 석촌역점
- 신청: 아래 '소모임 신청' 버튼을 눌러주세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작은 이해의 시작, 이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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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극단적인 부의 축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온리팬즈와 같은 플랫폼이 우리 사회의 직업윤리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 우리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된다'는 가치관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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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돈에 미쳐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지긋지긋함. 한 개인이 얼마를 가지든 상관없다 생각했는데, 저자가 부의 상한선을 제시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책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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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채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대한 대응에는 역시 인문학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떠오르네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이제 없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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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테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분명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본문에 적어주신 것 처럼 돈보다 더 중요한 인간적인 가치들의 중요성에 대해 개인과 사회가 조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네요..! 이런 좋은 글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게 문제 해결의 첫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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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사람들은 '돈'에 대해 생각만 해도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돈'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엑셀 이혼' 현상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의 끝자락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 돈과 사람, 그리고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마지막 문장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따라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인류는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지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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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ho+
정말 흥미로운 주제에요! 감사합니다. 극단적 소득 양극화가 가능한 이유는, 정치가 문화 전쟁을 효과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가령, 미국의 백인 블루칼라 집단이 트럼프를 지지하게 만든 수법을 보면, 선거의 프레임을 "부자 vs. 중산층 이하"에서 "미국 백인 vs. 타 인종" 혹은 "백인 문화 vs. 좌파적 다양성 문화"로 초점을 바꿔버렸죠. 따라서 백인 블루칼라 집단은 '감세'라는 친부유층 정책을 감내해서라도, 이민족과 PC 문화에 대한 혐오를 총족시키기 위해 맹렬히 투표했어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치는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미국 민주주의는 기부금에 잠식당한 상태이며, 정부가 공공자금으로 R&D 혁신을 이뤄내면, 소수의 기업이 그 기술을 거의 무상으로 가져다가 시장에서 '독점'을 누린다고 지적해요. 초부유층의 부는 '독점'에서 나오죠. 독점은 자유시장경제와 아담 스미스가 강조한 '자유로운 경쟁'을 질식시킨 상태이며, 이 때문에 세금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에이미 추아의 <정치적 부족주의>를 보면, 아무리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구먼 같은 경제 석학들이 미국의 '독점 경제'의 문제점, 그로 인한 부의 편중을 말해도, 유권자들은 '나와 그들'이란 구도에 더 쉽게 몰입하고, 경제적 이득 대신 부족주의적 정체성에 따라 '상대 진영을 압도하기 위해' 열렬히 투표한다는 걸 알수 있어요. 이렇듯 정치적 역학 구도가 계속해서 부의 제한선을 없애버리는 상황에서는 앞으로도 초부자들의 정치 로비가 자기 강화적 피드백 루프를 이어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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