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다가 녹았다가 비가 왔다가 길이 얼었다가 슬러시가 됐다가 하는 날이 반복되고 있어요. 올해 겨울은 뭔가 유독 변화무쌍하게 느껴져요. 좀 덜춥나? 하면 기온이 10도씩 뚝 떨어지고, 따뜻해서 심심한가 하면 눈이 펑펑 오고요.
저는 겨울만큼 여행 가고 싶다는 욕구에 강렬하게 휩싸이는 때가 잘 없는 것 같아요. 몇 번 김앤정에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 저는 진짜 사계절이 싫거든요 T^T ㅋㅎ 1년 내내 온화한 기후에서 살고 싶어요...ㅎ
비록 이제 연차도 안 남아서 회사에 묶여 있는 몸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어딘가로 떠나는 꿈을 꾸면서 오늘 세모에서는 여행의 목적에 대한 단상을 써볼까 합니다. 그리고 냉털에 최고인 빠에야 레시피(?) 공유할게요!
[주절주절]
여행의 목적은 따지면 끝도 없죠. 신기하게 나이를 먹을수록 여행을 가야하는 이유는 더 많아진다. 출장, 휴가, 효도 관광 등의 항목이 추가된 탓입니다. 하지만 제게 대부분 여행의 이유는 이 한 가지로 수렴되는 것 같아요.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대개 여행은 불현듯 오는 것 같아요.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나온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풍경에 매료됐을 때, 휴가지에서 찍은 친구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봤을 때, 현실에서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 하고 있을 때, 혹은 갑자기 겪은 변화에 마음은 저 멀리로 흔들리고 말아요.
그저 떠나야 할 것 같아서 떠나는 여행이 좋은 이유는 사색을 남기기 때문이에요. 빼곡하게 짜인 스케줄에서 벗어났을 때 보이는 선명한 풍경. 비로소 들리는 새소리, 사람들 이야기 하는 소리. 조용하게 내면에서 떠오르는 '나'라는 존재까지.
2009년 일본 도쿄가 제게 그랬어요. 그때 저는 막연히 휴식을 갈망하고 있었어요. 점차 늙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어느 순간 약해진 엄마가 내게로 쓰러지지 않을까 겁을 냈고, 밥벌이 못 하는 스물 두 살 어설픈 청춘이 절망스러웠고, 어둠 속에 가려진 미래를 걱정하면서 종종 새벽 5시가 다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 하곤 했어요.
특히 두려웠던 건 '다신 쓰지 못 하게 되는 게 아닐까'란 불안이었어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요 가끔은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방과 후엔 글쓰기에 몰두하곤 했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관련 계통의 전공을 가지지 못 했고 수시 1학기 합격이라 고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대학 물에 들어 노는 데만 열중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쓰고 싶은 것이 없어지고 백지를 보고 있으면 막연하기만 했어요. 언제고 글 쓰는 걸 업으로 삼고 살고 싶다 여겼는데 글 쓰는 게 어려워지다 보니 불안이 끝도 없었어요. 그때 선택한 게 여행이었어요. 아무도 (적어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는) 없는 곳으로의 여행이요.
가져갔던 노트북이 무색할 정도로 3개월 남짓한 여행이 끝난 뒤에도 파일함엔 여전히 빈문서 뿐이었지만 결과적으론 그때의 그 여행이 있었기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때 저는 일본 도쿄 샤쿠지공원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렀는데요. 그때는 에어비앤비도 없던 시절이라 홈스테이 사이트에서 장소를 찾았고, 일본에 도착해서는 부동산에 가서 단기 거주 계약서까지 썼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걸 다 어떻게 했나 싶어요. (대견해요ㅎㅎ)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느낀 기쁨과 고독, 늘 차가웠지만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좋았던 다다미, 저녁이 되면 창호지 창에 드리우던 나무의 그림자까지.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때로 감정의 수면 위로 떠올라 한동안 내면을 지배하곤 합니다.
신기한 건 그때 제가 일본에서 한 일이 그다지 없다는 거예요. 어딘가를 열심히 여행하지도 않았고 관광지를 찾아 다니지도 않았어요. 도쿄 외곽에 있는 샤쿠지공원 역 근처 게스트 하우스(라고는 하지만 일반 가정집과 다르지 않던)에서 지냈는데 아마 90여 일의 체류 기간 가운데 절반 정도는 이 근방에서 머물지 않았을까 싶어요. 특히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샤쿠지공원이 자주 가는 산책 장소였어요.
샤쿠지공원 역 근처는 부유한 노인들이 많이 지내는 곳이에요. 때문에 공원에 가면 자전거를 타거나 느릿하게 걷는 노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공원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넓어서 공원 안 호수에서 작은 배도 탈 수 있었고요. 그곳에서 저는 자주 거리 악사의 노래를 듣거나 멍하게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답니다.
그때의 하루일과란 정말 보잘 것 없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토스트를 구워 먹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는 저녁 메뉴를 고민했어요. 아침엔 꼭 토스트를 먹었는데 토스트는 집 근처에 있는 세이유라는 마트에서 샀어요. 잼 역시 그곳에서 구입했는데 당시 가격이 88엔(우리나라 돈 1000원 남짓)이었어요. 그때는 엔화가 100엔당 1400원 대까지 찍을 정도로 비쌌는데 그래서 외식보단 주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어요. 마트 마감 시간에 맞춰 가면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그날 팔아야 할 신선식품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주로 장은 저녁에 봤고요. 1인 가구가 많은 이유에서인지 식재료를 남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살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샤쿠지공원 다음으로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이 급행 열차를 타고 3정거장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이케부쿠로 역 일대였어요. 일본 여행을 해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케부쿠로는 굳이 찾아가는 곳은 아니거든요. 여행객들이 많이 타는 야마노테선을 타고 갈 수 있지만 신주쿠, 하라주쿠처럼 쇼핑으로 유명하지도 않고 시부야처럼 랜드마크가 있는 것도 아니라 많이들 그냥 지나칠 거예요.
하지만 화장품, 장난감 등 이런저런 것들을 사다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있던 제게 이케부쿠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어요. 아키하바라처럼 애니메이션이나 전자기기에 특화된 곳은 아니지만 나름 애니메이트라는 애니메이션 관련 물건을 살 수 있는 몰이 있고 토이저러스라는 장난감 전문 매장도 있고 세이부 백화점과 도큐핸즈가 있어 이런저런 잡화도 살 수 있었거든요. 뭐 하나 특출나진 않지만 일단 가면 먹을 것부터 쇼핑까지 필요한 것들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죠.
무엇보다 도쿄 외곽에서 지내던 제가 중심가로 진입하기 위해선 세이부 이케부쿠로 선이라는 사철을 탔어야만 했는데 그 노선에서 제일 번화가가 이케부쿠로였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도쿄에 가면 대개 이케부쿠로에서 머물고 먹어요.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러 노선이 다니는 이케부쿠로 역은 꽤 넓고 복잡하거든요? 하지만 오랜만에 가도 이케부쿠로에선 길을 잃지 않는답니다. 체득한 건 오래 남는다는 게 맞는가 봐요.
결국 집에서 밥을 먹거나 이케부쿠로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이 두 가지로 제 일본에서의 90일 체류는 수렴되는 셈입니다. 그때 룸메이트와 종종 이런 얘길 했었어요. '우리 인생에서 또 다시 언제 이렇게 아무 할 일 없이, 외국에서, 지내겠어.' 이 생각에 지금도 공감해요. 그 90일은 내 인생에서 어쩌면 다시 없을 호사스런 시간일 것 같거든요.
신기하게도 한국에 돌아온 뒤 불면증에서 해방됐어요. 매일매일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으로 수십일을 보내고 보니 생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고민들은 놓아주는 게 맞다는 걸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아직 닥치지 않은 불행을 걱정하기 보다 차라리 열심히 밥을 먹자', '어차피 앞에 있는 것이 행운이든 불행이든 뚜껑을 열기 전엔 알 수 없다.' 이런 사소한 깨달음을 잉여로운 90일이 깨우친 셈입니다. 소소하지만 위대했던 그 짧은 시간들. 어쩌면 그 이후 제 여행 스타일은 한 차례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 건 아닌지 한답니다.
[AB컷]
여러분, 빠에야 좋아하시나요? 짭쪼름한 맛이 밥알에 베어 있는 빠에야를 저는 진짜 좋아하는데요.
문제는 비건을 지향하는 저로서는 밖에서 사먹을만한 빠에야가 그다지 없다는 거예요. 대부분 빠에야는 치킨이나 해물이 재료로 들어가 있어서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 집에서 빠에야를 해먹기 시작했습니다!
빠에야 생각보다 하기 어렵지 않아요. (어쩌면 꽤 쉬운 편일지도?)
정식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ㅎㅎ 제가 해먹는 야매 방식 소개해드릴게요.
만약 여러분 집에 치킨스톡(비건 치킨스톡도 있답니다)과 베트남 고추, 쿠키(아무거나 괜찮지만 견과류, 건과일 등 토핑 없는 것), 양파가 있다면 이걸로 소스는 충분해요.
따뜻한 물에 치킨스톡을 녹여 주시고요(쌀 양에 따라 다르지만 저는 500ml 조금 넘는 물을 사용해요) 양파는 오일에 한 번 볶아 주세요. 그리고 따뜻한 물에 쿠키를 녹여주세요. 그리고 흐물하게 볶인 양파와 녹인 쿠키, 베트남 고추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주세요.
빠에야에 넣을 재료로 저는 주로 버섯이랑 양파, 파프리카를 쓰는데요. 세로로 길게 잘라서 기름에 소금 간 아주 살짝만 해서 볶아요. 그런 뒤에 쌀을 씻어서 그 팬 위에 담아 주시고 재료랑 잘 섞어 주세요. 그런 다음 믹서에 간 소스와 치킨스톡 녹인 것을 섞어서 쌀이 잠길 정도로 부어주세요. 그대로 뚜껑 덮고 10분 정도 중약불(쌀이 타지 않는지 봐가면서 조절해주세요)로 가열해주시면 끝! 밥이 거의 된 것 같을 때 뚜껑을 열고 파프리카 같은 걸 토핑으로 얹어 주셔도 좋아요.
만약 베트남 고추, 쿠키, 양파가 없다? 그러면 빠에야 가루가 있습니다. 요즘은 마트에서도 팔아요. 빠에야 가루와 치킨스톡을 같이 녹여서 부어주시면 돼요.
빠에야 가루가 없다? 그러면 치킨스톡만 넣어주셔도 되고 혹시 파프리카 가루가 있다면 넣어주시면 붉은 색이 감돌아서 더 맛있게 보여요.
만약에 치킨스톡도 없다? 그러면 비프스톡도 됩니다. 만약에 온갖 스톡이 다 없다면 적당히 소금, 후추, 연두 등으로 간 하셔서 부어도 나름의 맛이 있을 것 같아요ㅎㅎ 저는 이렇겐 안 해봤는데 뭔가 될 것 같은 확신이 들어요. (저 약간 야매 요리 좋아하는 편)
저도 빠에야 가루도 없고 파프리카 가루도 넣는 걸 깜빡해서 비건용 비프 스톡만 넣고 만든 적이 있었는데요 색은 허옇지만 나름 맛있었답니다.
빠에야의 미덕은 자고로 냉장고에 있는 걸 두루두루 다 넣을 수 있다는 데 있어요. 저는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옥수수가 있을 때가 많은 데 옥수수 썰어 넣어도 좋고요 버섯은 어떤 종류라도 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 외에 채식 안 하시는 분들은 원하는 재료 넣고 졸여 주세요. 잎채소 같은 거 위에 올려 드시면 냉털 완성?
빠에야가 나가서 사먹으면 꽤 비싼 편이잖아요. 집에서 해먹으면 냉털도 되고 손님 접대에도 나름 괜찮답니다. 히히.
오늘 세모 여기까지였는데요. 오늘은 뭔가 지금까지와 약간 다른 주제(?)였던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괜찮으시면 나중엔 비건은 뭐 먹고 사나 특집 같은 것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다음 주엔 기온이 영하 10도 정도로 뚝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아무쪼록 감기 조심하시고 몸 축나지 않게 잘 드시고 다니셨음 좋겠어요.
다음 주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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