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가수 태연의 '블루'(Blue) 작사가가 이 노래에 대한 설명을 공개했는데요. 그 설명이 마치 '블루'가 고(故) 종현을 떠올리며 쓴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했었어요.
'블루'는 2019년에 발매된 태연 씨의 '사계' 앨범에 들어 있던 노래인데요. '사계'가 워낙 띵곡이라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지만, 전 '블루'도 너무 좋았어요. 막 나왔을 떄 바로 플리에 넣어서 지금까지 듣고 있거든요.
'블루'가 고 종현에 대한 노래인지 아닌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사실 제가 끌렸던 건 가사 때문만은 아니거든요. 멜로디와 가사의 절묘한 합이 좋았어요. 그래서 오늘은 '블루'를 비롯해서 SM은 진짜 찐변태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했던 노래 몇 곡 소개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여는 소수자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한 시간 아니었나 싶어요. 세모는 되도록 즐거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작한 메일링 서비스인 만큼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앰버의 '보더스'(Borders)를 나눠 볼까 합니다.
[주절주절]
태연 'Blue'
표면적으로 'Blue'는 이별 노래로 보이는데요.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화자는 사랑하던 상대를 떠나보내게 되고, 그런 상대를 자신의 '블루'라고 하죠.
'블루'는 많이 아시겠지만 '우울'을 뜻하기도 하잖아요. 기분이 우울하고 좋지 않다고 할 때도요. 그래서 저는 이 블루가 갖는 상징성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사랑할 때 내 마음을 푸르게 가득 채우던 그 사람, 하지만 떠나버렸기에 부르면 부를수록 슬픔을 가져오는 것이죠.
제가 이 노래에 반한 건 후렴구 때문인데요. '사랑이라는 말. 너를 닮은 그 말', '넌 나의 Blue. 늘 그랬듯이. 넌 나의 Blue'라는 이 구절을 잘 들어보시면 멜로디가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는 것처럼 느껴지실 거예요. 이 일렁이는 멜로디에 블루라는 색감을 입히니 정말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잔잔한 사랑과 슬픔의 감정이 밀려오는 것 같거든요. 좋은 가사는 많지만, 멜로디를 글로 묘사해주는 절묘한 가사는 진짜 찾기 어려운데 SM에는 유독 그런 노래들이 많아요.
동방신기 'Love In The Ice'
동방신기의 '러브 인 디 아이스' 역시 이별 노래인데요. 끝나버린 사랑을 얼음 속에 영원히 갇혀 있는 것으로 형상화했어요.
이 노래의 백미는 완전 초입에 등장하는데요. 당시 다섯 명이었던 멤버들이 화음으로 '허 허 허우어'(묘사 죄송)라며 노래하는 부분이에요. 멤버들이 이때 소리를 약간 날리듯이 내는데, 아마도 얼음 앞에서 숨을 쉬면 입김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장면을 청각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SM의 찐 변태 모먼트 되시겠습니다.
f(x) 'Glitter'
에프엑스의 포월즈 앨범에 실린 곡이에요. (이 앨범 진짜 전반적으로 다 띵곡인데.. 한 번만 다 들어주세요. 뉴진스가 하는 음악 같은 거 좋아하세요? 그럼 무조건 들어주세요. 제발.)
'글리터'는 '반짝반짝 빛나다'라는 뜻인데요. 사랑에 빠질 때의 그 스파크, 그 사람만 별처럼 빛나게 보이는 마음을 '글리터'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그 장면 아시죠? 콘서트 같은 데서 반짝이 폭죽 같은 걸 쏴주면 반짝이가 막 빛에 반사돼서 '반짝반짝' 하면서 내려오잖아요. '글리터'의 후렴구 부분이 그래요. '글리터 글리터 글리터'라고 하는 부분에서 음이 고음에서 점차 떨어지거든요? 그게 마치 하늘에서 반짝이가 내려오는 것 같이 느껴져요. 진짜 대박 아닌가요..? 어떻게 노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라이즈 'Get A Guitar'
제가 이 노래 작업 과정을 잘은 모르지만 아마 멜로디의 기타 스트링이 너무 매력적이라 이를 주요 소재로 잡아서 가사 작업을 한 게 아닐까 싶어요. '겟 어 기타' 멜로디는 진짜 한 번만 들어도 바로 꽂히니까 최대한 가사를 주요 악기와 매치 시켜서 사람들 머릿속에 빠르게 각인될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스트링 소리에 맞춰서 'Get get get get a guitar'를 반복하는 후렴구가 진짜 천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가볍게 툭 어깨에 메고 시작해 봐'라는 명랑한 가사도 신인 그룹의 데뷔곡과 너무 잘 어울리고요. 제 경험상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혹시 아직 안 들어보셨다면 스밍 해보시길 추천드리옵니다!
[리뷰]
엠버의 'Borders' 아주 우아하고 세련된 저항
노래는 세련됐고 메시지는 명확했으며 가사를 읊는 엠버의 목소리는 담백했습니다. 울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고 분통을 터뜨리지도 않았어요.
모르겠어요. 살면서 그렇게 해봤던 때도 있었을지 모르죠. "나는 왜 달라?"라거나 "진짜 그만 좀 하시라고요!"라고 소리쳤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세상이 누구 한 명이 그렇게 화를 낸다고 해서 바뀌나요.
세상은 바뀌지 않는구나. 내게 온 슬픔은 내가 짊어지지 않는 이상 어디로 던져버릴 수 없는 것이구나. 잠깐 다른 이야기지만 그걸 느끼고 꾸역꾸역 받아들이는 정서가 '한'인 것 같아요. 받아들이지 못 하고 악을 품으면 '원'이 되고요.
하여튼 그런 속에서 계속 목소리를 내며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죠. 저항의 여러 방법 중에 엠버는 자신이 잘하는 '노래'를 택한 것 같습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엠버는 네모난 상자 안에 갇혀 있어요. 바로 이 상자가 엠버가 이야기하는 경계, 보더죠. 계속해서 자신에게 여자답기를, 어떻게 살기를 강요하고 억압하는 사회. 그 억압이 네모난 상자로 시각화해 표현한 것 아닌가 싶어요.
가사는 모두 영어인데요. 엠버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인 내용이에요.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어깨를 펴고 나아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소속사는 이를 '희망적'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보다 제게는 '선언적'이라고 와닿았습니다.
"어깨 펴고 나아가더라도 또 꺾일지 몰라. 그래도 계속 나아가자, 지더라도"라는 선언이요.
데뷔 이래 계속해서 여성다움을 강요받고 성적 정체성을 오픈하라는 압박을 받았던 엠버. 어쩌면 '보더스'는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일지도 몰라요. 그러한 답변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엠버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겐 '보더'라는 것이죠.
이 노래에서 엠버는 "그들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라도 하려고 했다"면서 "그러면 마침내 내가 소속될 수 있는 어딘가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아니, 난 더 이상 흉내내지 않을거야. 더 이상 누구인 척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하죠. 세상은 정상성을 상정하고 엠버와 같은 이들을 가두려고 하지만 '정상'이라며 만들어진 그 틀 자체가 폭력이고 그래서 모순이라는 것. 그 모순적인 체계 안에 들어가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틀 자체를 부수고 경계를 허무는 것이 모두를 자유롭고 자기자신답게 하는 길임을. 이제는 우리 사회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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