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고 비가 오고, 해가 납니다

날씨 이야기

2023.02.13 | 조회 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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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코라 in 캐나다 🍁 여행같은 일상을 전해요

코라예요 😊

이 편지 읽으시는 분들 중 제가 캐나다 가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거기 날씨는 어때요?" 라고 질문하지 않으신 분 계시면 손 🙋 가히 저의 캐나다행 3대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후후후


엄청나게 추울 거라고 상상하시는데, 맞습니다. 캐나다는 그렇게 춥고 눈 많이 오고 뭔가 침엽수림 가득하고 강풍이 몰아치고 그런 겨울을 보내는 지역이 굉장히 넓어요. 건조한 겨울이어서 '영하30도인데 생각보다 괜찮네?' 하고 외출했다가 옷 밖으로 나온 모든 부위 그대로 동상 걸렸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도시의 겨울 테마는 바로 ☔☔☔ 비예요. 밴쿠버의 별명은 rain-couver '레인쿠버'일 정도로 겨울은 종일, 계속, 내내 비가 옵니다. 

흐린 날도 산 좋고 물 좋으면 OK
흐린 날도 산 좋고 물 좋으면 OK

옛날 옛날에, 제 가족들은 여기 살고 저만 한국에 있던 때, 겨울마다 밴쿠버를 왔습니다. 공항에 내리면 항상 구름으로 가득찬 넓은 하늘이 저를 맞아주었어요. 흐리거나 비가 주룩주룩 오거나 둘 중 하나인데 그 와중에 공기가 상쾌해서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여기 사신 분들 말씀으로는 십년도 채 안 된 것 같다고) 겨울마다 폭설이 쏟아집니다. 원래 밴쿠버는 눈이 오지 않는 도시여서 어쩌다 눈이 1mm만 쌓여도 차들이 벌벌 기어 다닌다고 들었는데, 몇십센티 쌓이는 눈폭풍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또 찾아온 눈, 다행히 2mm 정도로 귀엽게(?) 지나갔어요
얼마 전에 또 찾아온 눈, 다행히 2mm 정도로 귀엽게(?) 지나갔어요

여기에 발맞춰 '쾌적함'의 상징이던 밴쿠버의 여름도 점점 더워지고 있대요. 밴쿠버의 여름은 에어콘이 필요 없는 여름이었거든요. 햇살은 따끈따끈 하지만 나무 그늘 아래 들어가면 살짝 서늘해서 가디건을 걸쳐야 하는 그런 온도 말예요.

지구가 많이 아픈 게 확실해요. 작년 여름 급기야 포터블 에어콘 품절 난리가 나고 폭염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AC 빌트인을 기본으로 포함하네요. 지난 여름의 끔찍한 더위는 2-3주 정도였다는데 올 여름은 과연 어떨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여름 휴가 때의 밴쿠버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여름 휴가 때의 밴쿠버

저는 말로만 듣던 밴쿠버의 눈폭풍을 마침, 하필, 하고 많은 날 중에, 제가 밴쿠버에 도착하던 날 만났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눈보라는 저보다 하루 전 밴쿠버에 상륙했고 저희 세 식구를 태운 비행기가 공항 바닥에 간신히 착륙했을 때는 이미 밴쿠버는 겨울 왕국이었죠.

오전 11시 30분에 비행기가 땅에 내렸고, 오후 6시 30분에 사람이 땅에 내렸습니다. 아침 기내식을 패스하고 쿨쿨 잠을 잤던 저희는 생짜로 8시간 이상 굶었고 공항 운영도 엉망이라 입국 심사를 통과하여 공항 밖으로 나왔더니 저녁 8시가 다 되었어요. 

렌터카를 받으러 갔는데 "눈 때문에 스노우 타이어 장착한 차량은 품절이다. 일반 타이어 차량을 줄 건데 언덕길 많은 동네는 가는 거 금지다" 라는 거예요. 우리 숙소는 밴쿠버에서 제일 유명한 산등성이 동네인데...!😱 (간신히 운전해서 올라가긴 했습니다)

출처: Vancouver City News
출처: Vancouver City News

며칠 지나서 레인쿠버 날씨가 돌아왔습니다. 24시간 주7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비가 내렸어요. 평소 같으면 비가 와서 우울하다, 할 일이 없다, 한인 커뮤니티에 줄줄이 올라올 법한 글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다들 비가 오니 너무 반갑다고 난리 법석!

저 또한 평생 비를 좋아해본 적 없는 1인인데요 물난리 걱정될 만큼 굵은 빗줄기가 온 도시를 휩쓸고 간 후 말끔해진 길거리를 보니 어찌나 마음이 평화로운지요. 기념으로 밴쿠버 사람의 필수품 방수잠바 하나 사 입었습니다. 

성심성의껏 찍어준 어린이 고마워
성심성의껏 찍어준 어린이 고마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요. 가진 것 말고 꼭 없는 것을 찾아요. 모르고 지내다가 문득 부재를 상기하면 그 때부터는 조급해질 뿐이죠. 파란 하늘, 맑는 날씨가 저에게 그랬습니다.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화창한 날을 열흘에 한번 정도 만납니다. 제가 유난히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풍경 사진, 하늘 사진 여러 개 올리는 날 있죠? 바로 그런 날이예요. 절대로 매일 파란 하늘을 보고 살지 않습니다 😂

폭설과 폭우 사이로 비 개인 날들이 드문 드문 찾아옵니다. 아침에 동트는 하늘이 맑아 보이면 처음에는 무조건 어떻게든 외출할 일을 만들려고 애를 썼어요. 여의치 않아 골목 산책 한번 못하고 해가 지면 속상해서 발을 동동 굴렀죠. 아이도 합세해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몇 번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날인가, 마음이 조금 느긋해지더라고요. 당장 공원으로 뛰어나갈 수 없어 좀 아쉽긴 하지만, 이런 날이 또 올 거야. 일곱 밤이나 열 밤 정도 우중충한 날을 감당하고 나면 다시 새파란 하늘 하얀 구름 따스한 햇살이 선물처럼 등장하겠지.

오늘 나가지 못하면 다음에 나가지 뭐, 비가 살살 뿌리는 날이라면 비 조금 맞으면서도 산책해도 되겠다.

지금 당장 하지 못하면 죽을 것처럼 매달리지 않아도, 또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는 것도 괜찮아. 모든 것을 동시에 완벽하게 차지하는 방법은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해야 하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고, '다음'은 또 올 거야. 똑같은 날은 없겠지만 새로운 날은 항상 찾아오니까.

커다란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가끔, 내가 꼭 쥐고 있는 치열함이 참으로 작아보여요
커다란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가끔, 내가 꼭 쥐고 있는 치열함이 참으로 작아보여요

놀라운 것은, 저의 마음의 변화가 아이의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또 이런 날이 올지 모른다고!"하는 말 대신 "좀 아쉽긴 한데 오늘은 할 일이 있으니까 다음에 나가자. 며칠 지나면 또 이런 날씨가 온다고. 지내봐서 이제 알잖아?"라는 엄마의 말을 듣게 된 아이, 짜증이 줄고 타협이 늘었습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대요(그래도 숙제는 오늘 하지 그래...?).

저의 불안과 조급이 아이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며 살아왔는데 사실 아이는 이미 저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다행히 제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지점들을 잘 발견했고, 아이도 자라면서 스스로 난관을 이겨내는(혹은 피해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중이에요.


눈이 올 때, 비가 올 때, 그리고 해가 날 때, 반지하 집의 현관과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며 생각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아이에 대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파란 하늘이 주는 고마움에 대해.

지난 주 맑은 날
지난 주 맑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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