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이를 켜면 기다려주는 곳

캐나다 갈 결심

2023.01.20 | 조회 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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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코라 in 캐나다 🍁 여행같은 일상을 전해요

🎀 코라예요.

이 때만 해도 곧 비행기에서 내릴 줄 알았지 (12월20일 오전11시30분 무렵)
이 때만 해도 곧 비행기에서 내릴 줄 알았지 (12월20일 오전11시30분 무렵)

캐나다 밴쿠버에 (비행기가) 랜딩한지 딱 한 달이 되었습니다. 30일을 돌아보니 제가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느라 여러가지를 많이 바꾸었더라고요.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제 의지로 한 것이니 '바뀌다' 대신 '바꾸었다' 고 해봤습니다. 크고 작은 변화 중에서 캐나다 이사를 결정한 이유와 관련이 있는 3가지를 적어봤어요.

 


 

1. 시간 간격을 아주 넉넉하게 둡니다.

저는 서울에서 하루를 15분, 10분, 때론 5분 단위로 나누어 살았습니다. 좋게 표현하면 시간을 촘촘하게 썼다는 것인데 사실은 늘 숨이 찼어요. 틈새가 없으니 하나라도 비틀어지면 도미노처럼 나머지 일정도 엉망이 되고요. 변명하자면 제 운전이 날렵해진(=험해진)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는요, 15분 거리를 갈 때에도 1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출발해요. 과하다 싶게 일정 사이사이에 간격을 두고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는 변수가 많잖아요. 같은 15분인데 서울보다 이동 거리가 항상 두세 배예요. 다녀봤자 아이 학교, 방과후, 부동산, 마트, 은행이 전부인데 어찌나 주유를 자주 해야 하는지.

게다가 목적지를 한 번에 찾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도착해서 무언가 처리하거나 구매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립니다. 너무 넓어서, 대기가 길어서,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서, 아주 느긋하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예요.

서서 기다리고 서서 업무하는 나의 주거래 은행
서서 기다리고 서서 업무하는 나의 주거래 은행

급하게 쫓기면 실수할까봐 언제나 캘린더에 여백을 큼직하게 잡고 있습니다. 당연히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절대로 해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아니 그래서 "정말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굉장히 치열하게 우선순위를 지키는 하루를 보냅니다. 그 어떤 프로젝트를 할 때보다 더 심하게 말예요.

다행히 목적지에 무탈하게 일찍 도착했다면 근처를 슬슬 둘러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동네에 감탄도 하고 (제 인스타그램 보고 계시죠? @becoming.cora) 구글맵을 보며 동서남북을 찾아보기도 해요. 여백 덕분에 이 넓은 도시의 수많은 골목을 하나씩 적응해가고 있네요 :)

어느 날 마주친 저녁 노을
어느 날 마주친 저녁 노을

 

2. 최소한의 것으로 생활합니다.

아직 서울에서 배에 실어 보낸 짐은 도착하지 않았어요. 비행기로 이고 지고 온 짐들은 현재의 임시 숙소에 풀어 놓을 수 없습니다. 당장 쓸 것만 열어서 한 번 꺼낸 것들만 매일 돌려 쓰고 있어요. 옷도 그렇고 신발도 그렇고 각종 살림살이도 그래요.

그렇게 열심히 짐을 분류하고 포장했건만, 막상 캐나다에 와보니 없어도 되는 건 굳이 가져오고 당장 필요한데 깜박 두고 온 건 왜 이리 많은가요🤦 그렇다고 새로 사거나 늘어놓을 수 없는 신세. 정착할 집 결정하고 서울 짐 다 밀어 넣고도 부족하면 그 때 가서, 그 때 가서, 주문처럼 외우며 소비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로 이고 지고 온 짐
비행기로 이고 지고 온 짐

이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 없네요. 한 달 내내 달랑 옷 세 벌 돌려가며 입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냉장고 완전히 털어낼 때까지 수시로 장을 보고 쟁여놓지 않아도 별 일 없어요. 일상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나 외부의 간섭이 없기도 하고, 제한된 리소스는 극대화를 고민할수록 활용의 지혜가 어디선가 샘솟더라고요.

이렇게 간결하게 살 수 있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쌓아두고 낭비하면서 살았나 정말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을까요? 저의 맥시멀리즘에 대한 신랄한 자아비판은 사실 이삿짐 준비 할 때부터 했는데 이건 다음 기회에 써볼게요📝

 

 

3. 깜박이를 잘 켜고, 잘 멈추고, 운전에 집중합니다. 

한국과 여기는 신호 체계 뿐 아니라 운전을 하는 문화 자체가 많이 다릅니다. 저는 서울에서 운전을 오래 했고, 항상 작은 차를 몰고 다녔어요.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작은 차로 살아남는 온갖 방법을 뼛속까지 습득한 사람이죠. (상상에 맡깁니다)

여기 와서 가장 적응 못했던 상황은 제가 차선을 바꾸려고 깜박이를 켜면 뒷차가 항상 속도를 줄인다는 것이었어요. 체감상 99% 입니다. 테헤란로를 가로막는 버스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끼어들던 제가 오히려 기다려주는 차 때문에 당황해서 제 때 차선도 못 바꾸다니!

저에게 친숙한 시나리오는, 제가 깜박이를 켠 순간 뒷차가 속도를 높여 쏜살같이 지나가고 다음 차가 쫓아오기 전에 제가 재빨리 틈새로 밀고 들어가는 거죠. 저, 아주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번번히 뒷차가 속도를 줄여요. 들어오라고 기다립니다. 그게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든, 막히는 2차선이든 언제나 그렇습니다. 차선을 변경하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면 '어 그렇구나' 하며 비켜줘요.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인데 이렇게 신기할 수가.

서울에서의 습관 때문에 운전하다가 실수할까봐 노심초사
서울에서의 습관 때문에 운전하다가 실수할까봐 노심초사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굳이 규칙을 어기지 않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이 몹시 올바르거나 정의로워서는 아니고요, 법이나 범칙금 등이 워낙 무거워서 처음부터 조심하는 습관이 삶에 배어있는 듯 합니다. 다수가 법을 지키는 것이 피차 서로에게 덜 피곤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대단히 분초를 다투는 일이 잘 없어요. 오히려 신속함이 부족해 많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느려도 괜찮은 사회, 타인의 느림을 수용하는 만큼 나의 서투름과 느림도 수용되는 사회가 저에게는 조금 더 안전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요즘은 다른 차량이 차선을 변경하려는데 저도 모르게 오랜 습관대로 앞질러 쌩 지나갈까봐 아주 조심합니다. 열심히 좌우를 살피고 시야를 넓게 보면서 운전에 집중해요. 생각해보면 꼭 도로 위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서로 반경을 살피고 약간은 긴장하고 조금씩 비켜주면서 살아가면 참 좋겠네요. 

다양한 깃발로 가득한 학교 로비에서 등교 첫 날
다양한 깃발로 가득한 학교 로비에서 등교 첫 날

 


 

한국은 연휴가 막 시작되었겠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어린이와 둘이서, 평소와 다름 없는 주말과 평일을 보냅니다. 떡국 한 그릇은 끓여 먹을까봐요. 제 입맛에 딱 맞는 사골 국물을 냉동 소분해서 팔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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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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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단

    0
    over 1 year 전

    깜박이를 켜면 기다려주는 동네에서의 랜딩 축하드려요. 코라가 들려줄 이야기들이 많이 많이 기대됩니다. 앞으로 재미나고, 행복한 일들이 코라에게 많이 생길 것 같아요.

    ㄴ 답글
  • Artpicnik

    0
    over 1 year 전

    잘 도착해서 한 달을 무탈하게 랜딩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도 되고, 그래도 쉽지 만은 않겠다 싶어 아주 조금 염려도 되고 해요. 이렇게 소식 들으니 참 좋습니다. 자주 이야기 들려주세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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