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BOKEH PLAYLIST #알레르기

BOKEH가 소개하는 4월 3번째 주의 음악들.

2024.04.14 | 조회 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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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공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문화 이야기들을 전해드리는 BOKEH입니다.

BOKEH PLAYLIST #알레르기

BOKEH의 에디터들이 뽑은 알레르기 같은 음악들

 

 


이하이 -〈Dream〉 / Madvillain -  〈Raid〉
이하이 -〈Dream〉 / Madvillain -  〈Raid〉

알레르기 같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계절이다.

 누군가는 만개한 벚꽃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겠지만, 나에게 벚꽃은 그저 알레르기의 시작을 알리는 불청객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여전히 봄은 설렌다. 내가 괴로운 것과 별개로 만개한 꽃들은 아름답고, 괜시리 들뜬 마음은 가라앉히기 쉽지 않으니.

 이처럼 평소에는 신경쓰지 않는 것들이지만, 특정 시기가 되면 알레르기처럼 올라오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나에게는 이하이의〈Dream〉과 매드빌런Madvillain의〈Raid〉가 그렇다. 굳이 찾아 듣거나 즐겨 듣진 않지만 아주 가끔 우연히 듣게 되면 다시 찾게 되는.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사실 너는 힙합/발라드를 안 좋아 하는 게 아니라 대중들이 좋다고 하는 음악에 편견이 있는 거 아니야?” 자존심 상하는 말이지만 두 장르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저 말을 떠올리곤 한다. 음악을 전공하는 전공자로서, 음악을 향유하는 리스너로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있지만 역시 아는 맛이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 ‘아는 맛’을 뛰어넘는, 내게 새로운 맛을 보여준 곡이 바로 저 두 곡이다.

 가끔은 아는 맛에서 벗어나 새로운 맛을 찾는 것도 괜찮다. 봄만 되면 흩날리는 꽃가루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은 거부하기 어려우니까.

 


W -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 캐스커 -〈칫솔〉
W -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 캐스커 -〈칫솔〉

 나는 살면서 알레르기를 겪어본 적이 없다. 꽃가루 알레르기도 마찬가지. 널 보면 재채기가 나올 것 같다는* 사랑스러운 케이팝 가사 같은 그런 일이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힘들게 뽑아낸다고 한대도 평생 그 자릴 비워두게 된다는** 사랑니의 마음도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치아 교정을 하면서 생니 4개를 발치한 적은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플레이리스트 주제가 참 어려웠다. 그런 음악이라는 건 살면서 문득 생각나는 ‘길티 플레저’일 수도 있겠다. 남들은 별 생각 없겠지만 나는 괜히 부끄러워서 숨어 듣는 음악이 그렇다. 과거의 것들을 무척이나 그리워하면서도 오로지 좋아했던 감정과 기억만으로 점철된, 왠지 낯간지러운 기분. 그래도 문득 일정한 규칙처럼 떠오를 때는 솔직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정말 솔직해보자면, 전에 만나던 연인이 먼저 잠이 들 때에 나는 “꿈에선 놀아줘”라는 메세지를 남기고 어릴 때 듣던 루싸이트 토끼의 음악을 재생했다.

 클라우드 쿠쿠 랜드, 미스티 블루, 러브홀릭, 임주연, 나루, 파니핑크, 루싸이트 토끼, 캐스커, W, 스웨터, 피터팬 컴플렉스, 「버스정류장」 OST, 어른아이, 네스티요나, 벨 에포크・・・・・・ 우리는 한쪽씩 이어폰을 바꿔 듣곤 했지.***

 어쩌면 내 안은 나선형일 것 같다. 그리고 길티 플레저라는 건 내 안의 가장 안 쪽에 닿아있는 무언가일테다. 내 원점을 추종할 때 비로소 나선의 감각을 느낀다.

 

*Lovelyz - 〈Ah-choo〉

**f(x) - 〈첫 사랑니〉

***시인 백은선의 시 「비유추의 계」에서 형식을 빌림

 


상욱

Judy Collins - <Amazing Grace> / Elevation Worship - <O Come to the Altar>
Judy Collins - <Amazing Grace> / Elevation Worship - <O Come to the Altar>

 교회가 나의 알레르기다. 절대적인 존재에 내 고민과 생각을 외주 맡기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달갑지 않다. 굳이 신 앞에 서지 않아도 세상만물 앞에 쉽게 작아지는 인간이 하기에는 좀 오만방자한 말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태어나는 것조차 내 선택이 아니었는데 살아가며 하는 선택조차 신의 뜻으로 돌려버리면 내 삶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나 싶다. 

 물론 저런 거창한 이유 외에도 이런저런 잡다한 이유들도 많다.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다거나, 전도하는 교회는 나가기 싫다거나, 어떤 스테레오타입처럼 느껴지는 교인들의 친절한 태도들이 맘에 안 든다거나...싫은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교회 근처에만 가도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듯한 기분이 드는 지경까지 왔다.  

 그러나 그 모든 불쾌감들을 접어둘 만큼 인상 깊은 찬송가들이 있다. 오늘 플레이리스트에 넣은 <Amazing Grace>와 <O Come to the Altar>는 내가 듣는 유이한 찬송들이다. 자신이 느낀 감동과 신성함을 남에게 전하기 위한, 음악을 만들게 되는 계기에서부터 시작되는 힘이 있다. 감동을 전하기 위한 음악의 구조가 아주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나 같은 불경한 불신자도 순간 죄를 깨닫고 뉘우치며 주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듯한 구간들이 있다. 

 물건을 홍보하기 위한 CM송이 귀에 잘 붙는 것처럼 잘 만든 찬양도 좋은 CM송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리고, 나도 내 홈그라운드에서나 이렇게 고개 빳빳히 들고 삶의 모든 주도권은 내게 있다고 떵떵거리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외로워지면 신의 따뜻한 품이 겪어 본 적도 없지만 그리워 질 거란 생각을 한다. 그때가 되면 이런 좋은 음악도 들을 겸 교회 열심히 다녀야지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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