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무라카미 하루키)_꼰냥

- 제목을 착각해서 고른 책인데, 착각하길 잘 했네요.

2023.08.13 | 조회 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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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전달자

바쁜 현대인을 위해, 책을 요약해 드립니다.

◎ 이름을 불러보아도 허공에서 음성이 부서졌다. 마치 어느 유명한 시 한 구절처럼. 이제는 이전처럼 답변이 오질 않는다. 지난 6월, 16년간 함께한 내 고양이 보리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떠나보냈다. 그날 이후로 매일 어떤 형태로든 눈물을 흘린다. 목으로 끅끅거리기도, 마음으로 흑흑하기도,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기도 한다. 진짜 이별인가 보다.

 

 지난 7월의 글은 애도를 위해 쉬었다. 한 달의 휴식기간 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 아직 운영하는 북스타그램에 다 정리하지 못했는데, 마치 내 마음 속 생채기처럼 영원히 정리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 조금 더 추스르면 답이 나오겠지, 시간만큼 좋은 약도 없다.

 

 한 달의 쉼 동안 8월은 어떤 책에 대해 써볼까 고민했다. 도서관을 서성이다 얇은 책 한 권에 눈이 갔는데 제목이 <고양이를 버리다>였다. 제목만 보고 집었다. 그리고 무수한 물음표가 머릿속에 뜨기 시작했다. “아니, 고양이를 어디에, 왜 버린거야?!” 나는 원치 않았음에도 우리 아이를 떠나보냈는데, 왜 멀쩡한 고양이를 버린거지? 그렇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고양이를 버리다 ⓒ네이버 도서정보
고양이를 버리다 ⓒ네이버 도서정보

 

새들 건너는 아아 저 너머에 고향이 있네

병사의 몸으로 중이 되어 달에 합장하노니 (45쪽)

 이 책은 그 유명한 ‘the’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이다. 아무 생각 없이 제목만 뽑았다가 읽다보니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게 착각을 불러일으킨 제목과는 달리 고양이를 버린 게 책 내용의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의 부제와 같이 작가의 가족, 그 중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는 유명한 절 주지스님의 차남으로 태어나 무려 세 차례나 징집되었고, 전쟁통에 운 좋게 살아남아 시를 쓰며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았다. 작가는 이런 아버지와 얽힌 어린 시절 추억을 고양이를 버렸던 사건을 통해 회상하며, 괴로울 뻔했던 사건이 미스터리한 기적으로 남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마치 완성된 스웨터의 매듭을 한 올 한 올 풀어서 다시 털실 한 덩이로 엮는 것과 같이 풀어나간다. 작가의 섬세한 문체는 마치 부친에게 물려받은 듯, 단순한 하이쿠(일본의 17음 단시) 속에 어쩔 수 없이 군인으로서 참전해야만 했던 자신의 심정을 잘 풀어놓았다.

책의 매력을 부가시키는 가오 옌의 삽화 ⓒ꼰냥 캡처
책의 매력을 부가시키는 가오 옌의 삽화 ⓒ꼰냥 캡처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62쪽)

 전후세대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작가의 아버지도 자기 자신보다 주변 환경과 여건에 자신을 맞춰가며 살았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표현하지 않다보니 긍정적인 감정보다 불편하고 부정적인 내색만 도드라져 보였음이 분명하다. 작가는 “나는 지금도,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버지를 줄곧 실망시켰다. (61쪽)”라고 말하며 아버지와 냉담했던 관계를 말한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작가가 말하는 ‘자연의 섭리’라 할지라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게 자녀가 갖는 자연스러운 태도가 아닐까. 그래서 이 감정의 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것을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환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그걸 되읽으면 되읽을수록 나 자신이 투명해지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 손을 허공으로 내밀면, 그 너머가 아른하게 비쳐 보일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88쪽)

 작가가 위대한 건 문장화하기 어려운 사적인 경험을 자연스럽게 환치하기 때문이다. 1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에서 한 사람의 삶과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가족 전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책 속 고양이는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매개체였다. 처음 이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글의 흐름을 보리의 삶과 나의 관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 속의 매개체를 내 삶 속 주체와 빗대기엔 내 글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과정’을 통해 기억을 더듬어보며 이 글을 마무리 해보려 한다.

 (조금 긴 글이 될 수 있으니 책 이야기만 읽고 싶다면 여기까지 읽는 것을 추천한다.)

 

 2007년 동물병원 앞에 버려진 새끼고양이들 중 두 번이나 파양됐다고 한 고양이를 입양했다. 손바닥만한 아이의 노란 털 빛깔이 마치 보리차 같아서 이름을 보리라고 지었다. 데려온 그 날 밤 왜 두 번이나 파양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사방에 오줌을 지리고 3차원의 공간을 5차원으로 만들며 밤낮 가림 없이 뛰어다녔다. 하루는 자고 있는 와중에 무거운 나무그릇을 내 머리에 수직으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소리 없이 내 삶이 쫑 나는 줄 알았다. 틈만 나면 나를 물어뜯고 때리는 것이 마치 고양이나라에서 고용한 닌자와 같았다.

 하지만 이 행동들이 보리 나름의 관심이었고 사랑이었다. 제대로 배워본 적 없었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된 줄 몰랐기 때문이다. 2kg 남짓한 손바닥만한 고양이가 7kg의 거구가 되어가는 긴 시간동안 보리의 행동도 많이 교정되었고 우리는 어느덧 방구석 산책을 하며 서로 대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보리가 10살이 되던 해부터 영정사진을 미리 찍으면 장수한다는 말처럼 나는 장례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이별을 준비하면 성질머리 있는 보리가 나한테 더 찰싹 붙어 살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리는 6년을 더 거뜬히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2~3년은 건강하게 살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올해 6월 보리가 갑자기 식음을 전폐하기 시작했고, 급히 데려간 병원에서 오늘을 못 넘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고양이는 아파도 죽기 직전까지 티를 내지 않는다고 했지만 막상 겪고 나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보리를 입원시키고 몇날 며칠을 병원 벤치에서 생활하며 단 1주일이라도 좋으니 애가 집에서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그 덕분인가 병원에서 보리가 사람나이 80이 넘었음에도 살겠다는 의지가 강한지 차도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병세가 악화되었고, 나는 온몸에 연결된 무수한 바늘과 관들 사이로 아이를 붙잡고 이제 괜찮다고, 너무 힘들면 떠나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2023년 6월 29일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마구 쏟아지던 날 보리는 내 곁을 영영 떠났다.

지인들께 드렸던 부고 메시지 ⓒ꼰냥
지인들께 드렸던 부고 메시지 ⓒ꼰냥

 우리집엔 세 마리의 고양이가 더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숫자 4를 완전수라고 표현하던데 보리가 없는 우리집은 미완성된 그림과 같다. 그래서 마치 어느 구석에서 자고 있다고 믿으며 유령처럼 불러보기도 한다.

 다들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데 내 매일매일이 빠르게 지나감에도 보리를 추억하고 치유하는 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다. 언젠가 기억이 흐릿해질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내가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 보리가 날 마중 나와 줄까?

우리집 네 냥이 ⓒ꼰냥
우리집 네 냥이 ⓒ꼰냥

 

◎매달 12일의 글쓴이 꼰냥은,

도서관 서가 사이에 있으면 심박수가 떨어지고 톨킨(반지의제왕)과 이노우에 다케히코(슬램덩크) 작품 앞에서 심박수가 올라가는 다방면의 덕후입니다. 고양이들과 간식먹으며 책 읽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고요. 앞으로 주욱 즐거운 책, 재밌는 순간을 찾아가며 살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kate_bookeater?igshid=YmMyMTA2M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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