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전: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김서령)_꼰냥

-여자가 세상이고, 세상이 여자다.

2023.05.12 | 조회 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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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건 사람들이 가을 날씨가 너무 좋아서 놀러 다니느라 바쁘니까 책 좀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생긴 표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5월도 1년 상반기 중 가장 놀기 좋은 달이 아닌가, 선선한데 습하지 않고 그간 말썽이던 미세먼지나 황사도 덜하니 말이다. 물론 독서하는 데 날씨 핑계 댈 것 없지만 놀기 좋은 날씨 때문에 최근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어쨌든 글은 써야하니 읽는 부담이 적은 책을 읽고 싶었는데 지인의 추천으로 이 책 [여자전: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두께가 얇으면서도 내용은 가볍지 않았으며 문장이 매끄럽기까지 해서 정말 탁월했다.

 
 

“한 사람의 개인사가 이렇듯 드라마틱할 수 있는 시대란 불운한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사무치는 개인사가 한 인간을 커다랗게 키워놓는 것도 분명하리라" -19~20쪽

 여자의 사연은 마음을 아리게 한다. 단순한 의무나 사명보다 감정이 느껴져서 그 당시의 냄새나 풍경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아프다.

 책 속 여인 7인의 사연은 '보통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제목 역시 여자'전'이고 부제 역시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라고 쓰일 정도이다. 책 속의 주인공이 살았던 세상 하나하나가 어찌나 무게감 있고 독특한지 읽으면서 한국의 근현대사 전체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 시대를 소화하기엔 개인으로서 참 힘들었을 텐데 그 담대함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의 삶에 기립 박수를 보내듯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간략한 이야기와 함께 남기며 요약을 대신한다.

● 오빠들을 찾느라 빨치산이 됐다가 동상으로 발가락을 잃고 포로로 살았던 고계연 할머니

● 월북한 남편을 기다리며 한평생 수절한 종갓집 며느리 김후웅 할머니

● 생계를 위해 기차에 올라탔으나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로 생활하다 자궁까지 적출당한 위안부 피해자 김수해 할머니

● 팔로군이 되어 중공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한 기공사 윤금선 할머니

●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안기부에게 욕하는 것도 마지않는 문화계의 대모 박의순 할머니

● 기생이라 불리어도 마지않고 진정으로 춤을 사랑한 자유로운 영혼의 선무 선구자 이선옥 할머니

● 한 달의 인연으로 평생을 수절하고 홀로 자식을 키우며 살아간 최옥분 할머니

 

책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여자전] 
책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여자전] 

“대화에서 피를 얻고 독서에서 살을 얻어라. 옥을 갈 듯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라.” - 49쪽

 대부분 1930년대에 태어난 책 속 주인공들은 작고하셨거나 기억을 잃으시거나, 아니면 많이 쇠약해지셨다. 이 책이 2007년 출간된 뒤 절판되었다가 2017년에 재출간 되었고, 2023년 내가 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으니 살아계신 분보다 돌아가신 분이 더 많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건 2018년 타계한 故 김서령 칼럼니스트의 팬이라는 독서모임 멤버 한 분의 소개로 비롯되었는데, 기대하지 않고 읽었다가 너무 많은 감정이 밀려와서 읽은 이후에도 한동안 헛헛함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잊혀 질 개인의 역사를 되살려준 작가 분께 더욱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작가 분은 그들과의 대화에서 피를 얻었고, 나는 독서에서 살을 얻은 것이다.

 

"많지 아이 하오. 든든하게 다 먹어놓시오. 먹어야 이야기도 듣고 글씨도 쓰잖겠소?" - 101쪽

 책 속 이 한 구절은 시골에 가면 늘 밥. 밥. 밥하던 할머니를 떠오르게 해서 울컥하게 하였다. 밥을 해 먹이는 것이 곧 사랑이라 믿었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 역시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집에 16살 나이로 시집가셔서 '한 여자의 한 세상'을 살다 가셨다.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중간 중간 일본어 섞어 쓰셨고, 글씨를 쓸 수 있었지만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8명의 자식을 연이어 낳아 평생 뒤치다꺼리를 하며, 소, 돼지, 닭, 안 키워본 가축이 없이 논밭 농사일에 찌들어 뼈마디가 다 굽고 허리가 ㄱ자로 꺾여서 맘 편히 하늘 보는 게 소원이라 하셨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염하는 곳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할머니께서 드디어 허리를 좍 피고 누우셨다고, 좋은 곳에 가셔서 행복하신 것 같다 해서 눈이 빠지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글재주가 부족하지만 이 기회를 빌려서 할머니께서 살다간 긴 역사의 작은 일부를 남기며 추억해본다. 고쟁이 속 다 헤진 돈주머니에서 구겨진 천 원을 쥐어주시던, 모기물린 다리에 된장을 발라주시던, 콩가루 잔뜩 묻은 쑥인절미를 입 속에 넣어주시던 그 손이 그립다.

할머니 사진을 넣고 싶었는데 시골 사진은 미니홈피 속 흰둥이 밖에 없었다. 너무 죄송하고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
할머니 사진을 넣고 싶었는데 시골 사진은 미니홈피 속 흰둥이 밖에 없었다. 너무 죄송하고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

 

◎매달 12일의 글쓴이 꼰냥은,

 도서관 서가 사이에 있으면 심박수가 떨어지고 톨킨(반지의제왕)과 이노우에 다케히코(슬램덩크) 작품 앞에서 심박수가 올라가는 다방면의 덕후입니다. 고양이들과 간식먹으며 책읽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고요. 앞으로 주욱 즐거운 책, 재밌는 순간을 찾아가며 살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kate_bookeater?igshid=YmMyMTA2M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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