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책 리뷰를 시작하게 되어 책장 앞에 서서 앞으로 어떤 책들을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책이 있다. 간결하고 심플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부터 여운이 길게 남아 한동안 깊게 생각하게 했던 책. 노르웨이의 작가 욘 포세의 음악 같은 소설.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굉장한 수식어들이 많이 따른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유력한 후보. 노르웨이 최고의 작가이자 극작가. 21세기의 베케트 등…
아, 대단한 작가였구나...
그러나 작가의 명성을 전혀 모른 채 책만 먼저 읽었던 입장에서 느낀 욘 포세는 심플했다.
그는 작가이면서 음악가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 책을 읽는 건지 음악을 듣는 건지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만큼 문장들이 하나의 노랫말처럼 들려온다. 아무래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마침표가 없이 이어지는 문장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복적인 어구들과 주변의 소리들을 묘사한 의성어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부분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입으로 읊게 된다.
소설 속 배경은 노르웨이 바닷가 마을. 거실 한가운데서 안절부절 하고 있는 한 남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금 그 한 남자 올라이는 곧 태어날 아들 ‘요한네스’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참아요, 늙은 안나가 말한다
사내아이라면, 요한네스라고 부를 겁니다, 올라이가 말한다
어디 보자고요, 산파 안나가 말한다
네 요한네스요, 올라이가 말한다
제 아버지처럼요, 그가 말한다
그래요 좋은 이름이네요, 늙은 안나가 말한다
그리고 다시 비명이 들려온다, 이번에는 더 크게
-p.10
그리고 시작되는 올라이의 기나긴 목소리. 소설 속 배경과 주변 인물 소개를 올라이의 독백들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마치 연극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나고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면 방금 전 수많은 올라이의 독백을 배경으로 탄생한 그의 아들 ‘요한네스’의 마지막 날이 시작된다.
커튼으로 가려진 침대 위에서 아침을 맞이하며 시작되는 요한네스의 생각들. 부유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따스하던 집안은 아내의 죽음 이후로는 아무리 불을 켜 두어도 공허하고 춥다. 이젠 아내도 자녀들도 없이 홀로 남은 집안에서 그 공허함을 뚫고서 매일 아침 늘 해왔던 대로 거실로 나가 커피를 끓이고 담배를 하나 말아 피우고 브라운 치즈를 올린 빵을 한입 베어 물며 평범한 하루를 시작한다. 다만 이상하리 만큼 평소와 다르게 몸이 가볍다.
평소와는 다른 묘한 ‘이상함’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나면서 나누는 대화들로 채워진다. 그 대화들 속엔 지나간 요한네스의 인생이 가득 담겨있다. 단 하루의 이야기이지만 해가 저물 때쯤이면 이미 그의 인생을 함께 걸어온 기분이 든다.
이 책은 그렇게 한 인물의 시작과 끝을 수 많은 쉼표들과 노랫말 같은 단어들로 그려낸다.
보트하우스들과 거리 위쪽의 집들을 바라보며 그는 그 모든 것에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야생초들과 그가 아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속한 자리다, 그의 것이다, 언덕, 보트하우스, 해변의 돌들, 그 전부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p.74
4년 전이었나, ‘아침 그리고 저녁’을 추천 해주던 선생님은 이 책을 조금씩 천천히 읽어볼 것을 권했다. 오랜만에 다시 이 책을 펼치면서 그의 조언이 떠올라 조심스레 권해본다.
한 걸음 한 걸음, 그의 생각들과, 지나온 시간들과 ,수많은 쉼표들을 따라가며, 그렇게 잠시 요한네스의 동행인이 되어 노르웨이의 바닷가를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somdy_k
책과 이어지는 인연들이 소중한 '솜디'입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