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년 초부터 (뉴스레터에서도 자주 언급했던 스탠포드 대학교 신경과학 교수이자 유튜버인) Huberman이 추천한 간헐적 단식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위장에 음식물 들어가는 시간(feeding window)을 하루 중 8~10시간 정도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빠르면 오전 11시부터 늦으면 오후 9시 사이에만 음식물 섭취를 하도록 노력합니다.
Huberman이 얘기한 간헐적 단식의 대표적 효과는 집중력 상승과 공복혈당 저하, 그리고 그로 인한 자연스러운 체중 감량입니다. 저는 간헐적 단식뿐 아니라 다른 좋은 습관들도 함께 시작했기 때문에, 들은 대로의 독립적 효과를 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작년부터 평균 체중이 2kg 가량 낮아진 채로 꾸준히 유지되기는 하더군요. 무엇보다 아침에 더 많은 자유시간이 생긴 게 만족스럽습니다. 대신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여전히 아침 안 먹냐'며 안타까워하시는 소리를 듣는 부작용은 있습니다.
제가 간헐적 단식을 하면서 가장 신경쓰였던 건 호텔 조식이나 회식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이틀쯤 feeding window가 길어지는 건 큰 문제가 없으니까요. 영양보충제를 먹는 습관과 조화가 잘 안 된다는 것이 문제였죠.
저는 갑상선 호르몬 보충제를 무조건 아침 일찍 잊지 말고 먹어야 합니다. 이건 언제나 하기 때문에 다른 습관의 트리거로 삼기에 좋습니다. 그래서 이 때 다른 영양보충제도 같이 먹고 싶었는데, 간헐적 단식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feeding window 바깥에서는 단 1칼로리도 섭취하면 안 됩니다. 따라서 성분표를 잘 살피고, 애초에 가루형이나 액체형 보충제는 아침에 먹지 않습니다. 알약형도 ‘맛’이 있는 비타민 C 류의 보충제는 대부분 칼로리가 조금이나마 있더군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칼로리가 있는 보충제는 먹는 습관 형성이 잘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참고로 눈 건강을 위해 루테인과 자이잔틴이 든 영양제를 꽤 오래 먹었었는데 체감 효과는 없었고, 가끔 힘내고 싶을 때 아르기닌과 비타민C가 혼합된 제품을 먹기도 하는데 이건 어느정도는 효과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러나 다소 충동적으로 Huberman이 항상 광고하던 Athletic Greens(AG1)라는 영양보충제를 1개월치 샀습니다. 요즘 약간 기력이 딸리는 것 같기도 했고, 먹으면 정말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서였죠. 그런데 (제가 자세히 안 알아보고 사긴 했지만) 칼로리가 있는 가루형 제품이었습니다. 이러면 먹는 습관이 잘 안 생기겠다 싶었고, 아니나 다를까 배송이 며칠 전에 됐는데 벌써 하루 까먹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희망이지만 AG1이 혹시 간헐적 단식을 깨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을까 찾아보려고 했는데, ‘단식’이 영어로 뭔지 기억이 안 나서 Huberman 영상을 뒤졌습니다. ‘Fast’였죠. 그래서 does athletic greens break fast 로 검색해보니 Athletic Greens Review: Is this Nutrient-Dense Green Superfood Powder Worth the Hype? 라는 좋은 글이 떴습니다.
읽어보니, 역시나 AG1은 단식을 깨버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글에서는 제가 생각지 않았던 여러 요소도 지목했습니다. 특히 ‘맛’과 ‘가격’. 가루를 탄 물이 그리 매일 즐길 만한 맛이 아니며, 가격이 워낙 비싸서(그리고 그 가격 형성 요인에 non-GMO Food 같은 유사과학적 마케팅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섭취 습관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말이었죠. 게다가 AG1이 권장하는 1일 분량이 너무 충만해서, 오줌으로 배출되는 양이 너무 많다(색이 많이 진하게 변했다)고 느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런 제품을 먹을 때는, 특히 높은 가격을 지불할 때는 제품을 섭취의 목표가 뚜렷하게 있어야 한다는 문구도 좋았고요.
AG1을 며칠이나마 먹어본 입장에서 맛을 포함하여 여러가지로 공감되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추천하는 다른 제품은 뭔지 보니까 그 이유가 꽤 뚜렷하게 있더군요. 그 중에서도 ‘내가 충분히 균형잡힌 식사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그 갭을 메우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Swolverine의 Daily Multivitamin이 제게 괜찮아 보였습니다. AG1은 아마존 직구 기준 1개월치가 약 20만원이었는데 이건 1개월치에 20달러. 가격 차이가 많이 나고, 칼로리가 없어서 아침에 놓치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그래서 AG1 다 먹고 나면 이것 또는 다른 유사 성분 제품으로 바꿔보려고 합니다.
여담으로, 위 글을 읽고 나서 문득 아침식사의 영어 단어인 breakfast의 어원이 ‘단식을 끊는다’는 뜻인 break + fast 아닐까 해서 찾아보니 맞더군요. 사실 fast라는 단어는 형용사로만 너무 익숙한데 이제는 명사의 뜻도 절대 까먹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에 하나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덧붙이면 Huberman, AG1, Swolverine은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Swolverine을 추천한 블로거가 유료 광고를 받았는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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