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는 한스 로슬링이라는 의사이자 통계학자의 역작입니다. 2019년에 읽고 감동해서 저자에 대해 찾아봤는데 이미 2017년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간의 머릿속 세상과 실제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면서,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체계에 대한 10가지 오류를 논하는 엄청난 책입니다. 책 내용이 워낙 좋아서 최근까지도 인용하며 대화하는 일이 종종 있었죠.
2023년에는 책을 더 많이 읽으려고 하는데, 사실 요 몇년간 책보다는 웹 아티클 위주로만 읽어왔기에 권수로만 따지면 1년에 3-4권만 읽어도 이전보다 더 많을 겁니다. 그래서 단순히 새 책을 ‘많이’ 읽으려는 건 아니고 단 몇 권을 읽더라도 깊이 읽으며,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탁월한 책들을 되새기며 제 삶에 더 깊이 스며들게 하자는 모토를 세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팩트풀니스를 다시 읽을까 생각해봤지만… 이정도 좋은 책이면 반드시 좋은 요약본이 있으리라 판단했고 검색해보니 지인인 강재영님이 요약본을 블로그에 올려놓으신 상태였습니다.
강재영님의 이 요약본도 훌륭하지만 이것조차 제 삶에 바로 녹이기엔 길다고 느껴, 책을 참고하면서 요약본을 더 짧게 요약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요약을 다시 표로 요약했습니다. 요약본을 요약하는 행위를 통해 내 머릿속에 일차로 더 집어넣고, 나중에 생각날 때마다는 표만 한번씩 보기 위해서입니다.
정리해보니 의외로 어떤 것들은 제 삶에 이미 깊이 스며들어 있었고, 어떤 것들은 거의 까먹고 있었더군요. (혹시라도 표 복사를 위해 원본이 필요하신 분은 제 블로그에 가보시면 됩니다.)
<팩트풀니스>의 의의는 내 눈과 귀에 들어오는 소식을 부정하거나, 내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일부러 억제하는 데 있지 않다. 인간으로서 내가 어떤 본능에 사로잡힐 수 있는지 인지한 채로, 즉 깨어 있는 상태로 현상을 바라봄으로써 더 현명하게 사고하고 행동하기 위함이다.
1. 간극 본능
세상을 두 개의 집단으로 단순하게 분류하려는 본능(e.g., 재벌과 서민, 진보와 보수, 선진국과 후진국 등). 그러나 세상을 별개의 두 집단으로 구분해서 인식하는 것은 사실 세상을 잘 나타내지 못한다. 세상에 극빈층과 부유층만 있는 게 아니라 극빈층 5%, 부유층 5%, 그리고 “간극” 안에 90%가 있는 식이다.
이렇듯 현실에서는 두 극단의 사이 영역에 대다수가 존재하니, 그 다수에 더 집중할 때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평균비교, 극단비교,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각을 조심하라.
2. 부정 본능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 과거를 장밋빛으로 잘못 기억하고,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부정적 사건을 위주로 선별적 보도를 하며, 상황이 나쁜데 사실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천천히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좋은 소식, 점진적 개선)은 뉴스거리가 거의 되지 않는다. 실제로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동시에 평균 기대 수명으로 볼 때 세계는 지난 200년간 확연히 좋아졌다.
뉴스에는 부정적 소식이 부각된다는 것,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보다 내게 전달될 확률이 높다는 걸 기억하라. 나쁜 소식이 올 것을 예상하라. 세상이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쁠 수 있으며, 뉴스에 많이 나온다고 꼭 고통이 더 큰 건 아니다. 장밋빛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걸 조심하라.
3. 직선 본능
방금 전까지의 경험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직선처럼 지속될 거라고 예상하는 본능.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직선은 대부분 큰 곡선의 일부에 불과하다. 곡선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 직선도 없는 건 아님. 소득 수준과 여성 결혼 연령 비율 등
- S자(1단계에서 낮고 평평, 2단계에서 빠르게 올라감, 3-4단계에서 평평): 소득 수준과 예방접종 비율 등
- 낙타 혹(1단계와 4단계에서 낮은데 2-3단계에서 높음): 교통사고 비율. 1단계 나라는 1인당 자동차 수가 적어 교통사고도 적음. 2-3단계는 자동차가 많아지나 도로와 교통규제, 교통안전교육 등이 부족해 사고가 많아짐.
- 2배 증가: 소득이 늘어날수록 이동 거리는 2배씩 증가
직선은 현실에서 매우 드물다는 걸 기억하라. 어떤 곡선이 눈에 보이는 부분 너머로 어떻게 연장될지 쉽사리 단정짓지 마라.
4. 공포 본능
신체 손상, 감금, 독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며 주목하는 본능. 이런 두려움 덕분에 인류의 생존율이 높아졌지만, 해마다 6만명이 뱀에 물려죽는 1-2단계 사람들이 아니라면 공포 본능은 유용함보다 해가 더 많다. 실제 세계는 덜 폭력적이고 더 안전하다.
자연재해(총사망자의 0.1%) 항공기 사고(0.001%), 살인(0.7%), 방사성물질 유츌(0%), 테러(0.05%) 같은 끔찍한 사건들은 연간 총 사망자의 1%를 넘지 않지만 언론의 집중적 관심을 받는다.
- 자연재해: 100년간 자연재해 사망 수가 절반 이하로 줄음
- 비행기 사고: 2016년에 비행한 4000만대의 비행기 중 치명적 사고는 단 10대 뿐.
- 전쟁과 갈등: 2차 세계대전에서 6500만명이 사망한 이후로 이렇게 강대국간에 긴 평화가 이어진 적이 없었음. 전쟁 인한 사망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적은 시기
- 오염: 후쿠시마 방사능 때문에 사망했다고 보고된 사람은 아직 없음. DDT가 먹이 사슬에 축적된다는 우려로 사용이 규제되었지만 화학물질 오염에 대한 공포가 과대망상 수준이 되는 부작용이 생김. DDT가 직접 원인이 되어 사망한 사례가 몇 명인지 찾지 못했음.
- 테러: 테러는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지만 4단계 나라에서 테러는 사망 원인 순위에서 최하위임.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사람들에게 설문조사해보니 51%가 자기 가족도 테러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두려워했는데, 1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51%임. 너무 높음.
실제로 위험한 것에 대해 두려워해야 유용하다. 공포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실제로 매우 위험한 것은 외면하도록 한다. 공포에 사로잡혔음을 인지하고,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5. 크기 본능
비율을 왜곡해서 인식해 눈앞의 사실을 실제보다 더 크게 오판하는 본능. 크기 본능은 우리의 제한된 관심과 자원을 개별 사례나 눈에 보이는 피해자, 또는 우리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것에만 쏟게 만든다. 그러면 크기 본능을 어떻게 억제할까?
- 수를 비교: 2016년에 420만명의 아기가 죽었다. 엄청난 숫자로 보이지만 2015년에는 440만 명, 2014년에는 450만 명, 1950년에는 1440만명이었다.
- 주목받는 사실과 현실이 다름을 인지: 오랜만에 일어난 사건일수록 더 주목받음. 100년만에 곰에게 죽은 사람은 대대적으로 보도. 여성이 옛 애인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한달에 한번 꼴이지만 뉴스에 잘 나오지 않음.
- 80/20 법칙: 80% 문제에 먼저 집중하는 것은 좋은 전략. 세계 에너지원을 가나다순으로 나열(가스, 바이오 연료, 석유, 석탄, 수력, 원자력, 지열, 태양광, 풍력)하면 다 똑같이 중요해보이지만 석유, 석탄, 가스 3가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합치면 87%다.
- 수를 나누기: 큰 수는 나눠서 비율로 볼 때 더 의미가 있다. 1950년 1440만명의 신생아 사망 수는 비율로 따지면 15%다. 2016년 440만명은 3%다.
어떤 숫자가 아무리 인상적으로 보여도 그 하나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관련 있는 다른 수와 비교하거나 나눴을 때 정반대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6. 일반화 본능
하나의 사례로 그것이 속한 범주를 판단하거나, 같은 범주에 들어있다는 이유로 범주에 속한 각각의 대상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본능(간극 본능을 일반화 본능의 특수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범주는 늘 필요하나, 단순한 범주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더 나은 범주로 대체해야 한다. 직접 가서 생활해보면 잘못된 범주화를 깨닫기 쉽다. 직접 가보지 않아도 달러 스트리트에서 소득에 따라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볼 수 있다.
5가지 방법을 이용해 나의 범주에 의문을 품어라.
- 집단 내 차이점과 집단 간 유사점에 주목하기: 국가는 달라도 소득수준이 같으면 삶이 놀랍도록 닮았고, 국가는 같아도 소득수준이 다르면 삶의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 다수에 주의하기: ‘다수’는 단지 절반을 넘는다는 뜻이다. 51%가 될 수도 있고, 99%일 수도 있다. 몇 퍼센트인지 확인하라. 흔히 세계 모든 국가에서 여성 다수는 원할 때 피임을 한다고 말한다. 중국과 프랑스에서는 ‘다수’가 96%고 앙골라에서는 63%다.
- 예외 케이스에 주의하기: 화학물질 공포증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예외적인 해로운 물질 몇 가지를 일반화한 데서 생긴다. 누군가가 예를 달랑 하나만 내놓고 집단 전체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 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예를 더 제시하라고 말해야한다.
- 나의 경험을 함부로 다른 집단에 투사하지 않기: 특히 다른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할 때 조심하라. 2-3단계 나라에서는 짓다만 집을 볼 수 있는데 게을러서가 아니다. 은행을 가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재산을 안정적 자산인 벽돌로 바꾸어 집의 형태로 보관하는 현명한 선택이다.
- 한 집단을 함부로 다른 집단으로 투사하지 않기: 의식이 없는 환자를 엎드리게 하면 토해서 질식하는 걸 방지해서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게 발견된 이후, 아이들도 엎드려 재우는 게 유행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영아 사망률이 높아졌다. 광범위한 일반화는 좋은 의도라는 명분 뒤에 쉽게 숨을 수 있다.
7. 운명 본능
무언가가 타고난 특성이 불변하며 그것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본능. 직선 본능과도 유사하다. 이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모든 혁신적 변화를 잘 보지 못하게 만든다.
‘변화가 더딘 것’과 ‘불변’은 다르다는 걸 기억하라. 연간 1%의 변화가 70년간 축적되면 100%로 된다. 1900년에는 지표면의 0.03%가 보호구역이었고, 1930년에는 0.2%였다. 연간 증가율은 너무 작아서 감지하지 못할 정도지만 2016년에는 무려 15%가 보호구역이다.
수학, 물리학 같은 과학이나 예술에서의 지식은 시간이 지나도 신선도가 잘 유지되는 편이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지식은 아주 빠르게 상한다.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늘 새로운 데이터를 받아들이면서 지식을 신선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8. 단일 관점 본능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이 생각은 세계를 단순하게 만들고 모든 문제를 하나의 단순한 원인으로 되어 있다고 이해하게 하며,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단순한 해결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한다.
전문가는 자신이 선택한 세계의 한 조각을 이해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이다.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일 뿐이며, 어떤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아니다. 자기 분야에 대한 훌륭한 지식은 오히려 일반 분야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해결책, 하나의 수치만으로 모든 걸 바라보려는 관점은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봐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9. 비난 본능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비난 본능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중요성을 과장하여,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방해한다. 우리가 쉽게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사악한 경영인, 거짓말 하는 언론인, 난민, 외국인이다.
우리는 비난 본능 때문에 나쁜 쪽으로든 좋은 쪽으로든 합당한 수준 이상의 힘과 영향력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개인의 영향은 생각보다 작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개인이나 집단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난할 생각을 아예 버려라. 악당을 찾지 말고 상황을 초래한,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선하라.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영웅을 찾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시스템에 어느정도 공을 돌려라.
10. 다급함 본능
두렵고, 시간에 쫒기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생각날 때 인간은 정말로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성향이 있다. 빨리 결정하고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다급함에 쫒기면 분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영업사원은 언제나 이런 말투로 얘기하지만, 현실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절대 안 되는’ 일은 드물다.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세계적 위험 다섯 가지는 세계적 유행병, 금융위기, 제3차 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이다. 이들은 실제로 두렵고 빠른 조치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두려움과 다급함으로 위기를 조장하는 건 편리하지만, 대중들에게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주어 문제를 외면하게 할 뿐 아니라 좋은 해결책이 나오기도 어렵게 만든다. 데이터와 냉철한 분석으로부터 나온 행동이 필요하다.
다급해 보이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씩 차근차근 행동하라. 지금 아니면 절대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호흡해서 정보를 더 찾아보면서 다른 본능이 깨어나지 못하게 하라. 관련은 있지만 부정확한 데이터, 정확하지만 관련없는 데이터를 조심하라. 최선 또는 최악의 시나리오만 얘기하는 점쟁이에게는 이전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데이터를 요구하라. 극적인 조치의 부작용을 경계하고, 단계적이며 현실적인 개선을 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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