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즈 앤 올>, 날 사랑한다면 내 모든 것을 먹어줘

지극히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의 형태, 그 속에 담겨있는 각자의 철학

2023.02.14 | 조회 1.6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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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츠의 영화일기

시네필들의 감정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부츠의 영화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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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2022년 11월 30일 개봉된 <본즈 앤 올>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메가폰을 잡았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티모시 샬라메와 함께하는 두번째 영화로 카니발리즘로맨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소재를 결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킨 영화입니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사랑을 하고 있는 극 중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다루기로 유명한 감독인데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Bones & All' 을 텍스트를 넘어 비주얼 적으로 어떻게 납득을 시킬지 궁금함이 컸으나 그러한 걱정을 한게 무색하게 탁월한 연출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보는 관중들로 하여금 설득력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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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재미있게도 티모시와 함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합을 맞추었던 아미 해머가 실제로 인육을 섭취한다는 구설수와 함께 후속작 <파인드 미>의 제작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한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묘한 접점이 있었기에 어쩌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티모시 샬라메가 더욱 더 스토리에 집중하여 로맨스와 카니발리즘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조합 속 화합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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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앤 올>은 식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 매런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식인 습성을 가진 소년 리를 만나 예상하지 못한 위험들과 마주치며 발전하는 관계를 보여주는 호러 로맨스물입니다. 식인을 행하는 장면은 정말 눈살이 찌푸려질만큼 잔혹하나 그들이 행하는 식인적 행위에도 나름의 철학적 정신이 깃들어져 있어 눈길을 뗄 수 없게끔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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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이 된 매런은 오밤 중 초대된 친구 집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잠재되어 있던 식인 성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 사고를 치게 됩니다. 이것을 계기로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빠마저 그 곁을 떠나게 됩니다.

아빠는 떠나면서 매런의 출생증명서와 현금, 그리고 카세트테이프를 남기고 갔는데 카세트테이프 안에는 매런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갓난 아기 시절때도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는 내용이 아버지의 육성으로 녹음이 되어 있었죠. 이 외에도 매런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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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이 남들과 다른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성향의 근원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매런은 출생증명서에 찍혀있는 엄마의 이름만을 힌트로 삼아 엄마가 살고있는 주소를 유추하여 찾아 향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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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낯선 도시에 도착한 매런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었죠. 설리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 남성은 먼 발치부터 매런의 냄새를 맡고 오게 되었다고 말을 하면서 '이터'(식인을 하는 사람)에게선 특유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매런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자신을 이 곳으로 인도했다고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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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으로는 소름끼치기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을 해할 것 처럼은 보이지 않았기에 매런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설리를 따라 설리의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렇게 저녁을 얻어먹을 찰나, 윗 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올라가본 곳엔 중년의 여성이 숨을 헐떡이는 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던 설리는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듯 매런에게 자신은 식인을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다시 1층으로 내려 갑니다.

다음 날, 싸늘하게 죽어있는 중년의 여성을 먼저 먹어치우고 있는 설리의 곁에 매런도 다가와 함께 식사를 치르게 됩니다. 이때 매런은 본격적으로 이터로서의 삶을 각성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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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는 각성을 하게 된 매런에게 어떤 연유에서인지 자신과 함께 다니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였으나 여전히 설리에게 낯선 불편함을 느꼈던 매런은 그가 샤워를 하는 동안 도망치게 됩니다.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에 탑승한 매런을 뒤늦게 발견한 설리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매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작별을 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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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새로 도착한 낯선 곳에서 허기가 져 먹을 것을 훔치기 위해 잠깐 들린 식료품점에서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한 남성을 퇴치해주는 리를 만나게 됩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 리는 매런과 같은 이터였고 설리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이끌림을 리에게 느꼈던 매런은 함께 여정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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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 동행하는 과정에서 매런은 필요할 때마다 사냥하듯 식인에 대한 허기를 해결하는 그를 보며 자신은 이러한 식성이 분명 엄마를 만나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며 차 한대에 의존하며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로드트립을 계속하게 됩니다.

둘의 여행 과정에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죽이고 섭취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속에서 가족과의 연이 없고 당장 사라져도 누군가가 찾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행위를 이어가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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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수소문 끝에 마주하게 된 매런의 엄마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을 하였고 매런이 겪는 크나큰 고통을 더 이상 겪지 않게 해주겠다는 문장을 끝으로 그녀를 죽이려고 합니다. 엄마에게서 도망친 매런은 아빠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엄마에게도 죽임을 당할뻔했단 사실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리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비통한 삶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의 늪에 빠져버린 매런은 큰 혼란함과 외로움을 느껴 리 몰래 그의 곁을 떠납니다. 이제 혼자 목적지 없이 살아가야 되는 매런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길 위에서 우연히도 설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대화를 하다보니 설리가 우연히 자신과 만나게 된 것이 아닌, 버스에 탈때부터 자신을 미행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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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 더 격앙스러워진 설리의 모습에 더욱 기겁을 하게 된 매런은 자신과 함께할 것을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설리를 완강히 거부하고 그 자리를 황급히 벗어나게 됩니다. 몇 달의 시간이 흘러 매런은 리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가 있을만한 곳에 찾아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리는 그 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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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재회하게 된 둘은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리가 어쩌다 식인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난 매런은 그가 느꼈을 두려움과 죄책감에 이해를 하며 그에게 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 둘은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자고 다짐을 하고 살아가게 되는데 이 둘을 기다리는 건 마냥 좋지만은 않은 내용입니다. 추가적인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나머지 이야기는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시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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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부부터 나오는 잔혹한 장면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장면들로 인해 영화가 끝날 때까지 흥미를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내심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로맨스적 요소들이 호러성을 중화시켰고 특히나 영화의 후렴 부분에서는 단 몇 초밖에 안되는 장면에 큰 감동을 얻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 몇 초밖에 안되는 장면이 있었기에 앞서 나온 피칠갑을 한 이터들과 난도질과 같은 끔찍한 행동들이 펼쳐지는 장면들을 필연적으로 노출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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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을 하는데 주인공인 매런은 그들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처음 만났던 외지인인 설리에게서는 같은 이터들의 존재감을 깨우칠 수 있는 냄새를 맡는 방법과 본성을 각성시키는 방법을 배우고, 리에게서는 본성을 초월하여 사랑하는 방법을, 야영지에서 만난 다른 이터들에게서는 뼈까지 모조리 치워먹는 '본즈 앤 올(Bones and all)' 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식성도 알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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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상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카니발리즘은 영화 속 캐릭터들에겐 선택권한이 없는, 본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허기짐을 느끼고 식사를 하는 것처럼 어떤 것을 먹느냐에 대한 대상이 바뀐 것이지 식육을 하는 과정에서도 이성적인 대화를 나누고 인류애를 보여주는 행동도 취하곤 합니다.

대게의 이터들은 자신의 본성을 인정하고 그 모습이 평범한 사람인냥 살아가는 반면 매런은 자신의 본성을 인정하지 않고 평범한 타인의 모습처럼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점은 정말 재밌게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도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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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흘러가는 평범한 삶을 바라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희망하는 삶이죠. 평범함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나, 대게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라던가 배고플 때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피곤할 때 누워 잘 곳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함의 범위라고 생각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스스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매런이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떠나는 로드무비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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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 함께 트럭을 타고 황량한 도로를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는 매런을 보자면 앞길을 가로막는 것 없이 달리면 되기에 평온하나 이내 어디로 향하는지도 잊게 만드는 끝없이 펼쳐진 길때문에 동시에 불안감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영화의 끝무렵에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리의 대사가 스토리를 장식하는데, 이를 통해 비유하고자 한 것이 바로 평범함을 찾아 떠났던 매런의 여정이 다시 재게되어야 한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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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영화가 가지는 카니발리즘의 의미는 끔찍한 식인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다루는 영화 '한니발'이나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 영화와는 많이 상이합니다. 살인마나 뱀파이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보하기 위해 살인이나 부윤리적인 행동을 벌이는 반면 본즈 앤 올에서는 적어도 이터들이 자신들만의 윤리관을 정해놓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식인'이라는 사회적 통념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제임에도 거리낌없이 영화적 허용이 가능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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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학적 허용은 최진영 작가가 쓴 '구의 증명'이라는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5년 출간되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하자 그 육신을 먹어치우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본즈 앤 올을 상기하게 합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거야.'' - p.19

책을 읽어보다보면 이 문장이 전혀 잔인하게 보이지 않고 되려 감동적이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구의 증명과 본즈 앤 올에서 나오는 식인의 참 뜻은 ''먹음으로써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 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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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려지는 소재로 인해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얻진 못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2022년 보았던 영화중에서는 가히 마음 속 큰 요동을 자아낸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 속에 남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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