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연결하고 공유하는 인간

<소셜 딜레마>에 놓인 뇌 (1): 소셜 미디어의 오랜 역사

2020.11.24 | 조회 1K |
0
|

뇌과학의 시선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소셜 딜레마에 놓인 뇌

독일의 작은 도시 비텐베르크, 한 가톨릭 사제가 짙은 어둠을 뚫고 교회 종탑에 오릅니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무릎을 꿇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죠. 음 그런데 여전히 기도에 집중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요한 테첼이라는 수도사의 행태를 생각하니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른 거예요. 테첼은 교리를 빌미로 면죄부를 공공연하게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신께서 소위 '잠깐의 죄'를 면하게 하셔서 죽은 뒤에는 연옥에서 죄를 묻지 않고 곧장 천국으로 보내주신다고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말이죠. 면죄부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은 작게는 성직자들이 빚을 갚는데, 크게는 호화로운 성당을 짓고 전쟁을 벌이는 데 썼습니다. 이 젊은 사제는 일찍이 면죄부 판매가 '신앙인에 대한 종교적 사기'라며 강력하게 규탄했습니다. 

힘겹게 기도를 마친 그는 방으로 돌아와 대주교에게 보냈던 편지 사본을 찬찬히 읽어봅니다. '면죄부의 능력과 그 효과에 대한 논쟁'. 테첼의 면죄부 판매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 편지를 받고서 대주교는 이미 그를 이단으로 판단하고 교황청으로 넘긴 뒤였죠. 하지만 이 젊은 사제는 면죄부 이슈를 토론장으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결국 토론할 내용을 95개로 정리해서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출입문에 붙이기로 하죠. "마르틴 루터 님이 새로운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털 고르기와 토크 하기

인간과 영장류는 몸에 비해 비교적 커다란 뇌를 갖고 있습니다. 뇌를 유지하기 위해선 에너지도 많이 드는데, 인간은 전체 에너지의 20% 이상을 뇌를 위해 쓰죠. 그중에서도 감각 지각, 공간 추론, 언어와 같은 고위 뇌 기능을 담당하는 신피질(neocortex)이 유독 큽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신피질이 유난히 큰 이유를 인간과 영장류의 사회성에서 찾습니다. 집단을 이루는 일은 식량을 얻고 맹수로부터 안전하기 위한 초기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생존 전략입니다. 그런데 집단이 커질수록 고민할 것들이 늘어납니다. 인간관계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들이는지 알 수 있죠. 나도 모르게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을 추측하고 내가 할 행동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도 예측해야 하잖아요. 모두 신피질이 담당하는 능력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신피질이 크게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일리가 있네요. 

그렇다면 돈독한 소셜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동물원에 가보셨다면 한 번쯤은 원숭이들이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단순히 벌레나 기생충, 먼지 같은 이물질을 골라주는 거라 볼 수도 있지만, 위생 상태를 점검하는 것 치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털 고르기에 매달립니다. '사회적 털 고르기'죠. 상대 원숭이가 털을 골라주면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또 받은 만큼 털을 골라주는 게 예의고요. 이렇게 털을 골라줌으로써 서로에 대한 유대감과 신뢰 관계를 만드는 거죠. 영장류 사회에선 털 고르기가 일종의 소셜 네트워킹입니다. 

인간은 어떨까요?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털을 골라주는 분은 없을 테고요. 대신 우리에겐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성대가 있습니다.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로빈 던바는 가십 없이는 사회도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털 고르기 대신 언어로 크고 작은 '토크'를 주고받으며 복잡한 소셜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는 얘기죠. 여러분이 꺼낸 토크가 정말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음과 동시에 관계를 확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토크든 상관없습니다. 친한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시콜콜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그 관계가 더 끈끈해질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어떤 정보를 담고 있든 간에,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토크는 나름의 방식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어갑니다.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우리는 모두 '토크형 동물'이다. 친한 사람과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며 관계를 돈독히 하고, 새로운 사람과 조심스레 대화를 트며 관계를 확장한다. 살아있는 한 우리의 토크는 멈추지 않는다. © 디글 :Diggle #유퀴즈온더블럭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우리는 모두 '토크형 동물'이다. 친한 사람과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며 관계를 돈독히 하고, 새로운 사람과 조심스레 대화를 트며 관계를 확장한다. 살아있는 한 우리의 토크는 멈추지 않는다. © 디글 :Diggle #유퀴즈온더블럭

토크는 문자를 타고

입에서 입으로 주고받던 '토크'들이 서서히 문자에 실려서 퍼집니다. 사실 초기 문자는 데이터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를테면, 농사를 막 시작했던 신석기시대에는 곡물이나 가축을 세는데, 기원전 34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빵과 맥주 배급량이나 세금을 기록하는데 주로 문자가 쓰였죠. 그러던 문자가 서서히 추상적인 기호로 의미를 전달하고, 나아가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로 발전하면서 토크들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없어도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가능해진 거예요.

그렇다고 문자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추상적인 기호들의 의미와 쓰임새, 문법 등을 배우는 게 매우 까다롭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은 엘리트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읽고 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필경사라는 특권 계층이 생겨날 정도였으니까요.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문자가 널리 쓰이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8세기에 탄생한, 자음과 모음을 갖춘 알파벳의 탄생 덕분에 그리스의 문명이 빛을 보게 된 거에요. 당시 그리스의 정치 문화 그리고 철학, 문학, 의학, 수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지적 유산이 문자와 글로 유통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죠. 고대 그리스인들은 문자를 이용해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일종의 소셜 미디어 문화를 일군 셈입니다.

쓰지 말고 뽑으세요

그리스에 이어 영원할 것만 같았던 로마 제국도 멸망하면서 유럽에서는 문서의 생산과 유통량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이른바 암흑의 시대, 그나마 교회의 사제나 수도사들이 글을 읽고 쓰며 꿋꿋이 문자 미디어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종교적인 글을 필사하고 책으로 엮어내는 작업을 맡았는데, 아무래도 값비싼 양피지에 사람이 직접 쓰고 정교한 그림까지 넣다 보니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의 시간과 비용은 어마어마했죠.

그래도 당시 책은 성직자나 소수의 왕족과 귀족만 향유할 수 있었기에 수도사만으로도 책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1세기 후반 아랍과 중국과의 교류가 늘고 대학이 생겨나자 문제가 생깁니다. 대학에서 고대의 지식을 다시 연구하기 위해서는 종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책이 필요했던 거에요. 과거 교회만 담당하던 출판 업무를 대학이 분담하고 필사만 하는 알바를 고용했다지만 수요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바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입니다. 금세공 집안의 아들답게 그는 여러 개의 금속 활자를 만들고 이를 조합해서 행과 페이지를 구성합니다. 또한 유성 잉크를 배합해서 잉크가 활자에서 잘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잉크가 묻은 활자를 일정한 압력으로 누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죠.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사람이 손으로 쓰는 것보다 100배나 빠르게 책을 찍어낼 수 있었습니다. 독일 마인츠에서 태어난 인쇄술은 독일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학술과 상업의 중심인 대도시에서 책을 공급했죠.

마르틴 루터(왼쪽)와 '95개조 반박문'으로도 알려진 그의 면죄부 논쟁 인쇄본(오른쪽). 라틴어로 쓰여졌음에도 인쇄술에 힘입어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이후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대중들에게로 그 파급력을 더했다. 루터는 인쇄술이라는 소셜 미디어를 발빠르게 활용한 당대의 미디어 선구자이다. © Wikipedia
마르틴 루터(왼쪽)와 '95개조 반박문'으로도 알려진 그의 면죄부 논쟁 인쇄본(오른쪽). 라틴어로 쓰여졌음에도 인쇄술에 힘입어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이후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대중들에게로 그 파급력을 더했다. 루터는 인쇄술이라는 소셜 미디어를 발빠르게 활용한 당대의 미디어 선구자이다. © Wikipedia

역사상 가장 빠르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미디어가 탄생한 겁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이 혁신적인 미디어를 비텐베르크의 젊은 사제 마르틴 루터가 선택했습니다. 그가 교회 출입문에 붙인 95개의 토론 주제가 인쇄기를 거쳐 학계와 대중에게까지 퍼져나갔던 거에요. 루터가 인쇄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알 순 없지만, 종교개혁의 파장을 볼 때 구텐베르크는 인쇄라는 소셜 미디어의 아버지, 루터는 그 미디어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플루언서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인터넷이 꽃피운 소셜 미디어

아날로그 시대의 소셜 미디어를 인쇄 문화가 이끌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소셜 미디어는 단연 컴퓨터와 인터넷이죠. 사실 인터넷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합니다. 밥 테일러는미국 국방부의 연구 기관인 고등 연구 계획국(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에서 컴퓨터와 관련한 연구를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책상 위에 쌓여가는 단말기 때문에 고민이 깊죠. 프로젝트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인데, 문제는 관리하는 프로젝트가 늘수록 단말기도 늘어난다는 것. 이대로라면 조만간 단말기가 책상을 채우고도 남을 지경이에요. 결국 테일러는 단말기없이 컴퓨터와 컴퓨터를 원격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인터넷의 전신인 아파넷(ARPANET)이죠.

컴퓨터와 컴퓨터가 연결되었으니 이제는 정보와 정보를 알맞게 연결시켜 사용자에게 전달해야 할 겁니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로 많이 알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1990년 영국의 과학자 팀 버너스리가 개발했습니다. 그 시작은 단순히 동료 과학자들과 아이디어를 쉽게 공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버너스리는 효과적인 협업을 위해서 아이디어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어나 문장 또는 문단을 다른 문서와 연결지으려 했죠.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지금의 웹 사이트를 낳았습니다. 비로소 소셜 미디어가 자라날 생태계가 생겨난 거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탄생 이야기를 담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한 장면. 영화 속 저커버그도 마이스페이스와 차별화된 페이스북 플랫폼을 개발하려 한다. © 넷플릭스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탄생 이야기를 담은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한 장면. 영화 속 저커버그도 마이스페이스와 차별화된 페이스북 플랫폼을 개발하려 한다. © 넷플릭스

본격적인 소셜 미디어 시대를 연 건 바로 페이스북입니다. 사실 페이스북 전에도 소셜 미디어라고 할 만한 플랫폼들은 더러 있었습니다. 미국의 마이스페이스(Myspace)와 우리나라의 싸이월드가 대표적이죠. 그러나 하버드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시작한 페이스북이 2006년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열면서 사람들은 간결한 인터페이스와 다른 사이트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페이스북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게시글과 사진, 상태 업데이트, 프로필 변경 등 친구의 다양한 소식들을 최신순으로 보여주는 뉴스피드가 특히 매력적이었죠. 페이스북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아주 짧은 글로 소통하는 트위터,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에게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유튜브도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소셜 미디어입니다.

뇌 깊숙히 자리 잡은 소셜 미디어

우리는 본래 소셜 네트워크를 위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진화의 세월 동안 변화무쌍한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소셜 네트워킹 능력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으로부터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당연합니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언어, 문자, 인쇄술,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형태만 변할 뿐 언제나 존재해왔죠.

하지만 인터넷 위에 올라탄 지금의 소셜 미디어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인터넷만 된다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받아볼 수 있으며, 내가 제공한 정보에 대한 피드백도 즉각적이죠. 정보의 파급력도 대단하겠지만, 제가 더 궁금한 것은 이 강력한 소셜 미디어를 만난 우리의 뇌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소셜 미디어에 반응하는 뇌 이야기들을 엮어봅니다. 타인의 마음을 짐작하거나 자신을 인식하는 메커니즘 또는 보상 회로 같은 우리 뇌의 다양한 시스템이 소셜 미디어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아무쪼록 우리 모두의 소셜 네트워크가 건강하길 바라며 다음 글을 준비해보렵니다.

 

인스타그램 @brain_letter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뇌과학의 시선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뇌과학의 시선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소셜 딜레마에 놓인 뇌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