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치킨집 입구에는 아주 크고 잘보이는 빨간색 글씨로 '우리 가게는 하림 닭만 사용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하림이라는 브랜드가 워낙 노출이 많기도하고 몇 번의 구매 경험을 통해 신뢰감이 생겨서인지 그 동네 치킨집에 한층 믿음이 가더군요.
조립용 PC가 한참 유행할 때 용산에 가면 무조건 인텔 CPU를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인텔 인사이드'라는 인상 깊은 캠페인 때문인지,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인텔 마크가 붙은 본체를 보면 왠지 컴퓨터가 쌩쌩 잘 돌아갈 것 같아서요. 전문가가 아니라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다른 칩과 속도나 퍼포먼스에서 차이가 크게 나지는 않을거예요. 그저 제 인식 속에는 CPU하면 인텔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던거죠.
옷을 살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요. 바로 지퍼입니다. 인터넷으로 중저가 바지를 샀는데, 지퍼에 선명하게 새겨진 YKK를 보는 기분이란 뭐랄까요 로또 당첨된 기분이라면 과장이지만, 뽑기에 당첨된 듯 기쁘더라구요.
'그래, YKK를 쓸 정도면 이 브랜드는 적어도 바지를 대충 만들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또 그만큼 다른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을거라는 기대를 하게됩니다. YKK가 아닌 지퍼가 말썽을 부려 몇번이나 민망한 장면을 연출했던 게 그런 믿음을 더욱 강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YKK의 지퍼는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거든요.
임플란트를 해본 적이 없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저는 아마도 오스템을 사용할 가능성이 클겁니다. 물론 오슬람이라는 전구 브랜드와 헷갈려서 '오슬람으로 해주세요.' 라는 실수를 할까 두렵기는 하지만, 오렌지 색의 로고는 분명하게 제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소중한 이빨이라면 익히 들어왔던 임플란트 1위 기업의 오스템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겠죠. 의사선생님께서 선택권을 주신다면 저는 당연히 오스템입니다.
최근에는 직접 제가 사용하지는 않지만 눈여겨 보는 제품이 있습니다. 효성에서 생산하는 탄소섬유인데요. 철보다 무려 10배 강하지만 무게는 4분의 1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우주 항공·자동차·풍력 발전 등 분야들에서 철의 대체재로 활용될 거라고 하니 꿈같은 소재죠.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이라고 기술이라고 하는데 수소경제가 본격화되고 탄소섬유가 여지저기 미래의 제품들에 더 많이 쓰이게 된다면 산업화 시대의 철강회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소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꾸는 브랜드가 될거라는 생각이듭니다. 최근 3개월만에 주가가 두배나 오른 건 이런 이유 때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하림 닭, 인텔칩, 오스템 임플란트, 효성의 탄소섬유까지. 이런 브랜드들은 주인공은 아니니만, 없어서는 안될 정말 중요한 조연들이죠. 중요한 조연이 없었다면, 영화의 매력도 한층 사라지고 기억에서도 희미해졌을 영화를 떠올려 봅니다. 넘버쓰리의 송강호가 없었다면, 건축학개론 납득이 조정석이 없었다면, DP에 한호열 배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뭔가 밋밋하고 임팩트도 없고 재밌지만 평범했던 영화로 남았을 겁니다.
세상의 많은 브랜드들이 주연이 되기를 꿈꾸고 준비합니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 보면 어떨까요. 우리 브랜드가 없으면 연기를 안하겠다고 할 정도로 특별한 존재감을 갖는 조연이 되는거죠.
쉽게 닿지 못할 주연의 삶만(B2C)꿈꿀 게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매력적인 조연(B2B)을 꿈꿔 보는 것도 좋을 선택이 아닐까요.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주연에게 쏟아지는 박수 소리는 금방 공중에 흩어지지만, 든든하게 주연을 받쳐주던 조용히 빛나는 조연의 연기는 생각보다 긴 여운과 감동을 줍니다.
| 브랜딩 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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