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to

AI가 초안 73%를 쓰는데 왜 안 팔릴까

2026.09.05 | 조회 3 |
0
|

지난주에 나온 Product Marketing Alliance의 2026년 조사를 보다가 손이 멈춘 숫자가 있습니다.

 

제품 마케터의 73%가 런치 카피 첫 초안을 AI에 맡기고 있다는 겁니다. 2024년엔 22%였습니다. 2년 만에 51포인트가 올랐어요.


마케팅 도구 도입 곡선 중에 이 정도로 가파른 걸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마케팅 자동화도, CDP도, GA4 강제 이전도 이렇게 빠르지 않았어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건 승인이 필요한 도입이 아니거든요. 예산 심사도, 벤더 미팅도, 보안 검토도 없습니다. 팀장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전원이 쓰고 있는 상태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숫자를 도입률로 읽지 않습니다. "마케터의 시간이 어디서 회수됐는가"를 알려주는 지표로 읽습니다.
그리고 진짜 질문은 그 다음입니다. 회수된 시간은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요.


같은 리서치에 답을 짐작하게 하는 데이터가 하나 더 있습니다. 12개월 동안 A/B 테스트를 네 번 이상 돌린 287개 팀을 분석한 결과인데요, 테스트 층위별로 성적이 이렇게 갈렸습니다.


카테고리 프레이밍 테스트는 54%가 유의미한 승자를 냈고 평균 리프트가 19포인트였습니다. 밸류 프롭은 41%에 11포인트. 타깃 고객 정의는 38%에 8포인트. 그리고 히어로 카피는 31%에 5포인트였습니다.


맨 위와 맨 아래의 리프트 차이가 거의 네 배입니다.


여기서 불편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AI가 가장 잘하는 게 히어로 카피예요. 그리고 리프트가 가장 낮은 것도 히어로 카피입니다. 우리가 지금 공짜로 만들고 있는 층위와, 실제로 돈이 나오는 층위가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겁니다.


참고로 이 조사에서 AI 활용 영역을 세부적으로 보면 순위가 흥미롭습니다. 런치 카피 초안이 73%로 압도적 1위, FAQ 생성 64%, 경쟁사 모니터링 42%, 배틀카드 갱신 38%, 윈-로스 분석 종합 31%, 데모 스크립트 27% 순입니다.


위로 갈수록 "생산"이고 아래로 갈수록 "판단"이에요. 도입률은 정확히 생산 쪽에 몰려 있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AI는 판단을 대신해주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칸을 더 봅니다. 경쟁사 인텔 모니터링이 42%인데, 이건 수집만 자동화된 겁니다. 경쟁사가 가격을 바꿨다는 사실은 알림으로 오지만, 그게 우리 포지셔닝에 무슨 의미인지는 아무도 안 씁니다. 알림함만 늘어난 팀을 여러 번 봤어요. 정보가 늘었는데 결정은 그대로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시간을 어디에 쓰나요.
회의에서 다투는 것도 히어로 카피고, 대표님이 피드백 주는 것도 히어로 카피고, AI한테 스무 개 뽑아달라고 하는 것도 히어로 카피입니다.
카테고리 프레이밍은 회의 안건에 잘 오르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가 무엇으로 불리는 회사인가"라는 질문이고, 그 질문은 마케팅 회의에서 결론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대표와 세일즈 리드와 프로덕트가 다 같이 앉아야 결론이 나요. 그리고 그런 자리는 만들기가 귀찮습니다.


저는 이게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터가 게을러서 카피만 만지는 게 아닙니다. 카피는 혼자 결정할 수 있고, 카테고리는 혼자 결정할 수 없어서예요. 조직이 마케터에게 준 권한의 경계선이, 그대로 성과의 상한선이 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이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첫째, 국내엔 제품 마케팅이 독립 직무로 존재하는 조직 자체가 드뭅니다. 대부분 그로스 마케터나 콘텐츠 마케터가 겸하죠. 겸직자는 구조적으로 하단부 작업에 붙잡힙니다. 상단부 판단은 원래 다른 사람 일이니까요. 이 상태에서 AI가 들어오면 생산 속도만 오르고 층위는 절대 올라가지 않습니다.


둘째, 국내 B2B는 카테고리를 스스로 정의해본 경험이 얕습니다. 대부분 해외 카테고리를 번역해서 씁니다. CDP, RevOps, PLG 같은 단어를 그대로 들여와요. 그러면 카테고리 프레이밍 실험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미 남이 정해둔 상자 안에서 카피만 고치는 게임이 되어버립니다.


셋째, 의사결정이 위로 몰려 있습니다. 카테고리 프레이밍은 대표 승인 사항인 경우가 많은데, 대표는 그걸 마케팅 이슈가 아니라 브랜딩 이슈로 분류합니다. 브랜딩 이슈는 예산 심사에서 항상 뒤로 밀리죠. 그래서 실험이 시작조차 안 됩니다.


이 이야기를 국내 팀에 하면 반응이 비슷합니다. "맞는 말인데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절반만 맞다고 봅니다. 회사 전체의 카테고리를 바꾸는 건 확실히 실무자 권한 밖입니다. 하지만 랜딩 페이지 하나, 특정 세그먼트 대상 캠페인 하나에서 프레이밍을 바꿔보는 건 대부분 권한 안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실험 결과가 대표를 설득할 유일한 데이터가 됩니다.


회의에서 이기는 방법은 논리가 아니라, 이미 돌아간 실험입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커리어 관점입니다.
생산이 싸지면 생산량이 늘어납니다. 경제학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이야기죠. 문제는 이게 개인의 평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겁니다.


산출물은 눈에 보입니다. 분기 회고에 "원페이저 40개 제작, 랜딩 변주 12건 테스트"라고 쓸 수 있어요. 반면에 "카테고리 정의를 6주간 고민했고 아직 결론이 안 났음"은 쓰기가 어렵습니다. 쓰면 일 안 한 사람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실력 있는 마케터일수록 오히려 하단부로 끌려 내려갑니다. 평가 시스템이 그쪽을 보상하니까요. 저는 이게 지금 마케팅 조직에서 벌어지는 가장 조용한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지만, 3년 뒤에 포지셔닝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조직에 남아 있지 않게 되는 방식의 손실이요.


AI는 여러분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대체 가능한 일만 더 빠르게 하도록 유도할 뿐입니다. 그 유혹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결과물이 즉시 나오고, 즉시 칭찬받고, 즉시 지표로 잡히니까요.


그럼 당장 뭘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에 30분이면 되는 것 두 가지만 제안드립니다.


하나. 지난 6개월간 만든 세일즈 자료 목록을 뽑고, 조회 로그를 붙여보세요. 새 자료를 만들 시간에 기존 자료가 실제로 열렸는지부터 확인하는 겁니다. 대부분 만들기 전에 답이 나옵니다. 열리지 않는 자료를 하나 더 만드는 건 마이너스 작업이에요. 영업 입장에서는 봐야 할 게 늘어난 거니까요.


둘. 지금 운영 중인 랜딩 페이지 하나를 골라서, 히어로 카피 말고 카테고리 한 줄만 바꾼 버전을 만들어보세요. "○○ 자동화 툴"을 "○○ 팀을 위한 운영 체계"로 바꾸는 식입니다. 제품 설명은 그대로 두고 상자만 바꾸는 겁니다. 승률 54%짜리 실험을 안 돌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승인도 예산도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대표를 설득할 데이터를 만드는 가장 빠른 경로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가 문제 진단이고요. 이번 아티클에는 제가 아직 풀지 않은 숫자가 두 개 더 있습니다.


하나는 세일즈 인에이블먼트 자료의 실제 도달률입니다. 800개 팀을 조사했더니 중앙값이 22%였어요. 만든 자료의 5분의 4는 아무도 안 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료 종류별로 보면 배틀카드는 67%, 원페이저는 18%로 3.7배가 차이 납니다. 제작 난이도는 오히려 원페이저가 낮은데 말이죠.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AI로 생산 속도를 세 배 올리면 이 숫자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티클에서 다뤘습니다.


다른 하나는 런치 효과 감쇠 곡선입니다. 런치 분기에 파이프라인이 38% 오르고, 다음 분기 24%, 그 다음 12%로 분기마다 절반씩 죽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이 이 그래프를 보고 내리는 결론이 있는데, 저는 그 결론이 정확히 틀렸다고 봅니다. 실제로 런치 횟수는 2023년 대비 30% 늘었고 인원도 33% 늘었어요. 정확히 상쇄됐습니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은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 제가 실제로 뭘 하겠다는 건지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세 번째가 제일 어렵습니다. 성과가 눈에 안 보이는 일이라서요.
읽고 나면 팀 분기 계획에서 한 줄은 지우고 싶어지실 겁니다. 그 한 줄이 뭔지는 결론에서 뒤집힙니다.


원문 보기: https://medium.com/@hoon_16083/ai-%EC%B4%88%EC%95%88-73-%EC%8B%9C%EB%8C%80-%EB%A7%A4%EC%B6%9C%EC%9D%80-%EC%A0%95%EB%B0%98%EB%8C%80%EC%97%90%EC%84%9C-%EB%82%9C%EB%8B%A4-1ebca6af012f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비즈니스 연구 분석하는 훈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비즈니스 연구 분석하는 훈

전문적인 비즈니스 리포트를 공유합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대표번호: 070-8027-1409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