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셜커머스의 대명사 핀둬둬(Pinduoduo),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과 90% 할인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 안착 중
최근 미국의 페이스북 피드와 유튜브 광고를 도배하고 있는 한 전자상거래 기업이 있습니다. 중국의 소셜커머스 기업 핀둬둬(Pinduoduo)가 2022년 9월 출시한 미국 초저가 쇼핑몰 테무(Temu)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중국 억양이 가득한 영어와 B급 감성의 컨텐츠를 반복 재생하는 방식으로 바이럴을 일으키고있는 이 쇼핑몰은 현재 틱톡을 제치고 미국 전체 무료앱 다운로드 순위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처음 앱을 출시한 이후 단 5개월만에 아마존과 쇼피파이는 물론 중국 패스트패션 쉬인(Shein)까지 제치고 부동의 쇼핑앱 1위 자리를 꿰찬 것입니다.
하지만 테무가 미국 시장에서 아마존이나 쇼피파이를 위협하는 메인스트림 쇼핑앱으로 등장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전히 틱톡,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는 테무의 제품에 대한 가혹한 평가와 리퍼럴을 통해 서로 추천해주며 돈을 받고 앱을 삭제하는 팁들이 난무합니다. 미국 소비 시장이 워낙 방대하여 초저가가 어필할 수 있는 고객층이 항상 존재하지만 이들이 미국 소비 시장의 주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중갈등 뚫은 '초저가 돌풍'… 중국 쇼핑몰 테무의 인기 비결
한밤중의 조용한 습격...中 핀뚜어뚜어의 ‘테무’ 美 사이트 오픈
오히려 테무가 흥미로운 점은 단기간에 미국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전개하는 대담한 시장 진입 전략입니다. 드롭쉬핑 형태로 중간상을 건너뛰고 중국에서 곧바로 미국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쉬인(Shein)'의 벌크 판매 전략과 사업 초기부터 대규모의 플랫폼 광고비를 집행해 단숨에 사용자를 확보하는 '틱톡'의 바이럴 전략을 활용하고 있는 테무는 평점 테러와 부정적 리뷰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중국기업 특유의 물량공세를 펼치며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메기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또한 테무의 미국 시장 안착은 미중갈등 이후 중국의 주력 수출 사업이 레노버, 화웨이, 샤오미와 같은 하드웨어에서 틱톡, 쉬인과 같은 인터넷 및 소비재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미-중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의 10년 전쟁
사실 값싼 중국산 제품을 가져와 미국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는 사업은 이미 미-중 무역에서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며 10년 이상 성장해 온 수백조 원 규모의 시장입니다. 테무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10년 간 미국 전자상거래의 근간이 어떻게 중국 공급망에 포섭되어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크로스보더 이커머스는 2000년 대 후반까지만해도 현지 무역상들이 값싼 중국산을 들여와 아마존과 같은 사이트를 통해 판매하는 형태였다면, 이후에는 위시와 같은 전문 마켓플레이스의 등장, 아마존의 FBA(Fulfillment by Amazon) 도입 이후 중국 셀러들의 약진, 그리고 이제는 알리바바의 자회사 알리익스프레스와 핀둬둬의 자회사 테무처럼 중국 거대 이커머스 기업이 미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1) 아마존의 대항마 위시의 성공과 몰락
긴 배송 기간과 품질 불량에 따른 이슈를 감내하고라도 초저가에 초점을 맞춘 박리다매 판매의 성공가능성을 보여주며 한 때 아마존의 대항마로 불렸던 '위시(Wish)'는 미국의 저가 상품 구매 수요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일치감치 시장에 뛰어든 사업자 중 한 곳입니다.
- 2011년 설립된 위시는 세상에서 가장 싼 쇼핑몰을 표방하며 중국 셀러와 미국 및 유럽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마켓플레이스로 성장하였으며...
- ...아마존의 대척점에 선 크로스보더 플랫폼으로 각광받으며 DST글로벌, 제너럴애틀랜틱, GGV캐피탈 등 유수의 투자사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바 있습니다.
팬데믹에 힘입어 2020년 말 약 15조 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나스닥 입성한 위시는 투자자들에게는 큰 수익을 돌려주었지만 호실절은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데일리] 세상에서 가장 싼 쇼핑몰 ‘위시(Wish)’를 주목하는 이유
페이스북 타겟 광고를 통해 저가상품을 선호하는 고객을 맞춤 공략해왔던 위시는 애플이 2020년 앱 추적 투명성 정책을 도입하며 페이스북에 고객 정보 제공을 중단하자 매출이 급락하며 사업의 존폐위기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한 때 3조 원을 바라보았던 매출은 2022년 7천억 원 수준으로 주저앉았으며, 주가는 2년 전 공모가 24달러에서 현재 0.75달러로 급락한 상황입니다.
위시의 몰락은 전자상거래에서 고객과 셀러 어느 곳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마켓플레이스가 얼마나 외부 요인에 취약한 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테무가 출시 시점부터 앱을 다운로드하여 신규 가입한 고객에게 90%의 할인을 제공하는 이유 또한 미국처럼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자신들의 생태계에 고객을 묶어두는 것이 재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십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아마존을 점령한 중국 셀러들
아마존의 FBA는 네이버의 스마트스토어처럼 셀러들을 위한 상품 정보 등록, 결제, 정산, 검색 노출, 광고, 배송 등 상품 판매를 위한 모든 업무를 대행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스마트스토어가 한 때 부업으로 인기를 얻은 것처럼 미국에서도 FBA를 활용하여 아마존 판매에 나선 자영업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FBA가 등장한 이후 중국 셀러들이 직접 아마존 판매자로 등록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게 됩니다. 현재 아마존 상위 셀러의 40%가 중국 셀러로 집계될 정도로 값싼 중국산 제품들이 아마존을 잠식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박리다매 및 가짜리뷰로 무장한 중국 셀러들에게 미국의 자영업자들은 애초에 경쟁이 안되는 구도였습니다.
팬데믹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이커머스 어그리게이터란 사업이 반짝 주목을 받았습니다.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있는 아마존 플랫폼 내의 셀러들을 인수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모델이었죠.
[매경] 애그리게이터를 아시나요? ‘랜선 소상공인’ e커머스 군단…유니콘 속출
하지만 웃돈을 주고 수백 곳의 아마존 셀러를 인수하고보니 핵심은 결국 중국과의 거래선 유지 및 효율적인 미-중 배송 체계 구축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엔데믹 이후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이 정체되고 중국 셀러들이 알리바바나 핀둬둬와 같은 중국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대부분의 어그리게이터들은 현재 위기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3) 쉬인이 증명한 미국시장 '저가', '박리다매', '직접판매'의 성공방정식
최근 울트라패스트패션을 표방한 쉬인(Shein)의 성공은 중국 셀러들이 더이상 위시나 아마존과 같은 미국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중국 플랫폼 기업과 함께 현지 직접 판매에 적극 나서게 된 계기가 됩니다.
10 - 20대가 한 번 입고 버리는 옷으로 유명해진 쉬인은 낮은 품질, 표절 이슈, 환경 오염 논란에도 불구, 박리다매와 대규모 소셜 미디어 광고가 미국 시장에서 통한다는 점을 각인시키며 오히려 테무와 같은 후발 주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아무리 쉬인을 '부적격 판매자' 및 '저작권 침해 기업'으로 낙인찍어도 수입을 전격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쉬인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가격 측면에서 기존 '자라'나 'H&M'과 같은 업체는 경쟁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쉬인의 성공방정식을 일반 공산품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테무는 앞선 개척자들이 만들어놓은 플레이북에 따라 착실히 시장 진입 전략을 실행 중에 있는 것입니다.
테무가 가진 비장의 카드
테무의 모회사 핀둬둬는 2022년 매출 20조 원을 바라보고 있으며, 나스닥 시가총액 또한 쿠팡의 4배가 넘는 140조 원에 이릅니다. 게다가 2021년에는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 올해는 영업이익률 27%를 예상하고 있는 탄탄한 실적을 보유한 기업입니다.
핀둬둬의 2022년 3분기 말 기준 현금보유량은 20조 원에 육박합니다. 때문에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단기간 1 - 2조 원 규모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는 것은 충분히 해볼만한 투자입니다. 실제로 테무는 메타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1월 한 달 간 약 8,900개의 서로 다른 광고를 실행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사업 초기부터 수백 개의 기업들과 경쟁해야하는 중국 특유의 환경에서 기인한 측면도 큽니다. 중국 시장에서는 신규사업자가 단기간에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대규모 마케팅 비용 집행이 필수입니다. 핀둬둬는 물론 메이투안, 두인 (틱톡의 중국 버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조단위 마케팅을 태워 초기부터 수천만 명의 고객들을 모을 수 있었죠.
틱톡이 바이럴을 통해 인기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틱톡은 2018년 미국 진출 첫 해 1조 원이 넘는 마케팅 비용을 소셜플랫폼을 통해 집행하였습니다. 틱톡, 쉬인의 미국시장 공략은 모두 과감한 마케팅 투자의 산물인 것이죠.
그리고 핀둬둬는 이미 중국에서 설립 5년 만에 매출 5조 원이라는 유례없는 고성장을 경험했던 기업입니다. 대규모 마케팅 비용 집행을 통한 단기간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 미국에서조차 생소한 방식이지만, 이미 틱톡과 쉬인이 동일한 전략으로 미국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테무 또한 이미 검증된 플레이북을 착실히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테무가 채택한 '디스커버리 쇼핑' 또한 주목해야 할 기능입니다. 1센트 미끼 상품을 통해 앱 다운로드 및 가입을 유도한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 형태의 추천 상품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쇼핑을 일종의 놀이로 유도하는 방식은 '쉬인'이 끊임없이 고객들로부터 매출을 일으키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온라인 쇼핑이라는 과정이 더이상 '고민'과 '조사'의 과정이 아닌,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는 것처럼 놀이의 행위로 치환되는 것이죠. 물론 아마존 대비 십분의 일에 불과한 가격은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테무 만의 경쟁력입니다.
테무를 경험한 투자자들은 하나같이 '테무 = 위시 + 쉬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테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닌, 이미 미국시장에서 검증된 사업 모델을 현명하게 조합한 후 핀둬둬만의 가격경쟁력을 더한 서비스인 것입니다. 과연 테무가 '위시'를 괴롭혔던 품질 이슈와 가짜 리뷰 문제를 극복하고 '이커머스의 쉬인'이 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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