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첫 테크 IPO 기업 아스테라랩스
여기 한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 설립 5년 만에 유니콘 등극
- 설립 7년 만에 상장 성공 및 기업가치 13조 원 돌파
- 시리즈 A 투자자 370배 수익률 기록
어떤 기업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유명한 창업자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투자자도 없습니다. 상장 전까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도 거의 들어본 적 없는 기업이었습니다. 심지어 변변한 유튜브 인터뷰 하나 찾기 힘듭니다. 창업자들은 지난 7년간 묵묵히 세상에 필요한 제품을 만들었고, 이들의 비전과 실행력에 공감한 투자자들은 조용히 이들의 성장을 뒷받침하였습니다. 바로 지난 3월 20일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팹리스 스타트업 아스테라랩스 (Astera Labs)의 이야기입니다.
아스테라랩스의 스토리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들의 성과가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의 정수를 보여주고 점입니다. 우선 미래 컴퓨팅 세상에서 대두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의 비전에 공감한 반도체 분야의 성공한 사업가들이 설립 단계부터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회사의 성과가 가시화되자 최고의 투자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라운드를 선점하였습니다. 사업 모델이 검증되고 대형 고객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자 기존 투자자들은 회사의 주식을 한 주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이들의 공격적인 낙관주의는 결국 아스테라의 성공적인 IPO와 함께 빛을 발하게 됩니다.
최고의 전문가들, 구루를 설득하다
아스테라랩스의 CEO 이자 공동창업자인 지텐드라 모한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한 후 1996년 내셔널 세미컨덕터 (National Semiconductor Corporation, 2011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인수)에서 커리어를 시작, 총 21년간 한 회사에서 데이터센터 인터커넥트라는 분야를 파고든 업계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창업 경험은 없었지만 그가 회사의 동료였던 산제이 고젠드라 그리고 케이시 모리슨과 함께 창업을 결심했을때 가졌던 비전은 분명했습니다. 앞으로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이에 걸맞은 인터커넥트 기술이 필요할 것이라는 선견지명이었습니다.
세 명의 공동창업자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반도체 창업가 아비그도르 윌렌즈(Avigdor Willenz)를 찾아가게 됩니다. 아비그도르는 자신이 창업한 Galileo를 2000년 $2.7 billion에 미국 반도체 기업 Marvell에 매각하고 2019년에는 또다른 창업 기업 Habana Labs를 인텔에 $2 billion에 매각한 전설적인 반도체 구루입니다.
아비그도르는 이들의 설명을 듣고 단 5분 만에 기업가치를 포함한 투자 조건을 확정합니다. 이미 딥러닝 분야의 AI 가속기 기업인 Hanaba Labs를 운영하던 입장에서 이들이 풀려고 하는 문제는 너무나도 명확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아스트라랩스는 아비그도르를 포함한 반도체 분야 구루들로부터 총 80억 원($6.4 million)의 자금을 모집, 시드 라운드 없이 설립 6개월 만에 시리즈 A 라운드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돌입하게 됩니다.
서터힐벤처스, 아스테라의 가능성에 베팅하다
2020년 4월, 아스테라랩스는 서터힐벤처스 (Sutter Hill Ventures)의 리드로 $25 million 규모 시리즈 B 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됩니다. TSMC를 파운드리 파트너로 확보, 첫 제품 출시에 맞춰 진행된 본 라운드에서 서터힐벤처스는 아직 매출이 없던 아스테라의 기업가치를 천억 원으로 책정, 신규 투자자인 인텔 캐피탈 및 기존 투자자였던 아비그도르와 함께 전체 라운드를 책임지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아스테라의 시리즈 B 라운드는 난이도가 높은 투자였습니다. 아직 매출이 없는 단계에서 창업팀의 전문성과 기술적 역량만 가지고 높은 기업가치를 감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스노우플레이크, 퓨어스토리지, 클루미오의 투자를 통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기술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보유한 서터힐은 아스테라의 잠재력에 대한 강한 확신을 바탕으로 라운드를 리드하는데 성공합니다.
로켓을 찾았다면 지분율을 극대화하라
2021년 9월, 피델리티가 주도한 아스테라의 시리즈 C 라운드에서 회사는 단숨에 유니콘 기업에 등극하게 됩니다. 2021년 회사는 $34 million의 매출을 기록하였으니 투자 연도 예상 매출을 기준으로 30배가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시리즈 B 라운드를 리드했던 서터힐벤처스의 입장에서는 기업가치가 1년 만에 9배 가까이 급등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서터힐은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전체 Pro-rata 권리를 행사함과 동시에 초기 투자자들의 구주 인수에도 나서며 오히려 지분율을 높이는 전략을 추구합니다.
2022년 IPO를 고민하던 아스테라는 고성장 기술주에 대한 얼어붙은 투심을 고려, 결국 상장 대신 시리즈 D 라운드를 진행하기로 결정합니다. 특이한 점은 시리즈 D 라운드 또한 기존 투자자인 피델리티와 서터힐벤처스가 라운드의 대부분을 가져갔다는 점입니다.
총 $170 million 규모의 시리즈 D 라운드에서 피델리티는 $110 million, 서터힐은 $36 million을 담당하였을 뿐 아니라 두 기관은 공동창업자를 포함한 임직원 및 초기 투자자의 구주 인수에도 각각 $41 million과 $3.6 million을 투입, 기업 가치가 직전 라운드 대비 3배 가까이 높아졌음에도 지분 확보에 적극 나서며 오히려 투자금을 늘린 것입니다. 그 결과 서터힐과 피델리티는 상장 전 기준 지분 13.7%와 7%를 보유한 1, 2대 주주 위치를 유지하며 조 단위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팔로우온 투자가 중요한 이유
페이스북의 최초 투자자인 피터틸은 자신에게 최고의 투자 의사 결정은 페이스북에 대한 시드 투자를 결정한 것이지만 가장 후회되는 의사 결정은 페이스북의 시리즈 A에 좀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당시 페이스북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음에도 충분히 팔로우온 투자를 하지 못한 점에 대한 뼈아픈 반성인 것입니다.
아스테라랩스가 상장 이전까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반도체 분야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회사의 성장 과정을 통틀어 서터힐과 피델리티 두 투자 기관이 대부분의 투자 기회를 독식하였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외부 펀드레이징을 진행할 필요가 없었던 측면도 존재합니다.
세콰이어캐피탈이 와츠앱의 모든 투자 라운드를 독식하며 다른 외부 투자자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은 것처럼 최고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기회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명제는 아스테라랩스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투자의 트렌드는 바뀔지언정 성공적인 벤처 투자의 공식인 Invest Early, Take Risk and Place Bet on High Conviction (조기에 발굴하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강한 확신에 베팅하라)은 여전히 유효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