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chmark에서 Thrive로 돌아가는 마일스
지난 3월 초 실리콘밸리 대표 벤처캐피탈인 벤치마크캐피탈 (Benchmark Capital)의 파트너 마일스 그림쇼 (Miles Grimshaw)의 이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본인이 2021년 벤치마크에 합류하기 전 8년간 근무했던 쓰라이브 캐피탈 (Thrive Capital)에 재합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Miles Grimshaw leaves Benchmark to rejoin Kushner’s Thrive Capital
마일스의 이직 소식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벤치마크 캐피탈이 실리콘밸리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가 워낙 독보적이기 때문입니다. 1995년 설립된 벤치마크 캐피탈은 이베이를 비롯, 우버, 트위터, 스냅과 같은 실리콘밸리 유명 기업의 시리즈 A를 리드한 곳으로 명성을 얻은 곳입니다.
게다가 벤치마크 캐피탈은 독특한 운영 방식으로도 유명합니다. 6인의 파트너 체제로 운영되며 직원도 없고 CEO도 없는 구조, 펀드 규모와 조직을 늘리지 않고 오직 초기 기업 투자에만 집중하는 '원칙주의자', 스타플레이어를 배격하고 모든 파트너들이 함께 의사결정을 하며 성과보수도 동일하게 나누는 벤치마크는 '6인의 현자' 이미지를 가진 '벤처캐피탈들의 벤처캐피탈'로 통합니다. 커리어의 종착역으로 여겨지던 이 벤치마크에서 파트너가 경쟁사로 이직하는 사례는 설립 29년 만의 최초 사건(?)으로 회자됩니다.
파트너를 잃은 Benchmark
벤치마크 캐피탈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은 바로 빌 걸리(Bill Gurley)입니다. 세콰이어캐피탈, 안데르센호로위츠와 같은 쟁쟁한 벤처캐피탈들을 제치고 우버를 초기에 발굴했을 뿐 아니라 이후 이사회에서 우버의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 해임을 주도하고 현재의 CEO인 다라 코스로샤이를 데려와 성공적인 IPO를 이끈 인물도 바로 빌 걸리입니다. 영화 '슈퍼펌프드'에서 카일 샌들러가 빌 걸리를 연기하며 헐리우드 영화에서 유일하게 주연 역할로 등장한 벤처캐피탈리스트로도 알려지게 됩니다.
벤치마크는 유명 벤처캐피탈 회사에서 성과가 뛰어난 인재들을 데려와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현재의 파트너십을 보면...
- 피터 펜튼 (Peter Fenton): 액셀(Accel) 파트너 출신
- 사라 타벌 (Sarah Tavel): 그레이록 (Greylock) 파트너 출신
- 채탄 푸타군타 (Chetan Puttagunta): NEA 파트너 출신
- 마일스 그림쇼 (Miles Grimshaw): 쓰라이브 (Thrive) 파트너 출신
...처럼 유명 벤처캐피탈 출신들이 많습니다. 업계 최고의 인재들도 벤치마크 캐피탈의 영입 제안에는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6인의 파트너십에 합류할 수 있다는 상징성, 그리고 5천억 원 규모로 2011년 조성된 7호 펀드가 9개의 유니콘 기업을 편입하며 한때 20조 원까지 펀드 가치를 기록했던 독보적인 성과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일스는 2021년 벤치마크에 합류한 인물입니다. 21살 예일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조쉬 쿠시너가 이끄는 쓰라이브 캐피탈에 합류, 8년간 초기 투자를 이끌어오며 벤클링, 에어테이블, 래티스와 같은 기업을 발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벤치마크에서는 랑체인(LangChain), 글라이드(Glide)의 초기 투자를 주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일스는 3년 만에 다시 자신의 친정인 쓰라이브로 복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쓰라이브는 2022년 4조 원 규모로 조성한 8호 펀드를 조기에 소진하고 조만간 9호 펀드 조성에 나설 것이란 뉴스가 들리고 있습니다. 오픈AI의 최근 라운드를 주도하며 공격적인 투자 행보에 나선 쓰라이브가 마일스를 데려오기 위해 거절하기 힘든 패키지를 제시했을 것이란 이야기들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피터틸을 떠난 절친, 키스 라보위
지난 1월에는 파운더스펀드에서 대표 파트너 중 한 명으로 있던 키스 라보위(Keith Rabois)가 2019년 파운더스펀드 합류 이전 6년간 근무했던 코슬라벤처스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피터틸의 스탠포드 로스쿨 친구로 페이팔에서 사업개발을 총괄한 대표적인 '페이팔 마피아'인 키스는 파운더스펀드에서 피터틸, 브라이언 싱어맨과 함께 모든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3인 파트너 중 한 명이었지만 4년 만에 코슬라벤처스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키스는 파트너들의 개인 플레이가 핵심인 파운더스펀드보다 모든 파트너들이 매주 모여 치열하게 토론하는 문화를 가진 코슬라가 자신에게 더 적합한 환경이라고 이직의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키스의 이직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파운더스펀드의 독보적인 성과를 상징하는 사례인 팰런티어, 스페이스X, 안두릴, 크립토 등과 큰 접점이 없었던 키스가 결국 회사의 헤게모니 경쟁에서 밀렸다는 평가도 들리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초에는 2년 전 파운더스펀드에 영입되었던 샘 블론드(Sam Blond)의 퇴사 소식이 이어지며 파운더스펀드 내부적으로도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들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도 이직은 늘 있는 일이지만 파운더스펀드와 같은 탑티어 펀드에서 파트너급 인력들의 이탈이 이어진다는 점은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VC의 이직, 헤게모니의 이동일까
마일스 그림쇼와 키스 라보위를 친정으로 복귀하게 만든 쓰라이브 캐피탈과 코슬라 벤처스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두 곳은 오픈AI에 대한 과감한 베팅으로 주목받는 곳입니다. 코슬라벤처스는 2019년 오픈AI 영리자회사의 첫 외부 자금 유치를 주도한 곳이며 쓰라이브 캐피탈은 지난 두 번의 구주 매각 라운드를 주도하며 오픈AI 지분 확보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곳입니다.
최근 대규모 펀딩을 마쳤거나 준비 중인 점도 공통점입니다. 코슬라벤처스는 얼마 전 총 4조 원에 이르는 초기 투자 펀드 및 그로쓰 펀드 조성에 성공하였으며 쓰라이브는 조만간 5조 원 이상의 자금 조성에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펀드 규모에 걸맞은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회사를 떠났던 인재들도 적극적으로 데려오려고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현재 AI라는 큰 파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벤처캐피탈들의 전략이 엇갈립니다. 벤치마크는 여전히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AI 모델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파운더스펀드는 시장 침체를 이유로 초기 투자 펀드의 규모를 반으로 줄이며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코슬라와 쓰라이브는 오픈AI 투자를 계기로 공격적으로 AI 관련 투자를 이어가는 대표적인 기관입니다.
회사 전략의 유효성이야 시간이 지나면 증명이 되겠지만 시장 팽창기에 투자 실적을 쌓고자 하는 파트너들의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부담하고 회사의 성장 단계에 걸쳐 꾸준히 투자금을 키워갈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진 곳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 훨씬 매력적인 커리어 선택입니다. 이례적인 벤처캐피탈 파트너급 인력들의 연쇄 이동이 과연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의 헤게모니 변화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