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첫 세대가 모두 죽고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다음 여호수아 세대는 요단 강을 건너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땅의 소산물을 먹자 만나가 그쳤고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정복전쟁 직전에 만나가 그쳐야 했을까요?
여호수아 세대는 광야에서 태어나서 그때까지 별도의 노력 없이 생존을 위해 항상 주어지는 만나를 관성적으로 먹어왔을 테고, 만나가 그치고 나서는 원주민과 전쟁하랴 땅의 소출을 채집하랴 여로모로 어려웠을 텐데 말이죠.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땅을 이미 주셨다고 ‘완료형‘으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받은 이후에도 여호수아 군대는 땅을 차지 하기까지 요단 강을 건너고, 할례를 행하고,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다시 점령하는 등의 여러 지난한 과정들을 거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온 주님의 언약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태를 약속하셨을 때도, 요셉에게 꿈을 통해 소명을 주셨을때도, 다윗에게 왕의 기름을 부으셨을때도. 그 언약이 주어진 시점부터 완성 되기까지는 많은 싸움과 연단의 과정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입장에서의 불일치는 (알파이자 오메가이신 주님께는 시간과 사건이 중첩된 하나의 점으로 존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주님이 더 관심 있으신 것은 언약보다 오히려 그 언약을 성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40년 동안 계속 내린 만나가 또 한 번 당연히 내리는 날의 고백과 만나가 그치고 치루는 정복전쟁의 지난한 과정 속에서 얻어진 소출을 먹는 백성들의 고백은 어떻게 다를까요.
시편 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고백은 결코 가벼운 고백이 아닙니다. 오히려, 광야에서, 전쟁에서, 치열한 생존과 사투 속에서 발견한 주님의 공급에 대한 내용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값 없이 주셨지만, 아무때나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이레(Jireh)의 언약은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우리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주님 앞에 우리의 믿음을 증명할 때 들어가게 되는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받게 되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이 아무리 지난했을지라도, 그 끝에 우리는 ‘주님이 다 이루셨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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