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파도를 경험해 본 적이 있으세요?
깊은 바다에 나가 큰 파도를 만날 때는 정말 두렵습니다.
우리를 삼킬 듯이 치는 성난 파도에 가려져 저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섬들도,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던 별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사방에서 우리를 잡아삼킬 듯이 치는 성난 파도들만 보일 뿐입니다.
인생은 파도의 연속입니다.
바다에 나가 막상 큰 파도 앞에 서 보면,
항구 안에서 잠시 누렸던 평정과 평화가 얼마나 얕았던 것인지 바로 알게 됩니다.
하지만,
항구 안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우리의 길이 아니므로.
우리는 출항해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성난 파도 앞에서도 침몰하지 않고 방향을 잡고 항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지난한 항해의 과정 가운데에서,
목적지까지 우리를 인도해 줄 유일한 나침반은 바로 우리의 양심입니다.
다윗 왕은 요압을 시켜 인구를 계수케 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은 진노하셨고, 사흘 간의 역병으로 칠만 명이 죽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왕이 자기 나라 백성의 인구를 계수한 것이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이러한 일이 수 없이 많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내 이성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인데,
주님은 그것이 의롭지 않다고 말씀 하십니다.
자!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이 상황에서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그 이후에 많은 차이를 낳습니다.
인구조사 후에 그의 마음이 그를 찔렀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양심의 작용입니다.
양심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소리가 우리에게 닿느냐 닿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이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다윗 왕은 절대 돌이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앙 후에,
주님을 원망하며 '왜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십니까'라고 부르짖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 안의 소리에 주목하고 주님께 돌이켰고
큰 대가를 치뤘지만
다윗 왕을 통한 주님의 언약은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와 양심을 주셨습니다.
자유의지가 바람을 타고 나아가게 하는 "돛"이라면, 양심은 그 방향을 결정하는 "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돛과 키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어야, 우리는 항구를 떠나 비로소 항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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