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은 우리 세대가 실제 경험한 사실이잖아. 이미 결과는 드러났고 재판까지 받아 매듭지어진 사건이지만,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는 “진짜 원인이 무엇이냐?”는 여전히 아리송해.
영화에서처럼 무능한 국방부 장관과 허수아비 대통령을 앞에 두고 사심 가득한 장교가 권력을 잡기 위해 수도경비사령관과 맞짱 뜬 거. 한쪽은 정의이고 다른 쪽은 불의이고, 한쪽은 애국심이고 다른 쪽은 사심이고. 또 다른 방관자는 무능이고. 그래야 재미가 있잖아. 명쾌한 이분법. 선악 구도. 들러리. 그런데 당시 상황이 꼭 이렇게 명쾌했을까.
사람들이 왜 이 영화를 좋아하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이미 세대도 많이 변했고, 무엇보다 절대 가난이었던 1인당 GDP 1,733달러 시대, 고등교육이 막 시작되던 대학 진학률 24% 시대, 국가 성장기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국가 폭력 시대, 헌법의 권력 승계가 아닌 힘이 우선하던 시대, 우리가 그토록 지우고 싶어 하는 '흑역사'잖아. 역사의 여백(餘白).
역사는 정반합(正反合) 변증법으로 성장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아.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거든. 5공 시절 대학 정원을 확 늘려 젊은이에게 민주화를 눈뜨게 만들고, 경제를 급속도로 성장시켜 넥타이 부대가 길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이 필연적으로 겪는 군사 독재를 스스로 종식시키고, 무엇보다도 우리 현대사의 변곡점인 88올림픽을 유치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야?
영화 <서울의 봄>, 그 당시를 실제 체험한 사람이 쓴 뼈아픈 리뷰.
https://www.bosik.kr/news/articleView.html?idxno=12461
<편집자 단상> 배우 정우성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요. 지금까지 기억나는 문답은 이런 것입니다.
- 당신은 카메라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나요?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젊은 배우는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어 민주적인 아이콘 배역을 맡았습니다. 세간에는 정우성이 1000만 배우가 될 것인가,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과연, 1987년에 10대 학생이었던 정우성은 그때 어디에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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