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16. 아이들의 세상

아이들의 세상

어릴 때는 5월이 생일이 있는 달 다음으로 가장 신나고 즐거운 달이었던 것 같아요. 특별한 것 없이도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어린이날이 있었으니까요.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한 날로 여러 나라에서 기념하고 있는데요. 어린이날이 있는 국가도 있고 없는 국가도 있지만 광범위하게는 UN에서 1954년부터 매년 11월 20일을 ‘국제 어린이날(International Children’s Day)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아동복지법 제6조⟫에 따라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하고 법정 공휴일로 하고 있어요.

어린이날이 제정된 이유가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이기 위함임을 생각하면 어릴 때도 어른이 된 지금도 온전한 의미대로 어린이날을 보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선물 받는 날, 어른이 된 후에는 법적으로 쉬어도 되는 날로 받아들이고 살아왔으니까요. 어린이날이 ‘아이들이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걸 생각하면 세상만사에 무감각하고 심드렁한 어른이 되어버린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소개드릴 두 편의 영화는 사회 제도 사각지대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인 시선으로 그러나 따뜻하게 담아낸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아이들만의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 학교 운동장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독특한 연출방식으로 그려낸 <플레이그라운드>입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션 베이커, 2017년 개봉

미국 올랜도 디즈니 월드 근처 ‘매직 랜드’라는 모텔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6살 무니. 디즈니 월드의 화려함과 달리 이곳에는 놀이터라고는 없습니다. 하지만 옆 모델 ‘퓨처 랜드’에 무니 또래의 소녀 젠시가 이사를 오고, 무니와 젠시는 금새 친구가 되어 사방을 자신들만의 놀이터로 만듭니다. 문제 많은 엄마와 모텔에 살면서 환상의 세계를 찾아낸 무니는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신나는 하루를 보내러 나서는데요. 무니와 친구들이 발견한 환상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데 탁월한 숀 베이커 감독의 작품으로 월트 디즈니 월드가 위치한 휴양지 올랜도 외곽을 배경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미국 빈민층의 현실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담아내 평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는 이 영화로 역대 최연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아역상을 받았는데요. 당시 함께 후보에 올랐던 후보자들에게 끝나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한 수상소감 커뮤니티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엄마 핼리 역을 맡은 브리아 비나이테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일반인으로 신선한 얼굴을 찾고 있던 감독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영화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처음 월트 디즈니 월드 건설에 착수할 때 불린 프로젝트 이름과 홈리스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명과 동일한 제목으로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0년대 중반 디즈니가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해 진행한 올랜도 일대의 부동산 매입 계획으로 디즈니 월드를 찾는 가족 관광객을 겨냥해 화려한 외양의 모텔이 주변에 우후죽순 지어졌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소득층 홈리스들이 매주 방세를 내며 장기 투숙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용어로 극 중 주인공 모녀가 거주 중인 모텔 역시 실제로 저소득층 홈리스들이 매주 방세를 내며 장기 투숙하는 곳입니다. 해당 지역 모텔에는 정부에서 확인하지 못한 히든 홈리스들이 넘쳐난다고 하는데요.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한주 단위로 방세를 지불하며 모텔 방을 전전하며 시스템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 나가는 거죠.

션 베이커 감독은 화려한 휴양지 이면의 감춰진 어둠에 초점을 맞춰 3년간의 지역 조사를 통해 영화를 완성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곳 역시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곳’이란 결론을 얻고 아이러니한 올랜도 지역의 모습을 아이들의 시점에서 그림으로서 디즈니랜드의 환상적인 외관 뒤에 가려진 그늘과 아이러니를 증폭시켰습니다.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도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중국인 이민자, 포르노 배우, 트렌스젠더)를 그려왔는데요. 사회 중심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과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들을 소모 거리로 만들지 않고, 철저한 사전 조사를 기반으로 한 현실성과 현장감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감독은 별도의 세트를 짓지 않고 배경이 되는 공간에 인물을 데려다 놓고 상황을 찍고,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캐스팅한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을 보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는데요. 보기 전 찾아본 포스터와 시놉시스를 읽고 어린이들의 모험담을 그린 귀엽고 행복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범상치 않았던 오프닝부터 극이 진행될수록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예상과 달라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영화 마케팅이 행복한 영화처럼 포장된 것 같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합니다. 수입사 인터뷰에 따르면, 감독과 제작진들이 "영화가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히든 홈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년 시절과 모녀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아이들의 모험과 일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고, "허름한 모텔에서 산다고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도리어 못된 시선이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나온 마케팅 방식”이라고 합니다.

평단의 극찬을 받은 만큼 기억에 남는 한 줄 평도 많았는데요. 그중 가장 공감이 갔던 건 “타인의 곤경을 동정하거나 착취하지 않는 휴머니즘의 예"라는 김혜리 평론가님의 평이었습니다. 실제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주인공 모녀가 겪는 빈곤을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척 구경거리로 삼지 않습니다. 보통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해답을 제시하는 형식을 띠지만 어떤 영화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관객들로 하여금 계속 생각해 보게 하는데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바로 그런 영화였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즉각적으로 반응해 분노하고 슬퍼하다 영화관을 나서면 금새 휘발 되어버리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복잡한 문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 보도록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전자는 공감이 아닌 연민의 감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연민은 즉각적이고 휘발하는 반응이기 때문에 우리는 연민보다는 공감을 기르며 살아야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연민에는 상대를 생각한다는 마음 아래 그래도 나의 상황이 상대보다는 낫다는 안도가 숨겨져 있어 때로는 연민의 대상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렵긴 하지만 공감의 탈을 쓴 연민만으로 공통점에만 공감하며 살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영화는 빈곤층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보통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무슨 돈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빈곤한 처지만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는 아이들이 먹고 싶은 간식 살 돈을 어떻게 구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재미와 놀이를 찾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더 사실적으로 아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극이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도 사회 문제를 더 냉철하게 바라보고 섣부른 판단을 지양하게 됩니다. 션 베이커 감독은 영화를 무니의 눈높이에서 어린아이들의 여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상하게 된 이유로 “싸구려 모텔에서 사는 아이들이 있는데 하필 그 모델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알려진 디즈니월드 근처에 있다는 점과 이러한 아이러니와 슬픔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히든 홈리스 문제를 디즈니월드 주변부에 사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찍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미국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더 뚜렷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히든 홈리스 문제뿐만 아니라 아동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극 중 핼리는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보기 힘들지만, 딸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러나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사실상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물리적인 폭력만큼 무서운 것이 방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보호자로서 아이를 사랑하지만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딜레마를 핼리를 통해 보여주는 거죠. 미국의 복지 정책은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없는 부모로부터 아이를 떼어놓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데 과연 이것이 올바른 방식인가, 아니면 그래도 가족의 틀 안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해당 질문에 대한 관객들의 답은 매직 캐슬의 관리자로 나오는 바비의 모습이 대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바비는 관리자로서 엄격한 부분이 있지만 정도 많고 성실하며 책임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결정적 순간에는 결국 방관자가 됩니다. 사실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일들은 단순한 개인의 선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고, 영화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비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무니와 스쿠티 그리고 젠시가 함께 하던 모든 순간이었습니다. 잔돈을 모아 구매한 아이스크림을 한 입씩 나눠먹고, 무지개 너머에서 황금 동산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어떤 곳에서도 반드시 즐거움을 찾아내는 신기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더라고요.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을 보면서 때로는 어른들의 세계보다 아이들의 세계가 훨씬 넓고 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굳이 고르자면, 매니저 바비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모텔 로비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장면입니다. 딱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얄밉지만 밉지는 않은(?) 귀여운 장면이었어요.

플레이그라운드 (Un monde), 로라 완델, 2021년 개봉

막 학교에 입학한 7살 노라는 낯선 학교가 무섭기만 합니다. 노라의 오빠 아벨은 동생을 위로하지만, 사실 아벨도 학교가 두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점차 친구도 사귀며 학교에 적응해 가는 노라는 우연히 아벨이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노라는 어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아벨은 노라가 그저 침묵하길 바라는데요. 두 남매가 맞닥뜨린 아이들의 세상 ‘플레이그라운드’는 어떤 모습일까요?

<플레이그라운드>는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공개된 후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으며 전 세계 영화제에서 30개 이상의 트로피를 휩쓸고, 제94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벨기에 출품작으로 주목받았습니다. 72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 동안 극을 이끌어가는 노라를 연기한 배우 ‘마야 반데베크’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한데요. 마야는 캐스팅 세션을 통해 선발되었고, 캐스팅에 합격한 후 “자신의 모든 노력을 영화에 쏟아붓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고 해요. 테스트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운동장을 떠올려 보고 무슨 게임을 했는지 질문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제스처와 말투를 카메라로 잡아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화는 모든 것이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지고 있는데요. 노라가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관객들이 최대한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각자의 경험을 투영하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해요. 영화를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촬영 방식을 통해 찍겠다는 직관이 있었고, 이는 관객들의 몰입감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모든 것은 노라가 원하는 대로 인식되는데요. 노라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작은 정보만 인식하고, 그래서 공간의 일부분만을 보게 되며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그려집니다. 저는 ⟪Cinef⟫ 채널을 통해 처음 보게 되었는데 영화가 중반부까지 진행된 후부터 감상하기 시작했음에도 금세 영화에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영화는 아이들이 가장 처음 경험하게 되는 작은 사회인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남기게 되는 필연적인 상처와 아픔을 날카롭게 그려냈습니다. 노라의 시선으로 그려진 학교는 무감각한 어른들과 무법적인 또래 아이들로 이루어진 잔혹한 공간입니다. 이러한 속성은 샐로 포커스(shallow focus, 이미지의 한층 만을 강조하는 촬영 기법)와 오프 스크린 사운드(Off Screen Sound, 일체의 가공된 음악 없이 화면 밖의 상황 전개를 알리는 효과음) 등을 활용하여 표현되는데요. 실제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의 시점은 노라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영화의 무대도 초등학교 안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등하교 장면을 주기적으로 보여주고, 교실과 식당, 체육관과 수영장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플레이그라운드>는 보고 있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아픈 영화였는데요. 다 보고 난 후에는 노라를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영화는 나락으로 추락하며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마지막 희망을 끈을 놓지 않으며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벨기에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다르덴 형제의 연출방식과도 닮았는데요. 실제로 감독인 노라 완델은 인터뷰를 통해 다르덴 형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다르덴 형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관심과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바탕으로 리얼리즘에 기반해 사회적인 테마를 다룬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주로 사회에서 소외된 불안정한 형태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데요. 다큐멘터리 작업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다큐적 화법이 많이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피해 학생뿐만 아니라 그 형제•자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이런 연쇄적인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아동 정신의학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같은 공간 안에서 형제나 자매가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고통받는 것과 같다고 느끼게 되고, 이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적응하기도 더 힘들어진다는 거죠. 그리고 이런 감정적 동화 작용이 더 나아가면 자신의 감정이나 현실을 부인하게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때때로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마침내 깨부수고 결속력이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벨과 노라처럼요.

<플레이그라운드>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이 마음속에 돌덩이가 하나씩 쌓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성인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것을 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 대상이 아이라면 마음이 더 힘들 수밖에 없는데요. 영화의 엔딩 신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사실은 정글과 다름없는 우리의 삶에서 마지막까지 놓지 말아야 할 가치가 용기와 다정함이라는 걸 노라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되풀이되는 폭력의 고리를 끊어낸 주체가 어른이 아닌 아이라는 점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Epilogue

두 편의 영화 모두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어린이날 추천작으로 선택하기를 망설였어요. 하지만 매년 어린이날마다 영화채널이나 극장에서 밝고 신나는 작품들만 보여주기에 다른 궤를 가진 작품을 소개해 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은 스스로 즐거움을 발견해 낼 줄 알고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와 친구들처럼), 두려움과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가는 (<플레이그라운드>의 노라 처럼), 덩치만 자라난 어른들보다 더 성숙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까요.

🎞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우리들>, 윤가은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로 “아주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던 이야기이자 가장 풀리지 않는 삶의 미스터리인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 대해 고민하며 완성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감독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어른으로서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세밀한 시선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지켜나가는 이야기를 완성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는데요.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과 달리 피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선과 지아 모두 왕따를 겪었고, 겪고 있는 아이들로 본인이 당했던 일을 그대로 상대에게 안겨주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영화의 제목인 ‘우리’는 같은 뜻을 품고 있을 때는 함께 나아간다는 의미가 되지만, 우리 안에 어울리지 못하는 타인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배타적인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우리들은 아이들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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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 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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