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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아카이브 9. 상처를 마주할 용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영화 2편!

2023.01.05 | 조회 987
2023년 1월 5일 스티비를 통해 발행되었던 레터입니다.
2023년 1월 5일 스티비를 통해 발행되었던 레터입니다.

🙋🏻‍♀️ 안녕하세요. 마리입니다. 계묘년 새해 첫 레터는 새해 다짐과 연관된 주제로 골라봤는데요. ‘상처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그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입니다.

고백하자면, 발행인은 상처를 (무척, 매우, 심하게) 잘 받는 편에 속합니다. 좋게 표현하면 마음이 여린 것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나약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민한 성격 탓에 상대의 별것 아닌 행동이나 말에 상처받기도 하는데요. 이런 성격을 굳이 장점으로 승화시키면 예민한 만큼 타인의 감정 변화를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에 공감력이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성격을 바꿔보자 다짐했어요. 매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보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 보기로 했거든요. 소개해 드릴 2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은 풍파에 비하면 제가 겪은 지난날의 상처는 사소하게 느껴지지만, 그들이 얼마나 큰일을 겪었는가보다 그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싶었던 영화였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2013년 개봉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출처: 네이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매튜 퀵이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상처받은 두 주인공의 정신적 회복과 성장을 그렸습니다. ‘실버라이닝(Silver Linings)’은 햇빛이 구름 뒤에 있을 때 구름 가장자리에 생기는 은색 선을 뜻하는 말로 희망을 나타내고, ‘플레이북(Playbook)’은 스포츠팀의 공수작전을 그림으로 표현한 책을 뜻하는데요. 제목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은 일종의 희망 가이드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는 제85회 아카데미 여우주/조연, 남우주/조연, 감독, 각색, 편집,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니퍼 로렌스는 불행을 등에 짊어진 미망인을 완벽하게 연기했는데요. 당시 그녀의 나이가 22살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배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전까지 머릿속에 각인된 브래들리 쿠퍼의 이미지는 능글맞은 바람둥이였는데요. 처음 알게 된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는 영화에서 아내를 두고 바람피우는 남편 역할이 뇌리에 박혀 어떤 영화를 봐도 캐릭터와 쉽게 매칭되지 않았는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섹시한 나쁜 남자라는 고착된 이미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브래들리 쿠퍼가 아닌 팻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는데 해외 유수의 언론에서도 “브래들리 쿠퍼의 필모그래피 역사상 최고의 연기”였다는 찬사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각자의 상처로 인해 조울증을 얻게 된 남자와 성적 통제력을 잃어버린 여자의 정신적 회복과 치유, 사랑을 그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미국의 대표 인디 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의 ‘선댄스 키즈’ 출신 감독이기도 합니다. <펄프 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비포 선라이즈>의 리처드 링클레이터, <부기 나이트>의 폴 토머스 앤더슨 등이 해당 영화제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며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감독들이죠.🙂 그러나 다른 선댄스 키즈들과 달리 러셀은 함께 촬영하는 배우나 스텝과의 불협화음이 작품보다 더 주목받으며 내리막길을 걷는 듯했는데요. 2011년 <파이터>로 복귀를 알리더니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야박한 오스카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파이터>는 러셀의 이름을 다시 주목하게 만든 영화였다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감독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주는 영화”라는 평을 받으며 감독 인생 2막을 열었습니다.

 

📼 줄거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출처: 네이버)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폭발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아내와 직장은 물론이고 정신까지 잃은 남자 팻. 8개월의 병원 생활 후 ‘긍정의 힘’을 외치며 아내와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감정 조절은 어렵고 아내에게는 접근금지명령 상태라 잃어버린 인생 되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초대받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알게 된 티파니.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회사 내 모든 직원과 관계를 맺고 해고당한 것도 모자라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팻의 인생에 뛰어듭니다. 팻의 조깅 코스에 불쑥불쑥 나타나고 함께 자자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티파니가 부담스러운 팻에게 그녀는 헤어진 아내와의 재결합을 도와 줄 테니 자신과 함께 댄스 대회에 나가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과연 팻과 티파니는 상처받고 망가진 멘탈을 회복하고 그들만의 ‘실버라이닝’을 찾을 수 있을까요?

 

🔍 마리의 리뷰 

영화를 보고 있으면 미드 <가십걸> 속 “이 구역의 미친X는 나야!”라는 대사가 생각납니다. 영화에 맞춰 라인을 순화시켜 바꾸면 “이 구역의 미친 남자와 미친 여자는 우리야!” 정도로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한마디로 ‘미친 남자와 미친 여자의 치유와 사랑 이야기’ 입니다. 로맨스로 분류되는 영화 속 주인공의 첫 만남이 이보다 더 괴팍했던 영화는 없었던 것 같거든요. (제 기억과 기준에서는 그러합니다.🙄) 첫 만남부터 남편은 어떻게 죽었냐고 물어보는 남자나, 입고 있는 옷은 별로지만 불 끄고 하면 상관없다고 추파를 던지는 여주인공은 보편적인 로맨스 영화 속 첫 만남과는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주변 인물들도 제정신으로 보이진 않아요. 팻의 친구 로니는 가정과 일 때문에 숨 막혀 죽을 지경이고, 로니의 아내이자 티파니의 언니인 베로니카는 이상적인 가정을 만드는 데 집착합니다. 팻의 형은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팻의 아버지는 스포츠 도박에 미쳐 은퇴 연금을 풋볼 내기 겁니다. 게다가 강박 장애에 사로잡혀 응원하는 팀이 이기려면 탁자 위 리모컨의 각도를 맞추고, 같은 손수건을 손에 쥔 채 아들과 함께 경기를 봐야 한다고 굳게 믿어요. 괴짜 같은 아버지 역할을 맡은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도 일품인데요. 브래들리 쿠퍼가 아닌 팻을 상상할 수 없듯, 로버트 드 니로가 아닌 팻의 아버지 역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연기 앙상블을 보여줍니다.

팻과 티파니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보다 보면 누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인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은퇴 후 노년 자금을 마련하려는 아버지, 집과 회사에서 시달리는 가장, 이상적인 가정에 집착하는 아내,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실패 후 상처 입은 사람들까지. 극중 인물들은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요. 좋은 일은 드러내고 힘든 일은 감추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왔기에 팻과 티파니처럼 거침없이 드러내지 않았을 뿐 사실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결핍과 불안을 겪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니까요. 누구의 결핍이 더 크고 작은가 보다 더 중요한 건 결핍과 불안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입니다. 괴팍했던 첫 만남 후 계속해서 얽히게 되는 팻과 티파니는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지만, 자신들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잘못은 빠르게 사과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매력보다 단점과 상처를 먼저 알아본 사이이기에 거침없는 막말도 빛보다 빠른 인정과 사과도 가능한 거겠죠. 그리고 ‘편지’와 ‘댄스 대회’라는 매개를 통해 조금씩 서로에게 의지하며 다친 마음을 서서히 회복합니다.

 

🎞️ 마리’s Clip: "내 안에는 추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도 나고 난 내 자신을 사랑해요"

자신에게 막말을 쏟아낸 팻에게 티피니는 추한 면도 자신의 일부이고 그런 자신까지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팻은 그럴 수 있냐고 되묻죠. 발행인이 지닌 치명적 단점에 일침을 던지는 말 같기도 했어요. 저는 타인의 단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유형이거든요. 상대방이 수백 가지의 장점을 갖고 있어도 한 가지의 단점이 눈에 보이면 장점을 보지 못할 때가 많고 심지어 저의 단점도 조차 보길 싫어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아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단점을 고치지 못하는 것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새해에는 티파니의 일침을 교훈 삼아 제 안의 추한 부분까지도 받아들이고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보려 합니다. 더불어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는 한층 성숙한 어른이 되어 보려고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팻과 티파니의 로맨스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가족 영화의 모습도 띠고 있습니다. 특히 감독이 영화에서 가족을 묘사하는 방식이 돋보이는데요. 팻의 부모님은 이웃 사람들이 아들을 미쳤다고 손가락질하고, 새벽에 책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부모님을 깨워 난리를 치고, 결혼 비디오테이프를 찾겠다고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아들을 감쌉니다.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인 팻의 삶에 한 줄기 빛(실버라이닝)은 티파니와의 관계 이전에 가족들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케네스 로너건 감독, 2016년 개봉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출처: 네이버)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불의의 사고를 겪은 후 홀로 고향을 떠나 자신을 파괴하며 살아가는 리가 어느 날 형의 임종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 맨체스터를 찾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개봉 후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전미 비평가협회상 4관왕, 골든글로브 작품, 감독, 남우조연,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제89회 아카데미 남우 주/조연, 여우조연, 각본, 작품, 감독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주연을 맡았던 케이시 애플렉이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 비하인드 스토리 

<갱스 오브 뉴욕>의 각본을 쓴 케네스 로너건이 연출을 맡았는데요.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연출과 주연을 맡으려 했던 사람은 맷 데이먼이었어요. 영화의 스토리는 맷 데이먼과 배우이자 제작자인 존 크래신스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고, 케네스 로너건은 각본에만 참여할 예정이었다고 해요. 그러나 맷 데이먼이 영화에 연이어 출연해야 해 모든 영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각본과 연출을 케네스 로너건에게 넘겼다고 합니다. 주연을 맡은 케이시 애플렉은 맷 데이먼이 추천했는데요.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고 맷 데이먼의 절친이자 배우인 밴 애플렉의 동생 케이시 애플렉을 떠올리고, 그가 아니면 리 역할은 누구도 소화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해요. 이후 인터뷰에서 제작자로서 가장 잘한 일이 주연과 연출을 교체한 일이라고 언급하며 영화의 완성도에 만족을 표했고요.

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인물로 케이시 애플렉은 마음을 닫고 감정과 표정을 잃은 리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표현해냈습니다. 주인공이 걷는 모습, 말할 때의 음성이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역설적으로 무표정 뒤에 감춰진 분노, 죄책감, 슬픔, 외로움이 뒤엉켜 터지기 일보 직전인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리의 조카 패트릭 역을 맡은 루카스 헤지스 또한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는데요. 성숙한 듯하면서도 때로는 철없는 소년이 되는 패트릭을 완벽하게 표현하며 케이시 애플렉과 좋은 앙상블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영화 제목인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마을 이름인데요. 절망적인 인물의 심리와 대비를 이루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맨체스터의 풍경이 배우들의 연기에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며, 왜 영화 속 배경지로 이곳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줄거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출처: 네이버)

보스턴의 아파트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며 혼자 사는 리는 어느 날 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맨체스터로 향합니다. 그러나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은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목됐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혼란스러운 리는 조카와 함께 보스턴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패트릭은 고향을 떠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전 부인 랜디에게서 연락이 오고, 리는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애써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게 됩니다.

 

🔍 마리의 리뷰 

영화는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감정과 상황을 담담한 어조로 그리고 있습니다. 건물 관리인으로 살아가는 리는 자존심이 강하고 주민들의 갑질에도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인물로 그려져요. 그리고 밤이면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며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줄 사람을 찾습니다. 리가 싸움에 휘말리는 이유는 폭력을 통해 쾌감을 얻기 위함 보다는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어 스스로를 벌주려는 모습처럼 보여요. 영화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보이는 리의 과거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왜 스스로를 고통 속에 내버려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는 좋은 조건의 직장을 구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허드렛일을 전전하고, 괜히 싸움을 걸어 얻어맞는 걸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자신에게 벌을 주는 거죠.

매일 자신을 벌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감정을 묻어둔 체 살아가는 리의 삶이 변하게 되는 건 형의 죽음과 조카의 후견인으로 지목된 이후입니다. 자신이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견디기 건 힘들어 보이는 건 행복했던 기억과 가장 아픈 기억이 공존하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돌아왔다는 사실 같아 보였습니다.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를 지닌 채로 조카의 보호자가 되는 것도 감당하기 힘들지만, 불쑥불쑥 밀려드는 과거의 기억이 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조카는 누구보다 삼촌을 후견인으로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리는 조카에게 용기 내어 자신의 한계를 고백합니다. 두 사람 모두 신뢰하는 친구의 양아들이 되어 지내며 가끔씩 자신이 들여다보겠다고 하죠.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떠나고 싶어 하는 리와 함께 남아주길 바라는 패트릭의 갈등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리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의 근원과 깊이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조카의 보호자가 되길 거부하는지를 보여주며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을 끌어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건 리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관찰자의 시선에서 덤덤하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공감하게 돼요.

영화에서 다뤄지는 상실감은 구체적인 감정과 정서를 관객에게 완벽하게 전달하는 케네스 로너건 감독만의 연출법으로 다뤄지고 있는데요.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특히 인물의 심리를 잘 다루는 감독으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감정을 이미지로서 완벽하게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상처받은 인물을 지켜보면서 인물의 감정과 표정, 상태에 집중하며 공감할 수 있도록 섬세한 표현과 다양한 연출 기법을 활용하는데 그중 돋보이는 것이 플래시백이에요. 맥락 없이 뜬금없는 순간 플래시백을 배치하는데 이건 우리가 기억을 떠올리는 방식과 굉장히 유사하게 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떤 사물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장소에 방문했을 때 그와 연관된 과거의 기억이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경우가 더 많잖아요. 영화에서 플래시백은 이러한 기억을 떠올리는 방식과 유사하게 다뤄진 셈이죠. 그리고 이렇게 뜬금없이 기억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상처가 얼마나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계속 살아갈 것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 마리’s Clip: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I can't beat it)"

많은 사람들이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명대사로 리의 용기 있는 고백을 고르지 않을까요. 영화를 본지 오래되었어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던 대사였는데 다시 봐도 역시 리의 고백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용기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는 조카에게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후견인을 내려놓겠다는 리의 고백을 보며 영화가 끝난 후 두 사람의 삶은 희망적일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리의 고백은 후견인이 되는 큰 책임을 내려놓겠다는 것이지 조카를 영영 보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조카의 후견인 대신 때때로 조카의 옆에서 함께하는 삼촌으로 지내다 보면 리의 트라우마도, 아버지를 여읜 패트릭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게 되지 않을까요?

 

레터를 준비하며 영화를 다시 보기 전 평론과 기사를 먼저 읽어보고 재관람했는데요.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봤을 때도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데 유독 주인공의 감정에 깊이 몰입돼 가슴이 먹먹했던 영화라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감독이 얼마나 섬세한 방식으로 관객의 감정을 끌어냈는지 알 수 있어 좋았어요. 특히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감정을 응시하는 영화이자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평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요. 영화를 볼 계획이 있는 구독자 여러분들께는 관람전 평론을 먼저 읽어보고 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천해 봅니다.

 


 

Epilogue

본문내이 세상에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예민한 성격 때문에 상처받는 것 자체에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상처가 된 기억들은 떼어내 버리고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만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요. 하지만 두 편의 영화를 보며 상처받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마주할 용기라는 걸 배웠어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티파니와 팻처럼 조금 과격하고 요란한 방식이 될 수도,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와 패트릭처럼 덤덤한 방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상처를 오롯이 마주 볼 수 있어야 치유할 수 있고, 그 위에 새살이 돋아날 수 있으니까요.용

 

📺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지선씨네마인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심리 분석 

(출처: 그것이 알고싶다 YouTube)

SBS에서 방영된 ‘국내 최초 무비 프로파일링 토크쇼 지선씨네마인드’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영화 속 팻과 티파니의 행동이나 대사를 분석하며 숨겨진 의미를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추론하는 방식이 신선하고 재밌더라고요. 박지선 교수님의 통찰력과 영화의 명장면인 팻과 티파니의 댄스경연대회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평가한 댄스팀 프라우드먼의 평을 엿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영화와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아 추천해 드립니다.

 

🔗 추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OTT 

  •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티빙, 왓챠, 웨이브, U+모바일 tv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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