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3. 마음을 어루만지는 요리

Issue 3. 마음을 어루만지는 요리 영화 2편

저는 꽤 또렷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편인데요. 영화 감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영화만큼 즐기는 또 다른 취미는 요리입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줄만 알던 요알못이었는데 타지에서 첫 자취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요리에 눈을 뜨게 된 케이스인데요. 초창기에는 레토르트나 to-go 용으로 포장된 음식을 사 와서 먹었는데요. 어느 날 대충 포장을 벗겨내고 책상 구석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제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어요. 다른 문화에 적응하고 학교생활을 따라가느라 자존감이 떨어지고 지쳐있는 상태였는데 아무렇게나 차려진 밥상을 마주하니 스스로에게 함부로 하고 있다는 자책감마저 들었습니다. 그 뒤로 포장 음식을 먹어도 그릇에 덜어 먹고 하루에 한 끼는 꼭 나를 위해 제대로 된 음식을 차려 먹겠다 다짐하면서 차츰 요리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자신을 아껴주고 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요리는 나 자신 그리고 타인의 마음도 어루만져 준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에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순간 저를 위로해 주었던 것이 요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는 건 생각보다 큰 성취감을 안겨주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소개할 두 편의 영화 <줄리 앤 줄리아>와 <카모메 식당>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게 그랬던 것처럼요.😊

<줄리 앤 줄리아 (Julie & Julia)>, 노라 에프런, 2009년 개봉

<줄리 앤 줄리아>는 1960년대까지 레토르트 음식이 주였던 미국 가정식에 프랑스 요리를 소개하며 미국 요리의 대모가 된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 역)와 그녀의 요리책에 소개된 524개의 레시피를 365일 동안 완성하는 ‘줄리 앤 줄리아’ 프로젝트를 통해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줄리 파월(에이미 아담스 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줄리와 줄리아의 요리 성장기(?)를 교차해서 보여줍니다. 외교관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도착한 줄리아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 생활에서 먹을 때 가장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고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 본격적으로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프랑스에서 만난 두 명의 친구와 함께 8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완성한 <프랑스 요리 예술 대가가 되는 법>이라는 요리 책을 펴내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 생소하기만 했던 프랑스 요리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죠. 줄리는 기분 전환을 위해 시작한 요리 블로그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여성입니다. 영화는 간추려서 소개한 내용이 전부일 만큼 특별한 건 없어요. 하지만 줄리아와 줄리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가 자칫 단조로울 수 있었던 영화를 사랑스럽고 따뜻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특히 러닝타임 내내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프랑스 요리는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진답니다.😋

맛있는 음식, 그중에서도 섬세한 프랑스 요리를 사랑하는 줄리아 차일드는 낙천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입니다. 절대로 따라갈 수 없을 거라며 취미반 수업을 권하는 접수처 직원을 설득해서 전문가반 등록에 성공하고, 온통 전문 요리사뿐인 반에서 불굴의 의지로 우등생으로 거듭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 너무 늦은 일이란 없고, 결코 해내지 못 할 일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줄리아는 결혼 전까지 요리의 ‘요’자도 모르던 요알못이었고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르 꼬르동 블루를 수료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삶과 행복을 스스로 찾고 개척하며 미국 요리사에 한 획을 그었으니까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줄리아와 반대로 줄리는 친구들과 비교되는 자신의 처지와 엄마의 걱정에 주눅 든 인물이었어요. 성취감 없이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할까 두렵기만 한 그녀의 삶을 위로하는 유일한 탈출구는 요리였습니다. 특히 줄리아 차일드의 오랜 팬이었던 줄리는 줄리아의 요리책에 소개된 레시피를 1년 안에 완성해 보기로 다짐하고 개설한 요리 블로그를 통해 못다 이룬 작가의 꿈도 이루고, 진정한 행복도 찾는 성장캐에요. 줄리는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곤 했는데 ‘줄리 앤 줄리아’ 프로젝트 과정에서도 본인과 줄리아를 비교하며, 왜 자신은 그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것에 자책해요. 그러나 인생은 계량대로 따라 만들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요리와 달리 각자의 레시피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닫고 내면적으로도 한 단계 성장하게 됩니다.

줄리가 자신의 도전을 1년 동안 묵묵히 지켜보고 응원해준 남편에게 전한 감사 인사인데요. 제가 손에 꼽는 로맨틱한 고백 중 하난데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달콤하지 않나요? 버터 없는 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줄리 앤 줄리아>는 요리 영화지만 삶의 목적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들은 ‘요리’라는 매개체로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끼며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죠. 분명한 건 삶의 의미와 가치는 결국 각자의 레시피에 달려있다는 것 아닐까요? 나를 온전하게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나의 삶의 가치도 결국은 스스로 찾은 나만의 레시피로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요.

<카모메 식당 (Kamome Diner)>, 오기가미 나오코, 2006년 개봉

헬싱키 길모퉁이에 문을 연 카모메 식당. 뚱뚱한 갈매기라는 뜻의 식당은 일본인 여성 사치에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일식당이지만 한 달째 파리 한 마리 날아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매일 아침 음식을 준비하는 그녀의 가게에 어느 날 일본 만화를 좋아한다며 대뜸 갓챠맨의 노래 가사를 묻는 핀란드 청년 토미를 시작으로 눈을 감고 세계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나온 곳이 핀란드라 이곳까지 왔다는 미도리, 핀란드로 여행을 왔다 짐을 잃어버린 마사코 등 하나둘씩 손님이 늘어가고 단골 손님도 생기며 마침내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카모메 식당>의 국내 공식 관객 수는 7,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리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영화이기도 해요. tvN ‘윤식당’의 컨셉에 영감을 준 것이 해당 영화이기도 할 만큼 소박한 관객 수와 영화가 가진 잔잔함에 비해 파급력은 꽤 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리 영화로 소개되지만 요리 장면은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위장을 자극하는 화려한 요리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영화 제목에 식당이 들어가는 만큼 영화 속에서 사치에가 만들어주는 음식과 그녀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식당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핀란드가 고향인 사람도 여행자로 스쳐 가는 사람도 이곳에서만큼은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누며 위로받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미래의 목표를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참고 해야 할 때가 더 많으니까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지나친 욕심은 내려놓고 소박한 것에서도 가치를 발견할 줄 아는 사치에 같은 태도가 꼭 필요하기에 더 어려운 일이겠죠.

영화 <카모메 식당>이 지향하는 태도는 주인공 사치에의 삶의 태도와 맞닿아 있어요. 그녀는 일면식도 없던 미도리와 마사코를 식당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첫 손님이라는 이유로 커피값을 받지 않는 토미가 매일같이 공짜 커피를 마시러 와도 눈치 한 번 주지 않습니다. 낯선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늘 미소를 건네는 포용력을 지닌 인물이에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건네는 것으로 동네 식당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신념대로 가게를 꾸려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몇 시간이고 오픈런을 하고 때로는 손님이 식당 주인의 입맛에 맞춰서 방문해야지만 겨우 한 끼를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린 요즘 풍토에 비춰보면 언뜻 미련하고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음식이 필요한 이에게는 따뜻한 음식과 커피를,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는 그녀를 닮아 있는 따뜻한 공간을 제공하는 카모메 식당은 삶에서 꼭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고 생각합니다.

Epilogue

제가 요리를 즐기는 이유는 먹는 순간 뿐만 아니라 요리하는 순간에도 있습니다. 내가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먹을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장을 볼 때, 재료를 손질할 때, 요리할 때 좀 더 정성을 쏟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뿌듯합니다. 게다가 새로운 요리를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묘한 성취감도 생기더라고요. 직접 밥을 차려 먹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밥상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꽤 크다는 사실을요. 누군가에게는 꿈과 용기,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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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앤 줄리아>에서 줄리에게 터닝포인트 역할을 하는 요리는 ‘뵈프 부르기뇽’ 입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전통음식이자 대표 가정식인 뵈프 부르기뇽은 소고기를 와인과 육수에 넣고 오븐에서 3-4시간 푹 익혀 만들어요. 오랜 조리시간이 필요하지만,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만큼 맛은 깊어지고 레시피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과정도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접한 프랑스 가정식이자 영화를 통해, 그리고 부르고뉴 여행에서 맛본 후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요리기도 합니다. 줄리에게 줄리아의 요리책이 있었다면 저는 요리 할 때 <우리의 식탁> 레시피를 많이 참고하는데요. 영상을 보고 차근차근 따라 만들면 처음에는 어렵다 느껴지던 요리도 생각보다 쉽게 만들 수 있더라고요.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따뜻하고 녹진한 뵈프 부르기뇽이 특히 더 생각나는데요. 요리로 온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레시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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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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