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47. 스파이의 세계🥸

존 르 카레가 그린 스파이의 세계🥸

구독자님은 ‘첩보 영화’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시나요? 제임스 본드의 007 시리즈, 에단 헌트의 미션 임파서블, 제이슨 본의 본 시리즈를 꼽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는 이번에 소개할 작품들을 보며 제임스 본드와 에단 헌트 그리고 제이슨 본은 환상(?)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소개할 작품은 바로 존 르 카레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모스트 원티드 맨>입니다!

존 르 카레(John Le Carré)는 ‘007 시리즈’를 탄생시킨 이언 플레밍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첩보 소설가인데요. 실제로 냉전 시대에 영국 비밀정보국에서 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으로 신분이 탄로 나면서 첩보 요원으로서의 생명이 끝나게 되자 완전히 소설가로 전향했다고 해요. MI6 요원일 때도 소설을 발표했기 때문에 존 르 카레는 그의 필명이기도 합니다. 첫 소설은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로 이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스릴러 작가 반열에 올랐고 이외에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스마일리의 사람들』, 『퍼펙트 스파이』, 『러시아 하우스』, 『모스트 원티드 맨』 등 21편의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존 르 카레의 작품은 굉장히 사실적이라고 평가받는데요. 첩보물에서 기대하는 화려한 액션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역시 박진감 넘치는 장면은 보기 힘들어요. 존 르 카레는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냉전 시대에 개인이 느끼는 무기력함에 초점을 맞추고, 첩보 활동을 하면서 겪는 윤리적 혼돈이나 고독을 드러내는데요. 그의 작품 속 스파이 들은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직업에 대해 고뇌하는 인물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가 ‘조지 스마일리’로 첫 작품을 시작으로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등에 연이어 등장하는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와 같은 캐릭터입니다. 조지 스마일리는 신중함, 민첩함, 추리력을 고루 갖춘 스파이 소설 역사상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지적인 캐릭터로 평가받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토마스 알프레드슨, 2011년 개봉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영국 비밀정보국에 침투한 러시아 스파이 ‘두더지(mole)’를 가려내기 위해 치열한 두뇌 싸움을 펼치는 과정을 그린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로맨스 명가로 불리는 워킹타이틀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게리 올드먼,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베네딕트 컴퍼배치, 톰 하디, 키어런 하인즈, 존 허트 등 영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며 어마어마한 캐스팅을 선보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는 최고의 영국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처음 영화화가 논의 중일 때 박찬욱 감독이 연출자로 물망에 올랐었다고 하는데요. 최종적으로는 토마스 알프레드슨이 연출을 맡았고, 이후 박찬욱 감독은 존 르 카레의 작품을 드라마화한 BBC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의 연출을 맡았습니다.😃 제목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영국의 전래동요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요. 팅커(Tinker, 땜장이), 테일러(Tailor, 재단사), 솔저(Soldier, 군인), 세일러(Sailor, 선원), 리치맨(Rich man, 부자), 푸어맨(Poor man, 가난뱅이), 베거맨(Beggar man, 거지), 시프(Thief, 도둑) 순으로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여 부르는 노래라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비밀 정보국 국장이 러시아 스파이를 가려내기 위해 체스 말에 스파이로 의심되는 간부들의 사진을 붙여두고 순서대로 코드네임을 부여하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원작 소설을 집필한 존 르 카레는 케임브리지 스파이로 유명한 ‘킴 필비’와 KGB 스파이 ‘조지 블레이크’에게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집필했다고 하는데요. 킴 필비는 수려한 외모에 엘리트 코스까지 밟은 영국의 인재로 아무도 그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으나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이중간첩으로 드러났고, 존 르 카레 역시 그로 인해 신분이 노출되어 MI6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 비밀정보부 요원 조지 스마일리는 러시아 스파이 색출 작전이 실패한 여파로 인해 강제로 은퇴하게 되지만, 본부로부터 다시 비밀 작전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한편 러시아 고위 장교 감시 임무를 맡은 MI6현장 요원 리키 타르는 서커스로 불리는 MI6 고위급 간부 네 명과 정보부장을 포함한 고위 관료 중 한 사람이 러시아의 스파이임을 알게 되고 이를 본부에 알리려 합니다. 리키 타르를 만나게 된 조지 스마일리는 어제까지 동료였던 이들을 상대로 자신의 임무를 들키지 않고 스파이를 가려내기 위해 작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영화는 플롯이 복잡해 따라가기 쉽지 않은데요. (저는 세 번째 감상 끝에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스파이로 의심되는 네 명의 인물인 팅커, 테일러, 솔저, 그리고 푸어맨에 대한 묘사와 이를 밝혀내기 위한 조지 스마일리의 고뇌, 스파이 때문에 죽을 위기를 겪고 배신당한 요원 짐 프리도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어지기 때문에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흐름을 따라가기 쉽지 않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첩보 영화 하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정말 흥미진진하게 본 작품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첨단 장비를 내세운 화려한 액션 신 없이도 적절한 긴장감과 극의 몰입도를 이끌어낸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극명하게 대립하던 이념 아래 각자의 체제를 증명하려는 무감각한 존재로 그려지는데요.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격투 장면이나 총격전보다 더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진짜 스파이의 세계’를 그린 작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중간첩 ‘두더지(mole)’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를 처단하는 과정과 이후의 모습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라 메르(La mer)’가 흘러나오면서 비춰집니다. 이는 기존의 첩보 영화들이 절정과 결말을 그리는 방식과 대비되어 결말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참고로 영화에서 이중간첩을 지칭했던 두더지(mole)는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집자들이 존 르 카레에게 편지를 보내 작가가 만들어 낸 것인지 물어봤다고 하는데요. 그가 실제 정보원 활동을 하던 시절 KBG에서 쓰던 은어였다고 합니다.

모스트 원티드 맨 (A Most Wanted Man), 안톤 코르빈, 2014

<모스트 원티드 맨>은 911 테러 이후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이 된 독일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범죄 집단의 악행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는 각국 정보기관의 심리전을 섬세하게 묘사한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언제나 기대 이상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아 온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마지막 주연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외에도 윌렘 대포, 레이첼 맥아담스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총격전과 같은 자극적인 장면이 거의 없음에도 국내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는데요. 그 이유가 ‘주제의 이해도 측면을 고려할 때 청소년이 이해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할 만큼,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보다는 쉽게 이해되는 작품이었지만, 국제 정세와 관련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영화임에는 분명한 것 같아요.🥹)

존 르 카레의 첩보 소설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 ‘스파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인 만큼 <모스트 원티드 맨> 역시 스파이라는 직업이 어떤 일을 하고 첩보 활동은 어떻게 하는지를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세상에 저런 물건이 존재할까 싶은 첨단 장비와 화려한 액션이 빠지지 않는 007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모스트 원티드 맨>은 ‘직업으로서의 스파이’에 집중한 실제 스파이의 세계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독일 최고의 스파이였으나 지금은 정보부 소속 비밀조직의 수장인 군터 바흐만은 자신의 정보원을 미끼 삼아 더 큰 목표물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습니다. 그런 그의 앞에 인터폴 지명수배자이자 아버지의 유산을 찾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로 밀항한 무슬림 청년 ‘이사’가 포착됩니다. 본능적으로 이사를 쫓기 시작한 군터는 이사를 돕고 있는 인권 변호사 애너벨 리히터와 이사 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하는 은행장 토마스 브루의 존재를 알게 되고, 두 사람을 자신의 정보원으로 섭외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사를 이용해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원으로 각국 정보부의 용의 선상에 오른 닥터 압둘라를 체포할 작전을 설계합니다.

영화는 테러리스트를 검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넓게 보면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와 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작은 악을 저지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군터와 마사의 태도를 통해 대비되게 그려지는데요. 두 사람 모두 ‘안전한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군터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인물’로 영화는 “스파이의 세계를 배경으로 인물 설정을 통해 악을 대하는 원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군터와 마사를 비롯해 다른 영화 속 인물들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게 그려지는데요. 이를 통해 “개인의 양심과 직업적 의무가 충돌할 때, 인류애와 공공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가”를 물으며 인물들이 내리는 선택을 지켜보는 것 역시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으로 작용합니다.

<모스트 원디트 맨>에서 많은 이들이 명장면으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엔딩 신을 고를 것 같은데요. 항상 침착한 모습을 보여온 군터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장면이자 군터에게 협조적으로 비춰진 마사가 사실은 어떤 의중을 갖고 있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기에 마치 감추고 있던 반전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보여준 실제 스파이의 세계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누군가는 희생될 수밖에 없는 비정한 현실을 냉철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개인적으로도 여운이 오래 남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pilogue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Mr. & Mrs. Smith)>, 더그 라이만, 2005년 개봉

사실주의 스파이 영화도 좋지만 첩보물에서 기대하는 화려한 액션을 빼놓으면 아쉽긴 하죠.😅 그래서 준비한 함께 보기 좋은 추천 콘텐츠는 세기의 커플을 탄생시켰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로 골라봤습니다! 주인공 직업이 스파이보다는 킬러에 가깝지만 개봉 당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고 이후 브란젤리나 커플을 탄생시켰던 작품인 만큼 흥행에도 성공했는데요. 영화는 첫눈에 반해 결혼한 부부가 사실은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적수이자 킬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로맨스, 코미디, 액션, 스릴러가 모두 담긴 블록버스터로 여러 장르를 적절하게 잘 버무린 것은 물론 브란젤리나 커플의 케미와 배우들 본연의 매력 역시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시나리오의 초고는 각본을 맡은 사이먼 킨버그가 석사 논문으로 썼던 것이라고 하는데요. 홍콩 액션 영화에 대한 열정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에 결혼 생활로 상담을 받던 친구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에 대한 뼈대를 구체화해 각본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로맨스부터 액션, 코미디까지 여러 장르가 녹아 있지 ‘댄스 장면’도 돋보이는데요. 이는 홍콩 영화의 슬로 모션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으로 뮤지컬에서 등장인물들의 사랑, 갈등, 흥분이 절정에 달할 때 이를 노래로 대신하는 것에서 착안해 두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댄스 장면을 선택했다고 하니 영화를 보게 되다면 눈여겨보시길 추천합니다.

🔖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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