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바라는 여름

2024.08.02 | 조회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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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채영

소중한 당신에게 제 일기장을 보여드려요.

 

 나는 선뜻 스스로를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우리 동네는 녹음이 우거진 옛 아파트 단지라서, 창문을 가득 채우는 나뭇잎이 그렇게도 좋다. 그렇지만... 장마 후 유달리 시끄럽게 울어재끼는 매미들은 참을 수 없다. 나무 아래에 앉아 바람을 쐬며 여유를 즐기려고 해도, 매미들 우는 소리에 귀청이 터질 것만 같아 금방 포기하곤 한다.

'얘들아, 섹스가 그렇게 하고싶니?' 

나도 살 날이 1달밖에 남지 않는다면 엄청 섹스를 하고 싶을까? 이제라도 빨리 아이를 가져봐야겠다고 생각할까? 아이를 갖는다는 건 너무 먼 일 같기만 하다. 더군다나 이렇게 덥고 습한 날씨에 살을 부대끼며 몸이 무거워져야 한다니, 여름은 임신하기 제일 싫은 날씨일거다.


가능하면 매미가 없는 나무 밑에서 쉬고싶다. 모기가 없고 불곰이 없는 숲에 가고 싶고, 해파리가 없는 바다에 가고싶다. 물론 그 바다에 거북이랑 돌고래는 있어야 한다. 얌체같이 나에게 좋은 기분을 주는 자연만을 누리고 싶다. 마찬가지로 임신은 하고싶지 않지만 애인이 안에다 한번 싸줬으면 싶다. 그 순간의 온기나 촉감같은 것이 궁금하다. 어디가 깨진 것처럼 늘 헛헛한 마음이 잠시나마 메워지는 느낌이 아닐런지 허황된 꿈을 꾼다. 


근데 정말 그렇게 된다면 사는건 어느순간 마냥 재미없어 질지도 모르겠다. 땡볕 아래에서 매미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도 좀 견뎌주고 해야 고요한 순간이 더 달콤할지도 모른다. 오늘 매미들이 우는 소리를 듣다가, 마치 걔들이 같이 숨을 한번 고르듯이 울음을 멈추는 순간을 목격했다. 쌕-쌕-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작은 울음만이 이어졌다. 그 순간이 꽤 좋았다. 왠지 그 작은 곤충들이 정말 살아있구나, 실감이 되어서 그랬던 듯 싶다. 그래도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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