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망가져 버렸다고 말해

* '준 앤 줄라이' 시리즈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욕망에 관한 글입니다.

* 해당 글에는 성적인 취향과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내 흔적을 남기는 게 좋다. 첫 애인과 누워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얀 눈밭을 맨 처음 밟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나는 애인을 자주 깨물었다. 좋아하면 으레 이빨이 근질거렸고 그가 웃음기 띈 모습으로 ‘넌 미쳤어’라고 말하는 게 좋았다. 한번은 둘 다 거나하게 취해서 내가 미처 깨무는 힘을 조절하지 못했다. 그 덕에 그의 손에 딱지가 잡힐 정도로 상처가 났었다. 그때는 넌 ‘정말’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던가? 그래, 나도 미쳤다는 말이 사랑해였어. 나는 그 상처가 맘에 들었다.

올여름에 좋아한 사람이 있다. 유월에 만나 준이라고 부른다. 준과 장난치듯 싸우다가 팔에 생채기를 냈다. 그의 몸에 물성을 가진 형태로 내가 남았다는 것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얼른 그에게 대일밴드를 가져다줬다. 내가 낸 상처 위에 내가 준 밴드가 붙어있는 모습이 흡족했다. 준의 상처에 몽글몽글 꽃처럼 맺히는 피를 핥아보고 싶었다. 내 혓바닥이 만약 고양이 혀처럼 까슬거리면 그는 고통과 쾌감을 같이 느끼겠지?

준이 거짓말인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느 날, 버려진 집에 들어간 그는 거기에 있던 여자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둘은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갔는데, 갑자기 둘 다 고양이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고양이가 된 채로 정열적인 사랑을 나눴다고 한다.

준과 잤을 때 그는 온순하고 고분고분하게 내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지를 핥기 시작했다. 천천히 음미하듯 핥다가 집요하게 혓바닥을 세우고 파고들기도 했다. 어찌나 맛깔나게 핥는지 정말 단 맛이라도 나나 싶었다. 그는 두 시간도 넘게 지치지도 않고 나를 핥아댔다. 다리가 벌벌 떨리고 물이 줄줄 새서, 나는 쾌락에 젖어, 제발 그만하라고 말해야 했다. 준은 불을 끄고 하는 사람이라 그게 사람이었는지 고양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섹스가 끝나자마자 침대 시트가 축축해졌다며 다른 침대에 얄밉게 쏙 누워버리는 모습조차도 속모를 고양이와 같았다. 어쩌면 그 얘기는 거짓말이 아니었을지 몰라.

고양이건 다 큰 어른이건 고분고분 내 시야 밑에서 가슴이나 보지를 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 아기를 낳으면 이런 기분일까? 가슴팍의 머리통을 살살 만지며 머리카락을 헝클여 놓는 걸 좋아한다. 왜 너희는 나를 먹고 싶을까? 나도 왜 너희가 먹고 싶을까?

섹스가 뭔지도 잘 몰랐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깨물기를 야릇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건 내가 직접 겪은 것은 아니었고, 내 친구와 친구의 남사친 사이의 일이었다. 친구는 괄괄하고 당찬 성격이었고 남자애는 비교적 조용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애였다. 얼굴도 꽤 반반하게 잘생겼었다. 어느 날 친구의 팔에 노랗게 올라온 잇자국이 있어 이게 뭐냐고 묻자, 그 남자애랑 놀다가 걔가 장난으로 친구를 깨물었다는 것이었다. 둘은 썸도 연인도 아니었고 그 ‘사건’ 이후로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자궁이 두근거릴 만큼 야한 짓을 한 건데!

나는 친구가 물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문득 일어났겠지? 손장난하면서 투닥거리다가, 갑자기 뽀얗고 말랑한 내 친구의 팔을 별안간 잡았을 그 애를 생각한다. 쥐는 대로 푹 들어가는 부드러운 살결에 얇고 뾰족한 이빨이 잠깐 파묻혔다 나왔을 테고, 침이 흥건히 묻었을 거다. 축축하고 울긋불긋한 친구의 팔이나, 약간 상기된 남자애의 오묘한 얼굴, 물림 직후의 조용한 순간들을 내 멋대로 상상한다. 곧 무언가 터져 나올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내 친구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내가 그 애에게 물렸다면 유두가 바짝 서고 소름이 돋았을 텐데. 괜스레 깨끗한 내 팔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니깐 나는 깨무는 게 좋다. 물리는 게 좋다. 상처를 내는 게 좋다. 멍이 들고 찢어지고 싶다. 임신시키고 싶다. 내 사랑은 정갈하고 다정하고 보드라운 줄만 알았는데, 붙들고 싶고 자국을 내고 부수고 싶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면 사랑을 몰라서라는 대답이 떠오른다. 정확히는 특별한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사랑을 연애로 만드는 무게와 중력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누구도 아닌 너여야만 하겠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자라기 시작할까? 마음이 윤택하고 단단해질수록 물음은 커져만 간다.

보드라운 사랑은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도 줄 수 있잖아. 자국이 날 만큼 꽉 쥐고 싶은 사랑이 중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그런데 감정과는 다르게 누군가가 나를 정말로 꽉 쥐고 부수려고 한다면 나는 한달음에 도망칠 것 같다. 자유를 가장 중시하는 나에게 집착은 정말 최악이고, 상대를 진짜 구속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내 욕망은 헤아릴 수 없이 모순적이다. 고백하건대,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꼭 해주고 싶으면서 절대 하지 않을 말이 있다.

“나를 봐. 너에게 평생 잊지 못하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 네가 눈을 감아도, 잠들어도 나에게서 도망칠 수 없어서 죽도록 시달렸으면 해. 나보다 나은 사람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서 망가져 버렸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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