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지난 주에 이어서
우리는 왜 그토록 목표를 두려워하고
계획하기를 싫어하는지에 대한 남은 2가지 이유
2. 원치 않는 목표와 계획
3. 목표와 계획의 대체제
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만약 전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신다면
보고 오시면 내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2. 원치 않는 목표와 계획
우리가 하는 많은 목표와 계획은
사실상 나의 의지와 마음과는 상관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마음을 잘 살펴보면 그 역시
타인을 의식해 생겨난 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심심찮게 마주하게 됩니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것 말고,
내가 정말 좋다고 느끼는 게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트리마제에서 살면 모두가 좋을까요?
롤스로이스를 타면 모두가 행복할까요?
그 행복과 좋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보이기 위한 모든 것은
내가 가지고 있다 해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의 종착점은 결국
타인의 시선이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삶 속에서 온전하다고 할 만한 행복과 기쁨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마주하며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 때 더 온전하고 행복하게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더 잘하면서 충분한 효능감 속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꼭 거창한 일이거나
직업적인 꿈이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작은 일,
하다못해 출근길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에 실려 가는 것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알고 그것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면 훨씬 좋은 하루를
살아낼 수도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알고리즘에 따라
짧은 영상들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문학에 대해 알기만 하더라도
오늘 밤의 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목표와 계획의 대체제
한평생 살아가면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게 되고
누리게 될 것이라고 믿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상을 채우는 것들,
가령 게임, 유튜브, SNS 같은 것들은
내가 진짜 나를 알고, 자기 자신이 된다면
다 치워버리고 싶은 것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가장 쉽고 편하게 손끝에 닿는 것들을 소비하고,
세상이 누리라고 부추기는 것들을 습관적으로 따라가다가
자신이 진짜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끝나버린 ‘평생’이란 얼마나 흔하고 많을까요?
그래서 저는, 우리 모두가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물론 이것은 한 순간에 기적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을 알아감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도하는 것일 겁니다.
무언가 시도해보는 일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둠에 작은 불빛을 밝히는 일과 같습니다.
내가 드럼을 쳐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보기 전에,
그 일들은 모두 어둠에 잠겨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내가 손을 뻗어 그 일을 시도해볼 때,
나의 시도 만큼의 영역이 반딧불처럼 반짝일 것입니다.
인생에는 변하지 않는 진리와도 같은 것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당장 얻을 수 있는 무언가는 대부분 가짜라는 것,
무엇도 바로 얻을 수는 없다는 것.
반대로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시간을 꾸준히 끊임없이 오랫동안 쌓아야 한다는 것.
그러한 태도가 삶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기적인 관점이 누락된 거의 모든 것은
도박이나 과욕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도박이나 과욕의 반대편에는,
이어지는 삶에 대한 믿음이 있지요.
우리는 아마 거의 대부분
10년 뒤에도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10년은 결국
나의 매일에 무엇을 했느냐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무언가 목표를 잡고 계획하며 시도하는 일에는
필연적인 실패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대하기 때문에 실망하고
시도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바라기 때문에 좌절하고
해내지 못해 속이 쓰리기도 하죠.
그러나 그런 것들이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평화를 얻기보다는
시들어갈 것입니다.
삶의 평화로움은 바로
시도로 걸아가는 용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평화는 물러난 곳에서의 움츠러듦이 아니라,
세상을 마치 마음의 집처럼 여기고
거닐 수 있는 마음 상태에 있습니다.
오늘 레터의 마지막은
칼릴 지브란의 산문시집인 <예언자>의 내용으로 마칠까 합니다.
“필요한 건 안락이 아니라 생동이다.
방안의 이불 안에 하염없이 파고들 때보다
세상 어디든 거닐며 세상을 내 집처럼 여기는
순례자의 마음과 용기가
사실은 더 진정한 평화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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