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예술의 경지에 올렸다 평가받는
기타오지 로산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최고의 재료에게 주방이 해 줄 일은 없다”고 말이죠.
과한 조미료와 욕심 가득한 가니쉬들은
도리어 음식 본연의 맛과 의도를 해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음식은 시대에 따라 발전함과 동시에
일정 부분 퇴보한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의 맛들을 즐깁니다.
자극적이고 과한 양념의 맛들 말이죠.
때때로 그런 것들이 질린다 여겨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요식업의 형태가 그런 맛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수요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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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샐러드를 먹을 때도 그렇습니다.
고기와 드레싱, 혹은 토핑.
이것 없이 채소의 맛 자체를 느끼고 즐기는 이들은
아주 적은 소수일 것입니다.
대부분은 그것을 ‘맛없음’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것입니다.
이것들은 정말 맛이 없는 것일까요?
혹, 우리의 혀가 맛을 느끼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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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에는 맛이 있습니다.
원물 그 자체에도 분명한 맛이 있지요.
아주 작은 풀잎처럼 보이는 이 안에는
쓴 맛과 단맛, 시큼한 맛과 고소함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맛을
느끼지 못하거나 즐기지 못합니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맛의 폭이 좁아서 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비우는 맛보다
더하는 맛에 익숙했습니다.
양념과 조미료, 향과 색소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원물 자체로서의 맛보다
원물을 재료로한 것들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사진을 찍기 좋은 모양,
자극적인 맛과 향, 그리고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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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형태는 우리의 삶에 반영됩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무수히 많은 맛과 소리, 정보와 이야기.
매일을 홍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정신없는 삶에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것들은
일종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것들이 쉽고 편리합니다.
당장의 고통을 잊는 것에는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도망칩니다.
자극으로, 꽉 찬 상태로.
그 안에서 우리는 일종의 안정을 느끼며
안정 끝의 불안이 있다 하더라도
다시 안전한 순간을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안정과 불안의 순간을 반복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순간이 영원하다면,
그건 일종의 지옥과도 같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극과 즉각적인 만족으로 채운 하루의 끝에
얼마나 많은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지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것을 반복하는 내가
더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모두 이렇게 산다고 마음을 달랠 뿐이지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덕지덕지 삶에 붙여댑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대부분 해답이 되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 끝에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좋은 것일까,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
다시, 기타오지 로산진의 말을 떠올립니다.
“최고의 재료에게 주방이 해 줄 일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재료란 대체 무엇일까요?
관계, 직업, 성취, 학업과 인정 같은 것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디만,
어쩐지 이것을 재료라 삼기에는
이것들이 일종의 열매의 형태인 것은 아닌가 여겨집니다.
정답은 아니겠습니다만,
제게 있어 삶에서 재료란
모든 것이자 보이지 않는 것.
시간 외에 다른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루라는 시간이 나라는 인생을 구성하는
가장 결정적인 재료인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좋은 재료에는 그다지 많은 것들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고급 트러플을 가지고 버섯 볶음을 한다면
그보다 아까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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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예를 들자면 그렇습니다.
좋은 원두는 약하게 볶을 때 더 매력적입니다.
가진 본연의 맛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쁜 원두는 강하게 볶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두가 가진 본연의 맛을 최대한 감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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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무언가 부족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덧붙여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어쩌면, 우리의 삶의 재료가 좋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어쩌면 나는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지 않아
불안과 두려움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자꾸 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른 많은 것들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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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충분하다는 말은 어쩌면
이런 것을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떠내려 가듯 살아가는 사람은
본인 스스로를 절대 충분하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나는 나로 충분하다는 것은
최고의 상태인 내가 아니어도,
최선의 상태인 나로 충분하다는 것이고
완벽한 상태인 내가 아니어도,
완전한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이게 나로 충분하다는 것 아닐까요.
따라서 비움의 시간이 조금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늘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마음에 덕지덕지 붙여놨던 것들을
떼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래야만 한다고 이야기 했던 것들과
인스타에서, 블로그에서, 커뮤니티에서
상식처럼 통용되는 것들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휩쓸리듯 덧붙인 것들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삶에 빈공간을 만들고,
삶 그 자체를 경험하고,
누군가의 덧붙임이 아니라
나의 시간 자체를 맛보는 것.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루라는 재료를 충실히 다듬어,
그 모양이 다른 누군가와 똑같지 않고
사람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나만의 맛과 향을 가진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오늘이라는 재료를 잘 가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재료 본연을 곱씹을 때 그 맛이 다양함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달기만 한 것은 없습니다.
그 안에는 신맛과 떫은 맛, 단 맛과 고소함,
쓴 맛과 감칠 맛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상호작용합니다.
신 맛이 감칠 맛을 더하고,
떫은 맛이 고소함을 더하고,
쓴 맛이 단 맛을 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하루를 그렇게 곱씹으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삶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선호하는 맛만 있지 않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상호작용하며
어우러지는 것임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흔들려도,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삭막한 도시 속,
자신만의 빛깔을 내는 생명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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