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를 인정해야 할 순간이 옵니다.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애써 숨기고 눈을 돌렸던 그것.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
참았던 숨이 터지듯 튀어 오르는 진실.
해본 사람이라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알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동시에
고독한 것인지 말입니다.
주변의 위로나 용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존재가 마모된 것 같은 느낌과
무용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은
그 누구의 이야기로도 진정되거나
해결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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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픈 일입니다.
누구나 문제를 빠르게 찾고
해결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늘 아픈 일입니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아픈 일입니다.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 전체가 멍드는 것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인정하는 일은
좀처럼 쉽게, 빠르게 되지 않습니다.
아픔에는 중독성이 없고
슬픔은 늘 새롭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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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은 늘 멀리 있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늘 높이 있는 것입니다.
원하고 바라는 그 모든 것들은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아서,
그래서 더 원하고 더 바라게 됩니다.
매일을 기도하듯 살아가고
매일을 수행하듯 뼈를 깎아내도
그것들은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기도하듯 살아가는 삶과
수행하듯 살아가는 열심 끝에
그것이 다가올 것이라는 정답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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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고 바라는 것은 때때로 변덕스럽습니다.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것인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돼버리는 때도 있습니다.
들인 시간과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사실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었음을
경험하고 발견하게 되는 그 순간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회의적인 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기를 쓰고 살아가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해서,
그 결과가 정말 참인지 알 수 없어서.
그래서 우리는 원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추구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간직하려 합니다.
도달하기까지의 노력과
이루어내기까지의 고통은
감수하지 않아도 충분히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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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은 슬프고 아픕니다.
그것은 단 한순간도
기쁨으로 가득 차거나
희망으로 가득 찼던 적이 없습니다.
바라보고 싶지 않은 것을
마주해야 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부정해야 합니다.
인정은 지나온 모든 노력과
날들을 단 한마디의 단어로
결론을 짓는 행위입니다.
“틀렸음”
몇 날 며칠,
몇 주와 몇 달,
혹은 몇 년.
그 모든 시간이
틀렸다고,
잘못된 것이었다고,
스스로에게 선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기쁨이나 즐거움 따위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분노와 아픔, 슬픔과 고통만 가득할 뿐입니다.
그러니 인정하지 말고,
그저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일까요?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편하게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일까요?
-
됩니다, 얼마든지 그래도 괜찮지요.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난 10년간의 경험 끝에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정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개인의 취향과 특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저 저라는 한 인간의 특질이 그러합니다.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이
하나하나 마음에 걸리고,
논리를 따지는 취향을 가진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달라서
모두가 삶에 의구심을 던진다거나
자신의 삶이 틀렸다고,
선언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그래왔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늘 고통이었고,
늘 아프고 슬픈 순간이었습니다.
늘 괴롭고, 늘 처절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선택하고 책임지며
무언가를 해나갑니다.
인정하고, 수정합니다.
그 끝에 이렇다 할 결과물은
늘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틀림을 향해야 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잘못과 무의미한 노력들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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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이대로 가다
내 삶이 실패로만 가득 차면
어떡하지? 와 같은 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늘 시도하고 늘 노력하는데
늘 실패하고 계속 틀린 것이라면.
내 삶의 의미와 이유가 없는 것 같고,
이렇다 할 결과가 없는 것이라면.
내 존재 가치가 너무나 무가치한 것은 아닐까.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과 마음이 물밀듯 들어옵니다.
그리고 때로는 잠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알게 된 사실은
저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라는 사실에
잘못은 없습니다.
오류도 없습니다.
그저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내 삶의 가치 판단은
타인에게 있지 않습니다.
자꾸만 내 존재 가치를
타인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만,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본질상 한 개인에 대한 존재적 인정과 수정은
전부 개인의 몫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 개인이 느낄 씁쓸함과 아픔을
타인은 느낄 수 없고,
한 개인의 성취와 기쁨을
타인은 온전히 경험할 수 없듯.
한 개인의 삶에 대한 평가 역시
타인은 온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타인의 평가는 그저 의견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을 규정짓거나
온전히 평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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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가치에 대한 두려움,
무가치함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나를 평가하는 대상이
타인이었을 때에 이르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이 봤을 때의 내 모습에 따라
나의 존재 가치 여부를 평가하는 형태가
바로 두려움의 원인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가치를 평가하는 형태가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된다면
평가 방식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존재 가치 여부가 아닌 만족의 여부로 말입니다.
이것이 정말 만족스러운 일인지,
이것이 내게 충족된 일인지,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는 것.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인정할 줄 아는 용기와
수정의 발걸음을 뗄 줄 아는 힘.
어쩌면 이것이 전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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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는 중독성이 없습니다.
슬픔은 늘 새롭습니다.
하지만 도전하는 것에는
늘 새로움이 있고,
작은 성취들은 나의 삶에
만족을 더하게 됩니다.
이것은 타인의 평가와 상관없습니다.
나만 아는 것일 수도 있고,
내게 있어서 분명한 것입니다.
도전에는 늘 실패가 함께합니다.
작은 성취에는 늘 슬픔이 곁들어집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렇듯,
부정과 긍정은 떨어진 것이 아닌
함께하는 것이기에
그 모든 것들을 수용합니다.
즉, 도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도전과 함께하는 실패를 인정할 줄 알고,
작은 성취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곁들어진 슬픔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어떤 예술가들은
매일 실패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패 뒤에는 늘 도전과 작은 성취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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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에는
늘 아픔과 슬픔이 가득할 것입니다.
성취의 기쁨을 위한 삶에는
늘 좌절과 고통이 가득할 것입니다.
삶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 실패하기로 결심합니다.
매일, 찾아오는 슬픔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의 끝이 무엇일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바라는 결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슬픔을 느껴보지 못한 이에게
기쁨은 무미건조한 것이 됨을 기억합니다.
좌절이 없는 성취는 권태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러니 실패를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실패해도 괜찮다고, 마음먹습니다.
아프고 힘들어도 나를 마주 보고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역시 이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나 자신으로 살아갔다고,
그 무엇보다 나에게 솔직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무수히 많은 삶의 갈래들 속에서,
때때로 길을 잃고 방황할 테지만.
그 방황 속에서 지치고 아파할 테지만,
그것 역시 인생임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매일을 살아보려 합니다.
늘 기쁘고 행복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것 역시 삶이라는 사실에
감사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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