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과 삶이,
경제와 정세가
늘 같지 않고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경험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고
변하지 않는 것에
큰 가치를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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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
삶과 이상의 괴리 같은 것들 속에서
가치가 발생하고 그 가치는
사람의 삶을 지탱하곤 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긴 그 많은 것들이
사실은 허구였음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의 마음은
상대가 변하든 내가 변하든
처음과 같지 않았음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친구들은
어느새 각자의 직장과 가정,
대학이나 특정한 이유들로 흩어지고
이전 같지 않은 관계가 되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자주 다짐합니다.
변하지 말자고,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서로를 놓지 말자고 말이죠.
하지만 그 약속은 너무나 유약하며
때로는 부질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애석하게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건 거짓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진심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건 친구나 연인,
그리고 비즈니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고객을 먼저 생각하겠다던 회사는
어느새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겠다던 어떤 이의 약속은
잊혀지고, 사라지기 마련인 것처럼 말이죠.
때로는 변하는 사람이 나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변덕스럽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삶에는 늘 이런 양극단이 존재합니다.
함께함과 홀로됨.
사랑과 이별, 약속과 배신.
진심과 거짓, 영원과 상실.
삶에는 늘 이런 것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그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찬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어쩌면 삶이란 마주하기 싫은 양극단을
끊임없이 마주보고 서로 뒤엉키며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살아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칼라트라바 이야기
오늘은 아주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가지게 될 시계,
칼라트라바 이야기 입니다.
시계 역사상 뚜렷한 족적을 남긴
파텍 필립의 수많은 시계들 중에서도
칼라트라바가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특별합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칼라트라바는
시와 분, 초 정도만 표시되는 단순한 기능에
군더더기를 배제한 심플한 디자인을 유지합니다.
원이라는 기본적인 모양 안에
최소한의 디테일만 허용하고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며
상호 의존적으로 디자인됩니다.
크기 역시 보수적으로 고수하는 칼라트라바는
본질에 집중한 우아함으로 시대를 초월합니다.
이러한 우아함과 초월성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최초의 칼라트라바인 Ref. 96은 20세기 초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계들에서 보이던
어정쩡한 형태를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현대적인 손목시계의 표본을 제시한 혁신적 시계입니다.
하지만 그 탄생 과정은 이상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칼라트라바는 1932년 당시 파텍 필립의 다이얼 공급자였던
샤를과 장 스턴(Charles & Jean Stern) 형제가
회사를 인수 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1920~30년대 세계 경제대공황의 징후를 실감했던 찰스와 장 스턴 형제는
고가의 컴플리케이션 시계들 보다는 기능적으로 심플하면서
상대적으로 금액대가 낮은 시계들을 통해 브랜드의 중흥을 도모하고자 했고,
1158년 스페인의 십자군 기사단이 사용한
칼라트라바 크로스에서 이름과 심볼을 따온
손목시계 컬렉션으로 성공적인 결실을 맺습니다.
덕분에 위기였던 파텍필립은 회생했고
극소수의 시계에서
소수의 시계로 저변을 확대합니다.
그리고 1930년대 이후로 현재까지 파텍필립은
4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오며
시계의 대명사.
우리가 아는 파텍필립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치가 더해지는 것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낡고, 쓸모가 없어지는 것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바랠수록 의미가 더해지는 것 말이죠.
그 의미란 고유한 것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고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랐습니다.
어찌 보면 모순적이고 어찌 보면 다면적인 이 바램은
양극단에 서서 대치하고 있는 것들을 끌어안는
일종의 포용이자 생존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극단을 끌어안는 포용력이란
여유로움이나 사랑과 같은
아름다움에서만 창조될 것 같지만
때로는 정반대인 처절함과 사투,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서
탄생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절박함과 절실함.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해
갈리고 닦여 빚어진 상처의 혈흔이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처절함과 상처가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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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주 아름다움에 대해 오해 하곤 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시작부터 그랬을 것이라는 오해 말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때로는 추잡하고 번잡하며 모나고 엉성합니다.
193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아름다운 시계의 대명사인
파텍필립의 칼라트라바는 분명
100년 후에도 아름다운 시계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태동 단계는 전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예술에 대한 이상과 삶에 대한 철학 같은 것이 아니라
그 근본과 기저에는 처절한 생존 욕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쳤고,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일으킨 혁신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혁신을 일으킨 그들에게 이 일은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불안과 걱정에 잠식되기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불안이 가득 차 잠을 설치기도 했을 것입니다.
단호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품고 있는 이 시계는
그들이 쌓아온 불안과 초조함, 걱정의 결과입니다.
이 모든 것은 분명 모난 감정임에 틀림없지만
그 감정들이 시간의 풍파를 겪고 난 뒤
깎이고 쓸린 그 모양을 따라 세상에 드러났을 때
그것은 아름다움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늘 이런 것 같습니다.
왜 늘 이래야만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늘 이렇게 탄생하고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상처와 아픔에 깎이고 쓸려 드러난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거나 추해지지 않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이미 추함을 지닌 채 탄생했고
부정적인 마음을 깎아낸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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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하루가 그런 하루일 것이라 믿어봅니다.
변변치 않고 대단하지 않을 수 있는 오늘이
그런 날이 될 것이라 믿어봅니다.
나의 아름다움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며
드러날 때까지 마음껏 아픔과 걱정, 슬픔과 초조함을
시간의 풍파에 따라 맞이하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우리는 분명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지금은 그래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지금 당장은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지금의 불안과 초조함.
추함을 담담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오늘은 아름다움에 다가가는 하루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래도 살아가는 것.
우리가 아름다워지는 방법은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도 살아가는 것.
아무리 그래도 살아갑시다.
아름다워질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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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채원
아름다움이 진해지는 과정을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HAPPY LETTER
그래도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삶의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이 짙어지고 또렷해지는 매일을 소망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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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qwer1245
https://v.daum.net/v/573bf20aa2b88134bf365ec0?f=p 여기 글과 너무 유사한데요?
HAPPY LETTER
안녕하세요! 칼라트라바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점검하다 해당 글을 발견했고, 역사적 내용을 잘 정리했다는 생각으로 해당 내용을 차용했습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아 오해를 산 점 죄송합니다! 글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생각으로 출처를 따로 밝히지 않았으나 앞으로 차용 혹은 인용하는 글은 반드시 출처를 밝히겠습니다! 제가 놓친 부족한 부분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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